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자발적 자가 격리 중
봄, 자발적 자가 격리 중
  • 승인 2020.03.0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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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다투어 피어나는 꽃소식으로 몸과 맘이 달뜨는 시절, 그런데도 우린 눈과 귀만 열어두고 코와 입을 가린 채 자가 격리 중이다.

“연둣빛 고운 숲속으로 어리고 단비 마시러 봄 맞으러 가야지. 풀 무덤에 새까만 앙금 모두 묻고 마음엔 한껏 꽃피워 봄 맞으러 가야지. 봄바람 부는 흰 꽃, 들녘에 시름을 벗고 다정한 당신을 가만히 안으면 마음엔 온통 봄이, 봄이 흐드러지고 들녘은 활짝 피어나네.”

가수 김윤아의 노래 가사처럼 나름 우린 봄날의 계획들로 설렘 가득한 날이었다. 그러한 상상과 희망을 품고 길고 지루한 겨울을 견뎌왔는데, 뜻하지도 초대한 적도 없는 ‘코로나19’의 방문으로 인해 우리의 봄날이 헛헛하게 지나가고 있다. 전쟁이다. 적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다만 비말(飛沫)과 접촉을 통해 스며들 뿐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설고 서슬 퍼렇게 칼날을 세운 ‘코로나 19’ 유령이 쳐 놓은 덫에 갇혀 두 손 두 발 꽁꽁 묶인 채 넋 놓고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 그저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거리마다 고요와 적막, 그리고 두려움이 촘촘히 박혀 있다. 봄날의 신부들은 결혼식을 뒤로 미루고 사람들로 넘쳐나던 동성로, 신학기를 맞아 학생들로 붐비던 교보문고나 도서관들도 일제히 기약 없는 폐쇄에 들어갔다. 조선 시대 중기 때 개장해 강경시장, 평양시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꼽혔다는 500년 역사의 대구 서문시장도 생긴 이래 처음으로 전면 휴장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봄나물이며 어물전 고기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었다. 사스, 메르스 때는 물론이고 2016년 11월 대화재 때도 일부 상가가 문을 열고 장사를 한 바 있었던 곳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가장들의 어깨가 말할 수 없이 애처롭다. 전장을 나서는 장수처럼 완전무장을 하고 집을 나서기는 하지만 무사 귀환을 장담할 수 없다. 유급휴가라고는 하나 앉은 자리마다 좌불안석이다. 끝이 보이지 않은 기다림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초조한 일상이 정작 ‘코로나19’의 감염보다 더 두렵다. 2차 감염의 두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고작 마스크 몇 장, 사기 위해 대형마트 앞으로 100m가 넘게 몇 겹의 줄을 새벽부터 섰음에도 빈손으로 돌아와야 한다. 병실이 없어 병원 앞에서 죽어간 이도 있었지만, 초연한 듯 2월이 가고 3월이 왔다.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던 삼일절이다.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선조들의 심정을 우리가 어찌 헤아려 볼 수 있을까만 어쩌면 일제의 식민통치보다도 자기 내면에서 계속해서 올라오는 불안이나 불확실성과 더 치열하게 싸웠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독립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우리가 하는 모든 희생이 다 부질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실제로 백범일지를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을 관련한 주요 저서를 보면 이와 같은 심경이 절절하게 적혀 있다고 한다. 마치 ‘지금의 우리 심정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감히 해 본다.

‘코로나19’가 가지고 있는 살상력보다도 ‘이게 과연 언제쯤 끝날 것인가?’ ‘어느 정도까지 더 전파가 될까’하는 불안감이 더 큰 것 같다. 미리 알 수 없는 인생이 희망일 수도 있지만, 때론 알 수 없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두려울 때도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불안감에 포기했다면 우리의 독립은 그렇게 쉽게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권투경기에서 관중들은 선수의 주먹에만 시선을 두지만 실제로 경기를 이어가는 건 선수의 다리라고 한다. 세게 맞아서가 아니라 다리에 힘이 풀리는 순간 경기는 끝나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우리네 삶을 이어가는 주요한 것들인 거 같아도 힘든 일을 겪어보면 알게 된다. 진짜 저력은 버티는 힘, 견디는 힘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제아무리 눈앞에 어퍼컷 스트라이크가 몰려와도 두 다리에 힘만 주고 있으면 괜찮을 것이다. 버티기는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다. 그저 나를 믿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는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선택할 줄 알라. 인생의 거의 전부가 이에 달려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이 떠오른다. 나부터 보호하자.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를 보호하고 지키는 일일 것이다. 3월의 봄날, 지금 나는 자발적 자가 격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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