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도 못나온 그녀, 최초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초등학교도 못나온 그녀, 최초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 정경은
  • 승인 2020.02.26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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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다 - (6) 삶과 업적 살펴보기 - 2
스웨덴 작가 ‘셀마 라겔뢰프’
엉덩이 부상에 다리 절룩거려
어릴때부터 독서에 큰 관심
오로라 등 지역의 자연현상
그녀의 상상력·창작력 더해
대표작 ‘닐스의 신기한 여행’
아동애독서로 범국민적 사랑
1909년 노벨문학상 수상
노벨상-초등학교
 

◇프랑스 유치원에서 글쓰기보다 그림그리기부터 가르치는 이유?

고대인디아 언어였던 산스크리트어 ‘정글(Jungle)’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땅이다. 유치원 아이들조차도 알고 있는 ‘정글북(The Jungle Book)’은 그림동화가 아닌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인도에서 태어나서 1894년경 인도북부지역을 여행하면서 들었던 ‘판차탄트라(Panchatantra)’와 ‘자타카(Jataka)’우화(설화)와 사냥꾼이 말하는 동물의 이야기를 녹여서 갖고 있던 수첩에다가 그림을 그렸다가 문학작품으로 다듬었다. 예를 들면 몽구스와 뱀이 인간에게 도덕성을 설파하는 ‘리키티키태비(Rikki-Tikki-Tavi)’버전의 작품을 썼던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Joseph Rudyard Kipling, 1865~1936)은 1907년 “관찰력, 상상력, 독창력, 정체성에서 뛰어난 세계적인 저자로서의 해설적 재능을 고려해”단독수상자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오늘날 프랑스 유치원에서는 글자를 깨우치기 전에 사인펜으로 백지에다가 그림부터 그리도록 한다. 음악을 듣고도 그림을 그리고, 우체국을 견학하면서 사무실 풍경을 스케치하며, 동화를 읽고도 줄거리나 느낌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가르치고 있다. 사실, 노벨수상자 가운데 화가가 아니더라도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이 대체로 많다. 선택과 강조, 포착과 구성, 표현과 의미전달에서 그림은 글보다도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연경관, 색채감, 경외심…등을 한꺼번에 종이 위에 평면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의 총결집이기 때문이다.

그는 1865년 12월30일 영연방제국 인도 봄베이(Bombay, Bombay, Bombay Presidency, British India)에서 태어나 1878년 13세로 대영제국의 군인이 되고자 영국 노스데본(North Devon)에 있는 병사양성학교인 유나이티드서비스대학(United Service College)에 입학해서 군사학을 2년에 마쳤으나 욕심은 옥스퍼드대학(Oxford University)에서 배우고 싶었지만 재능도 경제력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1880년 조국 인도로 귀국해서 1882년부터 1889년까지 파키스탄 동북부 라호르(Lahore) 도시의 “토목·군사관보 및 개척자(Civil & Military Gazette and Pioneer)”지역신문의 편집을 맡았다. 숨을 쉴 틈이 나면 조국을 두루 여행하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적고 그리면서 수합했던 자료를 기반으로 문학작품을 창작했다. 소설로는 1888년‘왕이 되려던 사나이(The Man Who Would Be Kin)’, 1894년 ‘정글북(Jungle Book)’, 1901년 ‘킴(Kim)’그리고 1902년 ‘그냥 그런 이야기들(Just So Stories)’ 등을 집필했다. 시(詩)로는 1890년‘만달레이(Mandalay)’와 같은 해 ‘군가 딘(Gunga Din)’을 내놓았다. 1885년부터 1888년까지 철도역 심라(Shimla, Lahore Railway Station)에서 근무하면서 1886년 ‘부문별 노래(Departmental Dittles)’시집과 1887년 ‘산중야화(Plain Tales from the Hills)’단편소설집을 발간했다.

정글북에서 나오는 “늑대에게 길러지는 수놈새끼 개구리 모우글리(‘man-cub’Mowgli, who is raised in the jungle by wolves)”가 되지 않고자 1887년부터 1889년까지 한국, 중국 등지 극동아시아와 미국을 여행하고 1890년에 영국으로 돌아왔다. 1891년 정글야생동물을 소재로 ‘삶의 장애(Life‘s Handicap)’을 창작, 1892년 인도군대생활을 묘사한 마지막 시 구절“당신은 나 군가 딘보다 멋진 사람이지요(You’re a better man than I am, Gunga Din!)”로 끝나는 ‘둥가 딘(Gunga Din)’시(poetry)들이 수록된‘병영의 노래(Barrack-Room Ballads and Other Verses)’는 그 웅장함에 대영제국 온 국민들이 성원을 보냈다. 1896년 ‘7대양(The Seven Seas)’은 국민호응으로 대영제국의 애국시인으로 추앙받았으며, 1899년‘백인의 짐(The White Man‘s Burden)’, 1910년‘만약(If~)’, 1919년 ‘복사본 제목의 신들(The Gods of the Copybook Headings)’등의 작품을 쏟아내었다.

◇최초 여성 노벨문학상자

“고상한 이상주의, 생생한 상상력, 저술을 통한 영적인식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1909년 여성으로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스웨덴의 작가 셀마 라겔뢰프(Selma Ottilia Lovisa Lagerl?f, 1858~1940)였다. 그녀는 인생자체가 한편의 순수한 동화이고 인생드라마였다. 1858년 11월20일 스웨덴 배름랜드 몰바카라는 작은 동네에서 여자아이로 태어나면서 엉덩이관절에 부상을 당해 어릴 시절에 절룩거렸다. 그래서 동년배 아이들보다 진지했고 차분하게 할 수 있는 것이란 독서뿐이었다. 할머니를 통해 고전과 전통문화에 모든 문학적 스토리텔링을 섭렵했다. 공식적인 학교는 생각도 못 했기에 전통적인 학습체계(Volksschule system)에 의해 집에서 영어, 프랑스어를 하나씩 익혔다.

스웨덴이라는 신비스러운 백야현상, 오로라현상, 만년설, 토끼꽁지처럼 짧은 일조시간, 자작나무가지를 울리는 북서풍 등의 특이한 자연현상이 그녀의 상상력과 창작력을 더해 문학적 자양분을 축적했다. 7살에 소설을 읽기 시작해서 10살부터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했다.왕립여성지도자 아카데미(Royal Women‘s Superior Training Academy)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도 있었으나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는“여자가 배워서 뭘 하느냐?”고 극구 반대를 했다. 1882년부터 1885년 스톡홀름에 가서 “고등학교교사세미나(H?gre l?rarinneseminariet)”에 청강등록을 하고 들었다. 이렇게 얻었던 자격으로 1885년부터 1895년까지 랜드스크로나 여자고등학교(high school for girls in Landskrona)에서 가르칠 수 있는 행운까지 얻었다. 1891년 33세 나이로 ‘예스타 베를링 이야기(G?sta Berling’s Saga)’라는 현상소설 공모에 당선해 문단데뷔를 했다. 1894년‘보이지 않는 고삐(En osynlig tyg)’를 발표했고, 1897년에 왕실장려금을 받아서 유럽과 아시아 등의 해외여행을 통해 작가로서 식견을 넓혔다. 외국여행의 성과물로 ‘반(反) 그리스도의 기적(Antikristens mirakel)’과 ‘예루살렘(Jerusalem)’을 저술해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필생대작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농민신앙과 향토애의 상극상황을 묘사한 대작 ‘늪가 집 딸’에서 빈가처녀(貧家處女)의 선의와 순수한 사랑을 묘사했다. 1912년 영화로 각색된 중편소설 ‘환상의 마차(En fantastisk vagn)’을 창작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아동애독서인‘닐스의 신기한 모험여행(Nils Holgerssons underbara resa genom Sverige, 1906~1907)’으로 범국민적 사랑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국민적 지지를 얻자 1907년 웁살라대학교(Uppsala University)과 1928년 그라이프스발트 예술대학교(University of Greifswald‘s Faculty of Arts)에서는 명예박사학위(Honorary Doctorate)를 수여했다.

글=정경은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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