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테논 조각서 받은 깊은 감명, 작업세계로 잇다
파르테논 조각서 받은 깊은 감명, 작업세계로 잇다
  • 황인옥
  • 승인 2020.02.24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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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이 만난 작가] 故 극재 정점식
서진달, 이인성 선배들과 교류
일찍이 전통세대와 ‘다름’ 인지
작업과정 담은 에세이 4권 집필
머리나 팔 잘린 형상에 매료
팔 없는 여인·여체 중점적 작업
형상·비형상 섞인 조형미 자랑
극재와상
극재 정점식 작 ‘와상’, 1985년, 45×71㎝, 캔버스에 종이 아크릴.

극재-환상2
극재 정점식 작 ‘환상’ 1986년, 90×115㎝, 캔버스에 유채.

“극재 정점식(克哉 鄭點植, 1917년~2009년)선생(이하 극재)은 경계 저편이 아닌 현실과 이상을 고루 버무린 그림을 그렸다. 삶의 철학을 동반한 극재의 회화는 리얼한 현실세계의 재현에서 일탈한 것 같으나 그의 시선은 오히려 현실을 직시했다. 이해받기 어려운 생경한 표현일 수도 있는 그것이 우리의 사고와 인식에 확장을 불러온다. 극재가 보여준 일련의 행보는 보수적인 한국화단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기존의 미술문화에 대한 회의와 반동이었으며 새로운 문화적 패러다임을 이끌어낸 기폭제였다고 할 수 있다.” (서영옥, ‘극재 정점식 평전-그 삶의 궤적’ 2018년)

2018년에 이 지면을 통해 약 3개월간 극재의 예술세계를 조명한 바 있다. 극재가 탄생한지 101년이 되는 해였다. 2017년 대구의 몇몇 미술관과 갤러리에서는 극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개최했다. 당시에 발표한 발제문과 대구신문에 연재한 내용을 정리해 2018년 8월에 한 권의 책(극재 정점식 평전-그 삶의 궤적)으로 묶었다. 극재 평전 서문에서 밝힌 것은 극재의 예술세계에 대한 입체적인 연구를 향후의 과제로 남긴다는 약속이었다. 이 글이 그 과제의 진입로가 되었으면 한다. 방법은 극재가 남긴 네 권의 책을 정독하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야말로 극재의 예술세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한다.

2003년에 한국에서는 대하드라마가 하나가 제작됐다. 작은 단서에 기댄 이 드라마는 2004년 3월까지 방영된 ‘대장금’이다. 의녀(醫女) 장금(長今)의 삶을 재구성한 픽션(fiction)인 대장금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국외에서도 사랑받았다. 생졸년 미상의 여인 장금이 의녀로서는 유일하게 임금의 주치의였다는 짧은 기록이 드라마가 기댈 수 있는 단서의 전부였다. 조선의 중종이 마지막까지 몸을 맡긴 의녀였다는 기록이 54부작의 드라마를 탄생시킨 것이다. 픽션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픽션도 한 나라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메신저 역할을 한다. 납득할만한 근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스토리가 한 몫을 한 것이다. 작더라도 단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미술작품도 다르지 않다. 미술작품은 대개 가상이나 허상으로 치부된다. 현상을 넘어 민족의 기개와 가치관에 더해 개인의 정서를 담고 있는 정신적인 기호로도 작용한다. 그 전에 선행될 것은 작가와 그의 예술에 대한 이해이다. 예술세계에 대한 서술에서 종종 부딪히는 벽 하나는 단서의 부재에서 오는 막막함이다. 정확한 정보습득은 작품(또는 예술세계)이해에서 요구되는 필수항목이다. 육성을 들을 수 없는 작고(作故) 작가의 경우 특히 더 그렇다. 작가의 유언이나 메모, 편지에서 요긴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 작업일기는 예술세계를 비추는 조명등이라 할만하다. 작가의 수필집도 간과할 수 없다. 극재의 수필집은 단순한 작업일기 이상이다. 폭넓은 지식체계 위에 서술한 전문서적에 가깝다. 30년 전 극재가 필자에게 사인해서 건네준 4권의 에세이집이 더욱 소중해지는 순간이다. 보물처럼 간직했던 이유는 스승 극재의 바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다독가로 잘 알려진 극재는 생전에 네 권의 수필집을 남겼다. 논문「아마튜어리즘의 자발성과 유희」(제 18회 국제학술심포지움 논문집, 대한민국예술원, 1989)등도 있지만 수필은 극재가 평생 동안 그린 그림처럼 꾸준했다. 극재가 남긴 네 권의 수필집『아트로포스의 가위』(1981년, 흐름사), 『현실과 허상』(1985년, 도서출판 그루), 『선택의 지혜』(1993년, 미술공론사),『화가의 수적』(2002년, 아트북스)을 보면 알 수 있다.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과정을 일기로는 남기지만 책으로 엮는 일은 흔하지 않다. 현대에 비해 정보전달수단이나 인쇄매체가 발달하지 못한 과거에는 더욱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극재는 수필집을 네 권이나 남겼다. 평생 교직에 몸담았던 화가였으나 저술가로서의 자질도 갖추었음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에세이집 네 권 모두 극재가 삶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감춰진 세계와의 유대관계를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였음을 입증하는 단서로 유효하다. 그의 예술관을 탐색할만한 자료로써 손색이 없다.

극재의 첫 번째 에세이집은「아트로포스(Artopos)의 가위」이다. 263쪽으로 구성된 이 책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 극재가 신문이나 잡지의 청탁을 받고 쓴 글을 한데 모은 것이다. 이 책 서문에서 극재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한정된 지면 위에 게재된 이 단문들은 바쁜 가운데 마지못해 짜낸 서툰 글이며 청탁의 성질상 시사적인 문제를 다룬 내용이다.” 1981년 6월 30일에 인쇄되고 같은 해 7월 10일에 발행된 이 책은 공교롭게도 극재가 작고한 6월 10일과 그리 멀지 않은 계절에 발간됐다. 첫 번째 수필집을 세상에 내어놓은 지 28년이 흐른 초여름 날 새벽에 극재는 삶의 경계를 넘었다. 여름의 눈부신 태양처럼 열정적으로 삶을 채색한 극재는 노력파였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비로소 이겼다는 그의 호 극재(克哉)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력’이야말로 극재의 신념을 올곧은 방향으로 이끈 삶의 키워드가 아니었을까.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모두 거친 세대지만 성찰의 태도를 유지하며 쉬지 않고 새로운 창작을 모색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제 극재의 글 속에 투영된 극재의 예술관을 탐색할 차례다. 먼저 극재가 추상화가로 자리매김하기 전 동기에 관심이 모아진다. “1937년-38년 나는 조양회관에 있는 김용조 화실에 드나들면서 이인성, 서진달과 같은 선배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존경해왔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고 나름대로 철이 들면서 그들로부터 멀어졌다. 왜냐하면 나는 이들의 전통적인 체질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정점식, ‘화가의 수적’에서) 서진달(1908~1947)보다는 9세, 이인성(1912~1950)보다 5세, 김용조(1916~1944)보다는 겨우 한 살 아래였던 극재는 92세에 생을 마감했고 생의 말년까지 전통적인 체질과 다른 독창 창작에 매진했다.

극재는 형상과 비형상이 두루 버무려진 조형언어를 구축한 화가이다. 그의 이러한 추상회화를 한 문장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극재의 작품제작방식은 단순히 재료의 운용이나 주제를 고민하는 정도에 머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는 방식에 골몰했던 극재는 사고의 전환으로 본질적인 것에 주목했다. 그는 일찌기 서구미술에 감명을 받았지만 피상적인 형식을 표방하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다양한 서적을 통해 학식과 견문을 넓힌 극재가 “처음 서구미술을 접했을 때 감명을 받은 것은 그리스의 조각이다.” 에세이집 ‘아트로포의 가위’에 수록된 내용이다. 그의 첫 번째 에세이집 첫 페이지에 서술한 ‘아트로포스의 가위’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시작된다.

“그 조각 중에서도 통칭「파르크의 운명의 삼여신三女神」이라는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이며 그것은 세 사람의 여신이 비스듬히 앉아있는 조각으로서 머리나 팔은 떨어져 나가고 몸통만 남아 있는 작품이다. 1687년 터어키군이 침입해서 파르테논을 화약고로 사용하다가 자연 폭발한 나머지 이 파르크의 여신들도 수난을 당한 것이다. 피디아스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대리석으로 된 이 조각의 특징은 머리나 팔이 떨어져나갔기 때문에 그 몸통을 감싸고 있는 옷자락에 있다. 잔잔한 물결처럼 일고 있는 옷의 파상(波狀)과 그 비단결 옷을 통해서 보이는 육체의 미묘한 움직임이다. 이 세 여신들의 옷자락과 육체가 서로 얽혀 꿈틀거리는 모습은 우리들의 눈을 신비의 미궁(迷宮)으로 이끌어간다. 내가 보고 있는 이 파르크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명은 오히려 머리나 팔이 떨어져나갔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것이 갖추어져 있었다면 옷자락과 그것이 보여주고 있는 부드러운 육체의 싸늘한 체온과 같은 주제에 눈이 집중적으로 쏠리지 않았을 것이다.”

위의 글 ‘아트로포스의 가위’에서 극재는 머리나 팔이 잘려 나간 토루소를 주시한다. 수난을 당해 몸이 조각난 파르크의 여신들에게서는 온기를 기대할 수 없다. 파편화된 여신들의 몸이 풍기는 싸늘한 느낌은 전쟁이 남긴 참상의 단면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극재의 시선(관심)이다. 피상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이면에 가려진 본질을 꿰뚫어 보려고 한 극재는 그리스 조각에서 받은 감동으로 작업세계를 이어간다. 여인이나 토루소는 극재의 작업에 등장하는 단골메뉴 같은 것이다. ‘누드’, ‘와상’ ‘여인’ 이란 제목을 단 여체는 90년대까지도 반복적으로 그려졌다. 이를테면 1986년에 제작한 ‘환상’과 1985년에 그려진 ‘와상’이 같은 맥락이다. 바로 재현으로서의 예술보다 의미를 환원한 직관적인 예술을 찬미하는 극재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미술학 박사 shunna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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