[문화칼럼] 기사단장 퇴각기
[문화칼럼] 기사단장 퇴각기
  • 승인 2020.02.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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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에는 음악이 많이 나온다. 음악은 그의 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소재다. 풀어가는 시각도 다양하다.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 또는 음악에 의한 분위기 묘사. 굉장한 음악 애호가인 그는 작업을 할 때 음악의 리듬을 타듯이 글을 쓴다고 한다. 세계적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 음악에 대한 대담집까지 출간 했다. 그것도 이야기를 하루키가 주도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그의 지식은 넓고도 깊다. 그리고 그는 훌륭한 음악을 듣는 데는 그에 마땅한 양식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LP음반을 들을 때 한 면을 듣고 두 손으로 뒤집어 바늘을 올려 다음 곡을 듣는 것. 이런 행위를 통해서 음악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 CD로 들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고 그는 생각한다.

몇 년 전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는 오페라의 한 장면을 모티브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일인칭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인 나는 이름이 없다. 이 작품은 화가인 주인공 나의 성장일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비록 성인 이지만 개인적 아픔과 비현실적 체험을 통해서 새로운 눈을 뜨는, 정신적 성장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현실도피-신비한 경험-현실복귀의 구도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깊이 들여다보기’에 대한 것이다. 대충 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이런 장면이 나온다. “귀를 잘 기울이고,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날카롭게 버려두어야 한다. 그것 밖에 길이 없다. 그리고 때가 되면 알게 된다.” 특히 주인공은 화가,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다. 모델의 내면까지 그릴 수 있을 만큼, 고요하지만 꿰뚫어 보는 힘을 가졌다.

주인공 나는 욕심 없고 무심한 편이다. 소설에서 굳이 주인공의 이름을 짓지 않음도 익명성이 지닌 보편성, 평범함을 표현하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바로 그런 미지근한 무심함 때문에 아내에게 이별을 통보 받는다. 그러나 그의 무심함은 어리석음과 다르다. 욕심 없는 마음을 지녔기에 욕심에 눈이 멀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보통사람과는 다른 눈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과는 다른 영적인 체험도 할 수 있게 된다. 신비한 체험을 통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을 응시하게 된다. 피하려 했으나 결국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 목숨을 걸고 바라보는 자신의 내면. 이런 시련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그는 아내 유즈를 다시 찾고 딸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는 넘치지 않는 생각, 행동을 하는 사람이기에 튀어 보이지는 않지만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여동생의 모습이 투영된다고 생각하는 이웃집 소녀 마리에를 위하여 모험도 불사한다. 그에게 닥친 극한의 위기, 공포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는 믿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좁고 어두운 장소에 갇힌다 해도, 황량한 황야에 버려진다 해도, 어딘가에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순순히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암흑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대단히 종교적이기 까지 한 작품이다. 그리고 말로 떠들지 않고 고요히 자신에 대한 믿음을 지켜나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는 모차르트 오페라 ‘돈 죠반니’ 첫 장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오페라는 돈 죠반니라는 방탕한 귀족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너머에는 명예와 사랑 그리고 해학과 권위의식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잘 짜여진 스토리와 완벽한 음악적 구성, 색채감을 자랑하는 모차르트의 걸작 오페라다. 이런 작품은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다. 그리고 이 오페라에서 주역은 아니지만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역이 있다. 오페라 첫머리에서 돈 죠반니와의 결투에서 패하여 죽임을 당하는 코멘타토레 즉 기사단장 역이다. 짧게 나오지만 대단한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다. 물론 극 중 비중을 떠나 역량 있는 성악가가 맡았을 때 그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독일에는 약 400개의 국립극장이 있다. 대부분 오페라와 발레 중심의 제작극장이다. 그 가운데 한손에 꼽을 수 있는 극장 중 하나가 칼스루에 국립극장이다. 칼스루에, 수성구 양 도시가 가진 장점을 나누어야 함은 미래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것을 완성시킬 수 있는 문화예술 교류는 충분조건의 출발이다. 그 첫 프로젝트가 오페라 콘체르탄테 즉 콘서트 오페라 ‘돈 죠반니’였다.

300여년 전통의 유서 깊은 독일 최정상의 오페라 극장에서 온 기사단장과 그 일행의 음악을 함께 영접하고자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복병에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명예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기사단장께서 운기조식 하여 불청객을 물리쳐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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