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몇 시냐
지금이 몇 시냐
  • 승인 2020.02.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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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자꾸만 물으신다. 지금 몇 시냐, 나 올해 몇 살이냐?
장광 옆 채송화가 고개를 떨군 후 분꽃이 목을 빼어 나팔을 부는 시간,
진흙 수렁을 건너온 연꽃 향내가 그중 거룩한 산의 능선을 모셔다가
묵념을 하는 시간입니다, 어머니.
타다가 가라앉은 노을을 가로질러 새들은 오래된 숲으로 돌아오고
풀벌레도 풀벌레라 울기 위해서 마음놓고 엎드려 이슬을 모으는
'어머니 이렇게 너그러운 시간입니다'

어둠으로 질컥대던 막다른 길에서 나도 물었었다.
어리석음 부풀어 풍선처럼 떠오를 때 나도 내게 다그쳤다.
지금이 몇 시냐, 여기가 어디냐고.
되돌아 짚어보면 그 아픈 질문들이 삐끗하면 허물어질 줏대를 잡아
가라앉은 물처럼 철들게 하고 나를 지탱할 눈물이 되었다.
아흔 살 삭는 뼈가 주저앉아서 그리운 곳을 향해 큰절을 하는,
새우처럼 등을 꺾은 정결한 어머니
어느 때를 겨냥하여 시위를 당기는가 자꾸만 물으신다, 어머니는.
지금 몇 시냐, 나 올해 몇 살이냐.

◇이향아= 1938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1963년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년도에 전주기술전문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66년에 현대문학에 찻길, 가을은, 설경으로 등단을 하면서 시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기전여고 재직 당시부터 최명희를 가르쳤으며, 추후 작가로 키우고 돌봐주었다. 서울 서대문중학교(1972), 성동여자고등학교(1976), 영등포여자고등학교(1981) 교사로 교단에 섰다. 1983년에는 본교인 경희대학교로 돌아가 강사로 활동한 뒤에 1987년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설> 치매 어머니의 슬픈 노정을 괴로움 눈으로 바라보는 화자의 애달픔이 물씬 풍긴다. 몇 시냐, 몇 살이냐고 묻는 어머니의 굽은 등허리에 진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향기가 거룩한 능선을 모셔와 묵념하는 시간이라고 답하는 화자의 아가페적 담론이 비감미를 자아낸다. 게다가 반복적(…시냐, …이냐)인 질감이 여실히 살아나는 정감미가 이 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 같다. 시어의 물상이 조밀하고 언어의 질감이 감미롭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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