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저항운동·대중가요 전파도 ‘문학창작’
민족저항운동·대중가요 전파도 ‘문학창작’
  • 이대영
  • 승인 2020.02.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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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자 - (5) 진정한 문학창작이란
시·소설 같은 순수문학 벗어나
국가 초월하고 시대 넘나들며
사상과 체제에 저항하는 것
변혁 이끄는 신문화 창출활동
모두 문학창작이라 할수 있어
노벨상-개구리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문학창작에 눈을 뜰수 있다. 그림 이대영

◇문화적 서정과 역사적 서사의 화학적 결합 민족문학

강대국의 틈새에서 피해역사를 지녔던 폴란드. 민족정서와 조국사랑에 대한 극작가이며 소설가였던 헨리크 시엔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 1846~1916)는 1905년 서사적 작가로 뛰어남(because of his outstanding merits as an epic writer)을 인정받아 단독수상자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846년 5월5일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조국 폴란드의 볼라 오크세이스카(Wola Okrzejska) 마을에서 부유한 귀족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창시절에 문학작품에 관심을 갖고 읽었으며 창작에도 뜻을 가졌다. 바르샤바국제대학(Imperial University of Warsaw)에서 인문학을 전공했으며, 대학시설에 습작품을 발표했는데, 첫 작품은 ‘희생(Ofiara)’을 저술했음에도 흡족하지 않자 더 이상 출판을 하지 않겠다고 원고를 발기발기 찢어버렸다. 첫 출판은 ‘헛된 짓거리(Na marne)’이었다. 1866년 대학을 그만두고, 모교의 역사철학연구소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곳에서 모국 폴란드의 고어(古語)를 익혔다. 1867년 ‘젊음의 젊음’을 창작했고, 1868년에 왕세자와 로니에키 가정에 가정교사(tutor to the princely Woroniecki family)로 일할 수 있었다. 1869년 기자생활을 시작했고 에세이를 출간했다. 1871년 대학과정을 마쳤지만 그리스어 졸업시험에는 불합격했다. 1873년 칼럼리스트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1874년 칼럼모음집 ‘현재 업무’와 1875년 ‘현재의 순간(Chwila obecna)’을 발간했다.

1874년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지구촌의 넓고 새로운 안목을 얻고자 약혼녀 마리아 켈러(Maria Keller)와 같이 벨기에 브뤼셀과 프랑스 파리를 거쳐 1876년 영국 런던, 미국 뉴욕,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면서 현지집필로 에세이 ‘여행에서 편지’를 써서 여행비를 조달했다. 캘리포니아 애너하임(Anaheim, California)에서 한 동안 안착했으며, 모하비 사막, 요세미티 계곡 및 은색광산을 찾아갔다. 1878년은 유럽 각지를 여행했다. 지구촌 구경을 통해 체득한 안목으로 폴란드 민족성을 녹여 1882년 ‘등대지기(Lighthouse Keeper)’와 ‘용사 바르데크(Mistrz Bardek)’등의 단편소설을 창작했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17세기 폴란드 역사에서 국민적인 영웅과 격전지를 정선해 사실과 허구로 오색실타래를 꼰(weaving fact and fiction) 3부 대작(Trilogy)을 구상했다. 1884년‘불과 용검을 갖고(With Fire and Sword)’, 1886년 ‘대홍수(The Deluge)’에 이어 1888년 ‘대초원의 불(Fire in the Steppe)’를 발간하여 국민작가로 대두되었으며, 국민들에게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갖게 하는데 원동력을 마련했다. 1896년 ‘어디로 가십니까?(QuoVadis)’로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었으며, 190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음에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폴란드 독립운동과 국제적십자사 구호활동을 하다가 스위스에서 외롭게 혼자서 눈을 감았다. 사후에도 1951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 ‘쿼바디스(QuoVadis)’가 제작되어 오늘날 우리들이 관람할 수 있다.

만약 헨리크 시엔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마음일랑 아리랑 가슴이랑 쓰리랑(아리랑~쓰리랑~).’이란 소재를 그냥 넘기지 않고, 적어도 10부작 필생역작을 저술했을 것이다. 1)조선말의 호국의병들이 불렸던 아리랑에서 시작해서, 2) 태산준령보다 더 높았다는 보리고개(麥嶺)를 넘어보고자 아르헨티나 등 남미로 이주했던 동포들이 읊었던 망향가(望鄕歌) 아리랑, 3) 일제로부터 조국독립을 위해서 백두산을 넘어 중국 타이항산맥(太行山脈)의 산시성 쭤취안 원터우디(山西省左權縣雲頭底)까지 조선의용군 투쟁에서 저항가(抵抗歌) 아리랑, 4) 일본과 러시아는 협공작전으로 블라디보스토크의 고려인 30여만 명을 강제로 시베리아횡단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 불모지에 보냈는데 이때 희망의 씨앗이 되었던 희망가(希望歌) 아리랑, 5) 일본제국군의 성적쾌락을 위해 성적 노리개(sexual plaything)로 아시아대륙은 물론 동남아제도까지 끌려갔던 종군위안부의 힘없는 조선에 대한 원한가(怨恨歌) 아리랑, 6) 해방이후에도 6.25전쟁과 빈곤전쟁에서 필승의 의지를 다지면서 중동열사에서부터 독일의 지하탄광에서까지 불렸던 발악가(發惡歌) 아리랑... 이렇게 담대한 민족문학을 누군가는 빠짐없이 다 담아야 한다.

물론 1926년 나운규 주연의 무성영화 ‘아리랑’이 있었고, 1941년 미국의 여성 저널리스트 님 웨일즈(Nym Wales, 본명 Helen Foster Snow, 1907~1997)의 ‘중국에서 한국 저항혁명의 노래 아리랑(Song of Arirang)’단권본이 있었다. 이 정도의 문학작품은 스케일이나 수준에서는 속된 말로 ‘참새가 한 발로 쑥을 한두 번 헤집는 정도(蒿雀質)’에 지나지 않는다.

◇피와 땀으로 민족문학 창작, 민중 속으로 파고들면서

이탈리아 고전문학자이며 시인이었던 주수에 카르두치(Giuseppe Carducci, 1835~1907)는 1906년 ‘심오한 연구와 비판적인 분석을 고려하고, 또한 창조적 에너지, 신선한 스타일로 시적 걸작을 특징으로 하는 서정시적인 힘에 찬사’하는 의미에서 단독수상자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이탈리아 발디카스텔(Valdicastello)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위시해 고전작품을 두루 섭렵했다. 특히 근대작가인 알렉산드로 만초니(Alexandro Manchoni), 조반니 베르세(Giovanni Versace)의 작품을 유독하게 애독했고, 로마 가톨릭교회 계열 중학교에서 수재로 우수한 과정을 거쳐 피사사범학교(Scuola Normale Superiore di Pisa)를 1856년에 졸업했으나 문학에 뜻을 접지 못해 호모(Homer)의 일리아드(Iliad) 9권을 이탈리어로 완역해 출판했다.

그런데 1858년 형 단테(Dante)가 삶에 대한 비관자살을 하자, 의사이며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정치비밀결사원(advocate of the unification of Italy)으로 활동하시던 아버지도 세상을 버렸다. 집안을 책임지고 갈 남자라곤 혼자뿐이었기에 출판편집에 매진해서 일가를 부양해야 했다. 1859년 피사고등학교(High Shcool in Pistoia)에서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교사를 얻었다. 1860년 문학적 소질과 실력을 인정받아 볼로냐대학(University in Bologna)의 이탈리아문학 교수직을 맡았다. 그럼에도 정치 비밀결사원이었던 부친의 애국혈통을 이어받았는지, 국가통일시대의 신정부를 통렬히 비난하는 애국저항문학으로 ‘청춘시절(Youthhood)’과 ‘시 선집(Raccolta di poesia)’을 출판했다. 이를 계기로 민족주의적 시를 저술했고, 국민작가로 활약하다가 1890년에 상원의원에 당선되어 정치활동까지 했다.

여기서 명확하게 개념을 정리한다면, 문학창작(literature creation)이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순수문학, 즉 시나 소설을 창작하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라는 지역을 초월하고, 과거와 현재 및 미래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문학창작(creation of literature across the ages)이 진정한 의미이다. 민족성과 역사성을 보존하고 진흥하는 것에서 벗어나, 사상과 체제에 저항하거나 변혁을 도모하는 신문화 창출(new culture to transform)까지 문학창작이다. 문예활동은 단순한 저술활동에 한정되지 않고, 인류를 위한 이상적인 방향(Ideal direction for humanity)을 추가한다면 배우, 연출가, 극작가 및 영화제작자로서의 활동도 문학창작이며, 때로는 민족저항운동, 체제저항활동, 대중가요전파까지도 문학창작이다.

글=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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