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로 피는 꽃
배려로 피는 꽃
  • 승인 2020.03.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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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운전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는 정체 구간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물 흐르듯 순조롭게 잘 달리다가도 갑자기 빨간불이 켜지면서 꽉 막혀 옴짝달싹도 못 하게 되는 구간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아무리 궁리를 해 봐도 방법이 없다. 앞차가 나아갈 때까지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하루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온종일 즐겁고 기쁜 일들만 가득 차길 바라지만 가끔은 걱정과 근심,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정체 구간을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도 마찬가지로 기다려야 한다. 지나갈 때까지. 정체는 반드시 풀릴 것이고 신호는 분명 바뀌게 되어 있으며 오늘은 꼭 내일로 지나간다.

대구의 신규 환자가 두 자릿수, 경북은 한 자릿수로 떨어진 것과 대조적으로 수도권 등에서 발생한 소규모 집단감염이 새로운 뇌관으로 떠 오르고 있다. 잠복기를 고려하면 향후 1~2주가 수도권 환자 급증의 고비가 될 것이라는 뉴스를 다시금 접한다. 코로나 19의 유행이 주춤해지는가 싶던 차에 다시 우린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끝까지 좀 더 참고 기다려야 하는 일 그것만이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함께 살길이란 걸 안다.

‘산다는 건, 봄을 한 번 더 보는 일’이라고 어느 시인은 말한다. 요즘같이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봄날의 온기가 조금씩 마음을 들뜨게 한다. 특히 화단 앞, 이르게 핀 매화와 목련, 나무들이 틔워 올린 연초록 세상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꽃이 피면 좀 위로가 될까 싶었는데 꽃이 피어서 오히려 집 안에만 머물러 있기엔 견디기 힘든 나날의 연속이다.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봄처럼 봄은 ‘보다(見)’라는 동사에서 나왔다고 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예전과는 다른 서먹한 봄일지라도 이참에 보리 밟듯 내 마음의 안쪽도 그렇게 세심하게 관찰하고 들여다보며 한발 한발 다지고 싶었다.

며칠 전, 결 고운 햇살이 참 살갑다고 느끼던 날이었다. ‘마스크 요일제’에 맞춰 우체국을 다녀오던 길에서 마스크로 입을 가린 채 침묵으로 아우성치던 두류공원을 만났다. 그날은 신천지 신도가 자가 격리에서 풀리던 날이었으며 그로 인해 대구지역의 긴장감이 극에 달한 날이었다. 두류공원 앞을 지날 즈음 차가 막혀 둘러보니 공원 안으로 들어서는 차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아직 코로나가 물러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라며 정체된 차에 떠밀려 따라 들어가 보았다. 양옆으로 주차된 차들이 입구를 막고 있었고 오페라하우스 마당과 주차장 곳곳은 만원이었다. 한쪽에선 방역용 마스크와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들이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한쪽에선 그것도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들 대부분이 공원으로 나와 평온한 듯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일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좁은 공간 안에서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걱정해야 하고 손잡을 수 없는 날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내남없이 간절한 때다. 마스크 너머로 눈인사를 교환하며 봄기운으로 들어가 마냥 부대끼고 싶은 마음이야 오죽하랴 싶지만 아직은 서로서로 배려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할 때다. 머지않아 서로 다시 연결될 날들이 오리라 믿으며.

언뜻 한 청년을 지하철 역사에서 안타깝게 떠나보냈을 때 구의역 승강장에 붙여진 메모가 생각난다. ‘너는 나다’라는 그 강렬했던 글. 요즘 우리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너는 나’라는 것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촘촘히 연결돼 살고 있는지를 실감한다. ‘나의 안녕이 당신의 안녕’이라는 것, 더불어 사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김해 본다.

감염병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새로운 탐구 영역을 때로는 예술의 관점에서, 때론 철학이나 역사의 관점에서 흥미롭게 서술한 ‘감염병과 인문학’이란 책 속의 인상적인 구절이 떠오른다. “감염은 불안과 공포, 혐오와 배척 등 본능적 차원의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감염병은 산다는 것의 의미와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한다.”

3월이 시작될 때의 풍경과 3월이 끝날 때의 풍경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시작할 때와는 달리 끝 무렵이 되어서는 이제 막 화장을 시작한 소녀처럼 화사한 꽃망울로 뒤덮일 것이다. 이미 남녘엔 매화와 동백, 산수유도 피었지만 ‘좋은 날은 그냥 오지 않는다는 것’, 다른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배려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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