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불안의 시대를 넘어 <2>
[문화칼럼] 불안의 시대를 넘어 <2>
  • 승인 2020.03.0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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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2018년은 번스타인 탄생 100주년이었다. 정말 다방면에 뛰어난 20세기 중·후반 가장 위대한 음악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작곡가들은 나를 작곡가로 인정 해주지 않는다. 피아니스트들도 그러하다. 그리고 지휘자들 역시 나를 지휘자로 인정치 않는다.” 라고 불평했지만 실은 그 세 가지 분야 모두 다 위대했다. 재작년 번스타인을 기리는 음악회가 많이 열렸는데 단연 눈에 띄는 공연이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에 의한 번스타인 2번 교향곡의 월드투어 연주였다.

짐머만이 아직 십대 후반일 때 그의 천재성을 눈여겨본 번스타인에 의해 두 사람은 서로 음악적 인연을 맺게 되었다. 어느 날 짐머만과 자신의 2번 교향곡을 함께한 뒤 “내가 100세가 되면 그 때 다시 한 번 협연을 하자”고 그에게 말했다. 세월은 흘러 번스타인은 가고 없지만 짐머만은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 작품으로 음반 출반에 이어 월드투어를 다녔다. 당시 핀란드의 명장 ‘살로넨’이 이끄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내한하기도 했다. 나 역시 우연히 사이먼 래틀의 런던 심포니와 함께한 짐머만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번스타인의 2번 교향곡은 자주 듣던 곡이 아니기에 사전 공부가 필요했다. 특히 고가의 공연을 볼 때면 더욱 그러하다. 이 작품은 불안의 시대(전쟁과 냉전 등)를 관통하며 만들어 질 수밖에 없었던 한 그림(호퍼의 밤의 사람들-1942)과 시(오든의 불안의 시대-1947)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2차 대전 후 번스타인 역시 냉전의 찬바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그는 이 두 작품에서 깊은 영감을 받게 된다. 아무튼 이렇게 탄생한 이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나는 그 당시 열심히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를 하였다. 특히 호퍼의 작품에 나타난 네 사람의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암울한 기운이 가득한 분위기 속에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유리된 듯한 표정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 모습이 가끔씩 떠오른다.

지금 우리는 우울하고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다. 변종 바이러스의 창궐로 모든 일상이 정지되었다. 어디를 갈 수도, 누구를 만날 수도, 심지어 점심 한 끼 해결하기도 어려운 시절이다. 이런 현실은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다. 무엇보다 이로 인해 경제적 암흑기에 접어들게 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닥쳐온 어려움에 모두들 힘들다. 이 기세가 수그러들지가 않는다. 그렇지만 공포에 집단 감염되지는 않은 것 같다. 대 혼란이지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아주 빠르게 축적하고 있다. 벗어 날 수 있는 로드맵도 곧 완성 될 것이다. 이것을 위한 위로부터의 의지만큼이나 아래로부터의 에너지도 대단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너진 일상의 충격은 간단치 않다. 다들 적응에 힘들어 한다. 모두들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나를 잠시나마 시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있다. ‘미스터트롯’ 내가 지금까지 본방 사수한 프로그램은 적어도 기억에는 이것이 처음 아닐까 싶다. 오락적 요소가 완벽하다. 트로트의 재발견이다. 최근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기는데 미스터트롯은 다른 것과 궤를 달리한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무엇이 있다. 그리고 음악을 넘어서는 특별한 감동이 여기에 있다.

지난 목요일 방송 준결승. 14명 중 절반은 탈락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안전주의 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모험을 하는 청춘들이 있었다. 이런 순간에는 하나라도 더 보태려 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김호중, 이찬원, 나태주는 오히려 뭔가를 빼버린다. 개인적으로 결승 진출은 이 중 한명 이상은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이들의 용기(결코 무모한 것이 아니다)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정말 칼을 갈고 나와 절창을 보여준 장민호. 그는 이날 베스트였지만 까딱 까딱 리듬을 타며 놀 줄 아는 영탁에게 뒤지고 만다. 그리고 퍼포먼스 없이 차분히 서서 노래의 본질에 충실한 임영웅. 그의 깔끔한, 그리고 풍부한 감성 앞에는 당할 자가 없다. 이 장면을 보며 화려한 비주얼, 갖은 양념으로 덮은 것보다 좋은 재료로 소박하지만 원칙에 충실하게 만든 건강한 음식이 우리를 치유할 수 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내가 언제 위험에 노출 될지 알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은 누구에게나 불안하고 힘들다. 살림살이도 암울하다.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받게 되는 사람이 얼마일지 짐작도 안 되는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난세를 이겨내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이웃을 위한 선행은 모두의 가슴에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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