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흐르는 대구의 시간
천천히 흐르는 대구의 시간
  • 승인 2020.03.0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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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SQ힉스아카데미 경영학 박사
최근 대구의 시간은 마치 거북이 같이 느릿하게 흘러간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곧 저녁이 되곤 했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마디게 흐른다. 학교의 개학이 미루어지고 재택근무 하는 직장이 많아 아내랑 둘이 하루 세 끼를 같이 먹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물론 이런 호사에는 아픔도 있다. 지인의 가족이 코로나 확진자로 판명이 났다. 혹시나 하는 우려로 출입을 삼가게 되니 노모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또 어디 한번 외식을 하려 해도 단골 식당과 집 근처의 식당이 거의 문을 닫고 있어서 오히려 그 분들의 사정에 마음이 아프다.

또 주일예배를 비롯한 공적인 모임과 크고 작은 사적 모임이 거의 취소되었다. 특히 한 달 가까이 공식적인 예배를 쉰다는 것은 신앙인과 목회자에게는 상상해 본 일이 없는 것이어서 요즘 대구의 시간은 심지어 멈춰있는 것 같기까지 한 것이다.

이런 느낌은 몇 년 전 라오스를 방문했을 때에 체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것을 습관적으로 빨리 해야 했는데, 라오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천천히 떠올라 천천히 움직이는 라오스의 해처럼 라오스 사람들도 천천히 살고 있었다. 아,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싶을 만큼 라오스의 느린 시간은 우리에게 고요함과 느긋함을 선물해 주었다.

최근 대구의 시간은 라오스의 시간을 옮겨 놓은 듯하다. 느려진 시간이 소리마저 삼킨 듯 일상이 고요하다. 오랜 만에 내가 아침을 준비해서 아내와 함께 식사를 한다.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려 제법 능숙한 바리스타처럼 커피 잔을 아내에게 내민다. 커피 향은 색깔을 품은 채 공간 속으로 천천히 퍼져 간다.

“허… 우리에게 이런 시간도 있네”

커피 잔을 입에 대며 아내에게 말을 건넨다.

“정말 바삐 살아 왔는데, 이즈막에 우리에게 이런 시간도 다 오네요” 라며 아내도 공감한다.

누이에게 전화가 왔다. 나가야 할 곳이 없으니 만나는 사람이 없어 혈압이 떨어졌단다. “그렇게 순둥이 같은 누이도 사람을 만나며 혈압이 올랐었구나”하는 생각에 “모처럼 집에서 푹 좀 쉬라”고 인사를 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만큼 휴대폰으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각지의 지인들이 대구에 산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나와 대구의 안부를 물어 온다.

“요즘 괜찮나요?” 혹은 “대구, 요즘 힘들지요?”라는 인사로 시작하여 “부족하신 것 있으시면 뭐든 말씀하세요. 꼭 구해서 보내드 릴께요”라고 진심어린 말을 건네 온다.

나뿐 아니라 대구를 함께 걱정해 주시니 그 마음이 참으로 감사하다. 아직 대구는 괜찮다. 개인 사업하는 분들의 타격이 심하고 심지어 의사 친구들도 병원 문을 당분간 닫고 ‘코로나 19’의 검진과 예방을 위한 봉사활동에 땀을 흘리고 있지만 그래도 대구는 괜찮다. 일부 정치권이나 언론계에서 ‘대구 코로나’라 떠들기도 하고 대구·경북 사람들이 타지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대구시장과 공직자들이 잘 하느니 못하느니 말들 하지만 그래도 대구 사람들, 잘 감당하며 잘 지내고 있다.

얼마 전, 충청도의 한 교회에서 마스크를 한 박스 보내왔다. 얼마나 수고해서 이곳저곳에서 구했는지 십여 종류의 마스크가 섞여있다. SNS에 공유했더니 마침 마스크를 구하고 있는 분들이 있어서 바로 보냈다. 수도권에 있는 의료인들도 안부를 묻고 함께 도울 방안을 찾아 보겠다 말씀하신다. 고마운 분들이다.

사실 대구와 경북은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코로나 19’가 지나가도 경제적인 여파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구와 경북을 보듬는 사랑의 손길에 외롭지 않아 묵묵히 잘 견디어 나갈 것이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덕분에 대구는 더욱 영글어질 것이다.

대구를 찾아 온 ‘코로나 19’라는 특별한 손님. 그 손님을 시민들과 함께 잘 다독거려 보내려 보려 한다.

때로 반갑지 않은 손님이 갑자기 찾아와도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최선을 다해 잘 응대하는 것이 사람 사는 도리일 것이다. 그렇게 하라고 대구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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