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봄,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 승인 2020.03.26 21: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제부터 이 숲속에 길을 알았는지
봄 아침 안개가 숲을 고요히 점령해 들듯
여기에 나를 가두고 말았는데요,
길이 끝나고
숲의 문을 열고 안으로 더 들어가면
이 길은 오래된 암자 하나와
가시 많은 산초나무가 까만 열매를 달고 있는데요
바깥에서는 도저히 바라 볼 수 없었던 나무들을
숲 안에 갇히고 난 후 보았는데요,
산초나무 하얀 꽃들이랑 까만 열매들이
모여 앉은 나무를 보았는데요

이 숲에 들어오기 전
가파른 언덕 위로 오를 때 허리를 굽혀야
바닥에 자라는 잡초들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겸손을 알게 했으니까요.
그 동안 겨울을 견디어 내며
외피가 벗겨지고 폭설에 가지들이 부러진 자리에
옹이가 여럿
봄볕이 가만가만 곁으로 와서
바람의 혀를 내밀어 어루고
산초나무 가시 곁으로 오는
하얀 꽃 문도 열어 놓고요

이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헛된 밤을 보낸 눈동자
혁명처럼 뜨고
꽃들이 오는 밤을 숙명으로 안으리요
사랑을 밖으로 밀어내는 계절은 없으리요
어떤 이별도 절망하지 않으리요

혹 잠시
이 숲을 떠나가더라도
가만히 문 열고 다시 돌아오리요
산초나무 검은 가시 옆으로
하얀 꽃들이 꽃 문을 열듯
부끄러운 가슴이 까만 열매로 오게 하리요

◇홍성은= 1963년 강원 태백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 전공, 대구,경북지역대학 반월문학상 대상 수상(10)

<해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밀물이든 썰물이든 모두 바닷물이고, 꽃이 피고 지는 것도 늘 인연이다. 안전한 항해를 위해 종종 돛에 몸을 묶고 출동한다. 초심(初心)이 흔들릴 때가 있다.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며 앞만 보고 달려간다. 그러다 가끔은 열정과 가치에 대해 회의가 일어나면 이보다 더 쉽고 더 좋은 것을 찾으려 이곳저곳 기웃거린다. 인간의 삶은 원숙한 것 같으면서도 엉뚱하고 미숙한 점이 있고, 혜안을 얻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바보가 되기도 한다. 세상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린 것 같기도 하다가도, 어떤 때는 움켜쥐지 못해 안달을 내기도 하고, 마음을 비우며 사는 것 같다가도 권력을 탐하는 욕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세이렌의 노랫소리와도 같은 유혹에 빠져들고 싶기도 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뜻대로 하고자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절실히 깨달음으로써, 세상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릴 수 있다. 천명(天命)이란,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다. 때로는 어둠과 거짓이 이겼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지금 당장은 어둠 속에 있다고 해도 절망하지말자. 세상사는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서 멋지다. 꿈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성군경(시인)-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