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일상
코로나 일상
  • 승인 2020.02.2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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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달랑 3장의 마스크. 이번 코로나19를 너무 가볍게 여겼나 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스크라곤 지난 주 잘 알던 지인에게서 받은 1회용 마스크 세 개가 전부다. 아침부터 직장 근처 슈퍼마켓과 편의점, 약국들을 순례한다. 없다. 어느 가게에도 마스크는 없다. 아뿔사. 열 몇 곳의 상점들을 돌고 돌아도 마스크는 품절이다. 막막해 진다. 오전 시간을 그렇게 허비했다. 점심시간 마저 마스크를 구하러 다니느라 점심 식사 한 끼는 넘겨버렸다. 차에 올라탄다. 대구 시내 곳곳을 누비며 제법 큰 가게마다 가 보지만 대답은 똑같다. 마스크 없이 이 전쟁통을 넘길 자신이 없다. 잘 아는 고향 후배가 운영하는 자동차 경정비 업소에 들르니 공업용 마스크 몇 개를 준다. 감지덕지다. 사무실로 들어왔다. 직장 동료가 마스크 하나를 건넨다. 감격이다. 이마트에서 아침에 마스크를 싼 값에 팔았는데 20분 만에 동났다고 한다. 마스크를 사려 아침 8시부터 기다린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난 그럴 여유(?)가 없다. 그냥 주변 가게나 약국에서 마스크 하나 사는 게 불가능 한 일이 되었다. 여긴 대구다.

지난주 목요일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졌다. 대구가 우한보다 더 한 것 같다. 지난 주 토요일엔 달구벌대로가 뻥 뚫렸다. 지나다니는 차가 없어 평소의 정체 현상은 아예 사라졌다. 기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거리가 삭막해 보인다. 이런 거리의 모습은 처음이다. 아까 후배가 운영하던 경정비 업소에서 만난 사람 누구와도 손을 잡고 반갑단 인사를 못했다. 마스크를 쓴 하얀 얼굴들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눈으로만 인사를 하는, 그런 모습이 정석이 됐다. 지난 주 월요일 신호 대기 중이던 내 차를 뒤에서 다른 차가 들이받은 바람에 고향 후배에게 부탁해 정비공장에 차를 맡겼다. 그 차가 오늘 돌아왔다. 그런데 트렁크가 부서진 내 차의 판금작업을 한 수리 기사가 하필 신천지 교회의 교인이었단 얘길 전해 들었다. 그 기사는 당분간 자가 격리에 들어갔고 아무런 증상이 없단 얘기도 함께 들었다. 그래도 소독용 메탄올을 빌려 핸들과 기어봉, 주차브레이크, 문손잡이 같은 곳곳을 닦아냈다. 그러고도 찝찝해서 오늘은 손 세정제로 한 일고여덟 번은 손을 씻어냈다. 머리가 휑 해진다. 병원이 제일 겁난다. 마침 이번 주 목요일에 치료를 받으러 가기로 예약이 되어있던 치과에서 이번 주엔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으면 안되겠느냐는 부탁 전화가 온다.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러마고 대답한다. 다음 예약 날짜도 정하진 않았다. 그래도 입을 벌리고 치료를 받거나 벌린 입을 상대로 치료를 할 각자의 걱정을 서로가 덜었으니 기분이 가뿐해진다.

퇴근이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갔던 실내 운동 연습장에 들렀다. 5층까지 빽빽하게 사무실로 채워진 이 건물, 평소 같으면 주차 전쟁을 치를 이 건물의 주차장이 텅 비었다. 1층 횟집이 영업을 스톱했다. 손님은 끊어지고 횟감은 오래 둬 싱싱함을 잃으니 장사를 할 수가 없다는 이유란다. 2층 당구장도 손님이 끊겨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3층도 휴업, 이 연습장도 “내일부터 오후 2시에 문을 열 거예요”라고 한다. 손님이 한 명도 없어 문을 열 이유가 없다는 거였다. 그 시간에 그 연습장엔 나와, 사장님 단 둘 뿐이었다. 머리끝이 쭈뼛해진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와 아들 녀석이 멀찌감치 서서 다가오질 않는다. 종일 밖으로 돌아다녔으니 혹시 모를 일이다. 오늘은 서재에서 자야지. 공포 영화를 보는 것 같다. 하필 몇 주 전에 OTT 프로그램으로 본 ‘감기’라는 영화의 장면들이 자꾸 떠오른다. 이 상황이 한마디로 뭘까. 공포? 혼돈? 너무 심한가? 그럼 그저 평소와 다른 뒤숭숭함? 어쨌거나 평소의 안정감은 아니다.

대체 한 열흘 전 쯤 정부가 왜 ‘전염병을 잡을 수 있으니 모임도 하고 행사도 취소하지 말라’고 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완전 ‘이럴려고 그랬나’고 되묻고 싶다. 그런데도 그런 얘기를 한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라고는 한마디도 없다. 뉴스를 펼치기도 겁이 난다. 몇 명, 몇 십명이 아니라 일,이백명을 넘나든다. 매일의 확진자 수가. 처음부터 입국을 막았으면 이랬을까 하고 생각하니 더 분통이 치민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로의 입국은 자유자재다. 이래도 되나. 베트남이나 러시아도 다 입국을 막았는데, 그래서 확진자가 최소한인데, 우리는 왜 이랬나. 자조감이 든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외국에서 쫓겨 돌아온다. 관광지에 발도 못 붙이고서 떠밀려 되돌아온다. 아예 한국 사람을 격리 시키려는 나라도 생겨났다. 우리가 BTS를 배출한 나라고, 아카데미상을 휩쓴 나란데도 그렇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위축된다. 내 애국심이 부족한가 보다. 만일이지만, 아니, 만일이고 싶지만, 내 아들이 열이 나고, 목이 부어오르고 기침을 해대어도 사흘이나 기다려 전염병에 걸린 것인지 여부를 진단받을 수밖에 없다면. 그렇다면, 난 어떤 기분일까. 진땀이 난다. 약도 없는 집에서 끙끙 앓고 있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면. 전염이 됐는데도 병상이 없어 적절한 치료를 못 받는다면. 어휴. 남의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찌해야 하는가. 답을 모르겠다. 여기 대구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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