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벼랑 끝 인간들의 처절한 욕망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벼랑 끝 인간들의 처절한 욕망
  • 배수경
  • 승인 2020.02.20 2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돈가방을 둘러싼 총 6개 챕터
각기 다른 사연의 절박한 그들
기회를 잡기 위해 드러난 민낯
관객들, 이야기 파편 짜맞추며
감정적인 공감대 형성하기도

생각지도 못한 큰 돈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당신은 어떤 모습이 될까?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돈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처절하게 드러내놓는다. 모든 것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인물이 사우나 락커에 넣어놓은 명품가방 속, 5만원권 돈다발로부터 시작된다.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은 108분이라는 길지 않은 상영시간을 빚, 호구 먹이사슬, 상어, 럭키스트라이크, 돈가방 등 6개의 챕터로 나눠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관객들 앞에 펼쳐놓는다. 시작점이 어디인지는 알려주지 않고 인물중심으로 하나씩 하나씩 툭 툭 던져지는 이야기를 짜맞추는 건 관객의 몫이다. 물론 눈치가 좀 늦어도 괜찮다. 후반부에 이르면 어느 순간 이야기의 파편들이 모인 퍼즐이 완성되며 전체 그림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돈가방의 마지막 주인이 누가 될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사라진 애인 때문에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태영(정우성), 사우나 아르바이트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중만(배성우), 과거를 지우고 새 인생을 살기 위해 남의 것을 탐하는 연희(전도연), 고리대금업자 박사장(정만식), 빚 때문에 가정폭력을 당하는 미란(신현빈), 불법체류자 진태(정가람)...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돈가방을 사이에 두고 이리저리 유기적으로 얽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거기에 중만의 아내 영선(진경)과 어머니 순자(윤여정)도 조용한 듯 보이지만 존재감을 드러낸다. 누구나 절박한 상황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인해 다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정도로 절박하다. 과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사연도 있지만 공감이 가는 이야기도 있다. 누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없이 하나하나의 인물에 포커스를 맞춰 펼쳐지는 이야기는 초반에는 어리둥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막상 돈에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눈 앞에 큰 돈이 나타난다면 눈빛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절박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면 짐승이 되더라도 그 기회를 잡고 싶어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돈가방을 둘러싼 이야기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가깝게는 최근 종영한 KBS2 드라마 ‘99억의 여자’도 떠오른다. 이미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 덕분이다. 영화 시작 중반이 넘어서야 나타나는 전도연은 등장부터 화면을 장악한다. 카리스마와 애교, 그리고 냉혈한의 모습까지 그간 보지못한 역대급의 캐릭터를 선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돈이 들어왔을 때는 아무도 믿으면 안돼”라는 말을 서늘한 표정으로 내뱉는 그녀 앞에서 관객들도 함께 얼어붙게 된다.

치매를 앓는 순자(윤여정)는 모든 것을 잃고 망연자실하고 있는 아들 옆에서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 수 있어. 두 팔, 두 다리만 멀쩡하면 언제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어”라는 말을 건넨다. 돈 앞에서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서 기억해두고 싶은 조언이다.

과연 돈가방의 마지막 주인은 누가 될 것인지(물론 영화를 이미 본 관객들은 알고 있는 답이다),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것은 ‘그 주인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그의 앞에 놓인 돈가방은 기회인가? 열어서는 안될 판도라의 상자인가? 그도 역시 짐승이 될 것인지, 아니면 인간으로 남을 것인지... 똑같은 질문을 관객 스스로에게도 한번 던져봄 직하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드러내놓고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장면은 없다. 그렇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짐작만으로도 충분히 잔인한 장면들이 꽤 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