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로운 물상 꽃과 새, 세상에 행복을 가져오다
상서로운 물상 꽃과 새, 세상에 행복을 가져오다
  • 박승온
  • 승인 2020.03.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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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온의 민화 이야기] 화조도
감상용 아닌 생활장식적 성격
실수요자인 백성 취향 우선시
전통화와 달리 자유로움 강조
집에 병풍을 두른다는 건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되
부귀·장수·화복 바란다는 뜻
흔히 동양의 그림은 그 속에 많은 뜻을 가지고 있어 마냥 아름답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자세히 읽어야 된다고 한다.

우리의 그림에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감상용 그림도 있지만 그림 속 수많은 수수께끼를 감추어 둔 그림도 있다. 이를 알레고리(allegory)라고 하는데 그림 속에 숨겨진 알레고리를 찾지 못할 때 그림을 보는 관객은 그림을 보고 있어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저 형태와 색채만 볼뿐이다.

최근에 공부했던 그림 중에 조선 시대 문인 화가인 현재(玄濟) 심사정(沈師正)이 그린 〈하마선인〉을 보면 평범한 그림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 <하마선인>은 학창시절 교과서에 단골로 나왔었던 그림이고 볼 때마다 왜 두꺼비 다리는 세 개인지, 저 사람은 왜 걸인의 모습인지 궁금했었다.
 

다시-하마선인-심사정
<하마선인> 현재(玄濟) 심사정(沈師正) 비단에 담채, 22.9cm x15.7cm 간송미술관 소장.

<그림 1>

‘하마’란 두꺼비의 한자어이며, ‘하마선인’은 두꺼비를 가진 신선이라는 뜻이다. 신선도의 일종으로서, 신선전(神仙傳)에 의하면 유해(劉海)라는 신선이 세 발 달린 두꺼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두꺼비는 그를 세상 어디든지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꺼비는 가끔 우물 속으로 도망치곤 해 그는 두꺼비를 금전(金錢)이 달린 끈으로 우물에서 끌어 올리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꺼비는 재물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중국에서도 역대에 걸쳐 많이 그려졌다. 호방한 필묵법으로 그려진 이 그림에서도 동전이 달린 듯한 끈으로 세 발 달린 두꺼비를 희롱하고 있다.

세상에 그런 뜻이 있었다니…. 그 상징의 의미를 아는 순간 그림은 의문의 가면을 벗고 우리 앞에 그 속내를 드러낸다.

민화를 가르치고 그리다 보면 그림 속에 들어있는 꽃이나 이름 모를 풀 한자락도 의미 없이 그 속에 있는 것은 아닐텐데 수강생들이나 관람객이 물어볼 때 가끔씩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 이후로 민화를 그리면서 그림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제 우리 그림 민화 이야기로 넘어 가보자.

민화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5)이다. 그는 1929년 민예품 전람회에서 민화를 민속 회화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민속에서 태어나 그려지고 민(民)에 의해 유통되는 그림을 민화라고 1927년 공예적 회화라는 글에서 주장했다. 그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민화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내려졌는데 조자용은 민화를 신분의 구별 없이 도화서 화원은 물론 모든 한국 민족들이 그린 그림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며, 한국의 모든 회화를 한화(韓畵)라고 하고 이를 순수회화와 실용회화로 분류하면서 민화란 넓게 보면 한화를 말하고 좁게 보면 실용회화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조자용의 주장처럼 민화를 실용회화의 범주에서 이해하고 적용하고자 한다.

3월이면 세상의 봄이 시작하고 그 기운으로 꽃이 피고 새가 모여들 것이다.

꽃과 새는 그 모습 자체로도 예쁨과 아름다움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또한, 인간과 친숙한 생물인지라 삶의 공간에서 가장 조화롭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인 그림의 유형이다.

순수 감상화의 영역으로 화조화의 틀이 잡힌 것을 중국의 당(唐), 송(宋)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이후 한(韓), 중(中), 일(日)에서 동양회화의 특징을 드러내는데 민화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한 장르가 되었다.

그 한 예로 조선 시대 화원을 뽑는 취재(取才)시험에 1등인 죽(竹) 2등인 산수(山水)에 이어 인물, 영모(翎毛: 깃털이 있는 동물, 새도 큰 범주에서는 영모에 들어감)화가 3등, 화초(花草) 그림이 4등으로 화과(畵科)가 정해졌을 정도이다.

민화에서의 화조화의 의미는 전문 화가나 문인화가가 그린 전통화와는 상당히 다르다. 전통회화에서의 화조화는 작가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감상 위주의 그림이라면 민화 속 화조화는 생활 장식화, 실용화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현세복락(現世福樂)적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민화의 수요층이 일반 대중들에게로 확산 되고 수요자의 수준과 취향에 맞추다 보니 그런 듯 하다. 민화 속 화조화는 전문 화가들이 그리는 화법이나 필법이 무시되고 서민의 취향에 알맞은 자유로운 표현력을 지닌다. 또한 다양하고 파격적인 변형과 해학, 투박한 붓의 선으로 민화 특유의 감성으로 현대적 공감으로 지금도 폭발적인 인기를 가지고 있다.

이제 화조화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자.

화조화 또는 화조도란 꽃과 새를 그린 그림을 말하며 넓은 의미로는 새 뿐 아니라 네발 달린 짐승, 곤충, 채소와 과일, 어해 등을 대상으로 한 그림을 말한다. 화조도에 등장하는 새들은 부분 암수 한쌍으로 사이가 좋다고 알려진 종류들이 그려지고 서로 마주 보거나 나란히 있는 모습으로 구성된다. 때로는 새끼들이 함께 등장하고 암수 한 쌍이 사이좋게 어우러진 모습은 금슬 좋은 부부를, 새끼와 함께 그려진 그림은 화목한 가정을 상징한다. 오랜 세월 형성된 좋은 의미를 가지게 된 꽃이나 식물을 함께 등장시켜 그 당시 세계관과 염원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화조도는 모란과 장미, 국화 등의 여러 가지 꽃과 원앙, 오리, 백로 등 다양한 종류의 새들을 소재로 한 화조도 병풍이 일반적이나, 계절을 상징하는 병풍으로 공간을 꾸미는 것도 있었다. 이는 단순히 아름답게 삶의 공간을 꾸민다는 생각을 넘어 옛날부터 내려오는 화조(花鳥)를 상서로운 물상으로 여겨왔듯이 부귀, 장수, 화복, 다산, 벽사 등의 상징성을 부여해 왔다.
 

화조화
<화조화> 19세기 작 8폭 병풍 중 4폭 종이에 채색 각 85 x 47cm-출처 조선시대 꽃그림 민화, 현대를 만나다. 2018.갤러리 현대.

<그림 2>

화조도를 조선 초기와 후기로 구별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면, 조선 초기의 화조도는 평면인 공간감과 배경의 양식 특징을 이루고 있으며 점차 간단한 구도로 주제가 함축된다. 꽃, 새들을 배치하는 정형화된 화면을 반복으로 이용하는 한편 면을 구성하는 소재들을 각 화면에 치우치게 배치하는 구도, 두 폭씩 대칭 구도를 취하고 있으며 공간 배경이 어느 정도 보이는 화조도가 등장하게 된다.

예시된 화조도는 조선 후기의 화조도 양식으로서 왕성한 회화 활동과 대중적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하게 변형되었다. 화면 구성에 있어 정적인 공간에 춤추듯 흔들리는 꽃과 나뭇가지, 둥근 형태의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의 모습에서 생동감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단조로움을 피하는 구도를 볼 수 있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19세기 화조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식 중 하나이다.
 

화조화2
<화조화> 19세기 작 8폭 병풍 중 1폭부분도 종이에 채색 85 x 47cm.

<그림 3>

2020년 3월 예상치 못한 전염병으로 많은 분들이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웬 꽃 놀음이냐라고 노여워 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화조도 속의 꽃과 새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꽃은 인간의 행복을 염원하는 소재이고 다정한 새들의 모습에서 안정감과 위로를 보내는 의미로 받아들여 지금 시절의 어려움과 힘듦을 서로 간의 행복과 세상을 사는 긍정적 의미로 견디고 헤쳐나가자는 것이다.
 

아름다운봄날의화조도
<아름다운 봄날의 화조도> 문강 박승온 作 종이에 채색 80 X 45cm

<그림 4>

이제 오늘날의 민화로 돌아오자.

<아름다운 봄날의 화조도>는 2013년 필자의 개인전에서 발표된 그림이다. 필자는 추위를 엄청 타는 편이라 엄청 추운 겨울이 빨리 지나가라고 따뜻하고 포근하고 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상상의 연못을 그렸다.

이 세상 사는 사람 치고 저 봄날처럼 늘 좋기만 할까…. 일 년에 그림 속 풍경은 며칠 되지 않을 것이다. 며칠이 뭐야 하루도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나만 고통과 슬픔, 상처와 억울함. 울분으로 겨울이 더 추웠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늘 편하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닐진데.

원화(原畵)를 보는 순간 늘 즐겁고 행복한 찰나의 순간이라도 있었으면…. 그리고 그런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희망 이런 것으로 그 겨울 한참을 봄날의 연못 속에 빠져 있었다.

시간은 봄이 되었지만 코로나19로 모든 상황이 매서운 겨울 바람보다 더 한 듯 하다. 이제 동네 골목에, 앞산 언덕에 꽃이 피려고 하는데 올해는 제대로 꽃구경이나 할 수 있으려나 팔자 좋은 소리라 타박을 들어도 마냥 힘들다고 기죽어 있을 수는 없다. 우리 이제 꽃만 보고 걸어요!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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