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고발로 막을 수 있다고?
언론을 고발로 막을 수 있다고?
  • 승인 2020.03.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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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전북대 초빙교수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당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제일 큰 작업은 후보로 나갈 선수를 공천하는 일인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대거 물갈이를 해야 된다는 압박감에 각 당 지도부는 몸살을 앓고 있다. 자진해서 그만 하겠다는 의원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 같지만 불출마 선언자들도 자의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험지출마를 종용하는 당 공천위원회의 뜻에 몰려 마지못해 그만 두거나 락지(樂地)를 버리고 험지를 택하게 된다. 자유한국당 황교안은 수도권의 험지출마를 공언했다가 한 달 만에 종로구를 선택하는 신중함을 보였다. 처음부터 이낙연과의 한 판 싸움을 벌이겠다고 장수다운 모습을 보여야 했는데 너무 머뭇거리다가 끌려 나가는 모습 같아 점수를 좀 잃었다. 그러나 종로대전으로 불리며 모든 국민의 눈이 집중된 곳이라 승패 간에 접전이 예상된다. 이 모든 일들이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적나라하게 전해지고 있으며 요즘은 SNS가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있어 국민들이 먼저 알고 나서는 판이 되었다.

지난번 조국사태가 벌어졌을 때 모든 언론들이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기 했지만 그렇지 않은 행태도 엄청나게 많았다. 이른바 보수와 진보 양 진영으로 나뉘어 공방을 주고받았는데 과장과 억지가 많아 크게 실망시켰다. 특히 광화문에 모인 사람과 서초동에 집합한 청중의 숫자를 놓고 10배 20배를 부풀려 보도하는 통에 많은 국민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어떤 중견 방송사의 보도국장이 서초동 청중 숫자를 “떡 보니 100만이더라”고 말했다고 해서 시중의 비아냥 감이 되었다. 한쪽으로 기울면 올바르게 볼 수 없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중심을 잡고 냉철해지지 않으면 요즘 같은 시국에는 판단력이 흐려지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선거라는 대공사를 앞두고 정당마다 자당의 승리를 위한 고육지책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는 자칫하면 실수가 나오게 된다. 가뜩이나 예민해진 신경을 건드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말실수는 옛날부터 있어온 일이지만 잊을 만하면 다시 불거지는 것은 평소 이에 대한 훈련을 게을리 해서다.

이번에 말썽을 빚은 사건은 ‘민주당만 빼고’라는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이다. 임미리라는 교수의 글이다. 그는 민주당정부의 수많은 문제점을 나름대로 분석하여 다음 총선에서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말자는 뜻으로 이 글을 썼을 것이다. 많은 칼럼니스트들이 여러 매체를 통하여 자기의 의사를 발표하는 수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중에서 “민주당을 찍지 말자”는 대목이 선거법상 금지하고 있는 낙선운동에 속한다고 판단한 것이 민주당 정치인들이다. 이 문제는 과거에도 수없이 많은 파동을 겪었다. 여러 시민단체들이 모여 정식으로 낙선운동 대상자를 발표하고 그들에 대해서 대대적인 낙선운동을 전개했던 일이 있다. 이른바 공명선거 추진협의회의 역할이었다. 언론매체들은 다투어 이 명단을 보도했으며 낙선운동 대상자로 지목된 인사들은 펄펄 뛰었다.

낙선운동의 기준은 명확했다. 파렴치범 전과자, 부정선거 운동자, 금품 살포자, 관권 이용자, 공약 미실천자, 상습 거짓말쟁이 등등 공인으로서의 부적격자로 판단되는 후보자를 철저하게 가려내어 그들에게는 표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표를 달라는 당선운동이나 주지 말라는 낙선운동은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당선운동은 적법이지만 낙선운동은 불법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미사여구를 나열하며 입에 발린 달콤한 언변으로 국민을 속이는 당선운동은 그것 자체가 법의 선의를 어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관위의 판단은 달랐다. 그 때 공선협 관계자들이 이에 대한 항의를 표하며 낙선운동을 전개했다가 고발당하는 불상사까지 생겼다. 결국 모든 낙선운동은 그 때부터 규제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후보자에 대한 정당한 신상털기가 공식적으로 금지되는 통에 신바람이 난 것은 위에서 열거한 낙선기준에 들어있는 후보자들이다. 그들은 거리낌 없이 자신만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는 인물인양 대언장어(大言壯語)로 떵떵거린다. 4·15총선에서도 예외 없이 그런 인사들이 더 큰 소리칠 것이 뻔하다. 양심도 염치도 없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도 내 편이니까, 우리 진영이니까 서로 봐주는 풍조가 되어서는 자유와 정의 그리고 민주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될 자격이 없다. 그러한 후보자에게는 표를 주지 말자는 얘기를 쓴 것이 임미리교수의 칼럼이다. 이를 민주당에서 고발했다가 여론이 나쁘니까 얼른 취하했다.

과연 법을 위반한 것인지 심판을 받아봐야 할 사건 같은데 지레 겁을 먹고 물러서는 것을 보면 뭔가 오금이 저리는 모양이다. 고발당한 당사자는 글 한 줄에 사법처리 대상이 될 뻔했는데 싱겁게 되었지만 걸핏하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반드시 진중한 사과까지 곁들여야 옳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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