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 ‘농민’이 있다면…한국엔 ‘토지’가 있다
폴란드에 ‘농민’이 있다면…한국엔 ‘토지’가 있다
  • 정경은
  • 승인 2020.04.01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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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자 (8)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삶과 업적 - 4
소설가 기엘레루프·폰토피단
덴마크의 삶 진솔하게 그린 공로
1917년 노벨문학상 공동 수상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아일랜드 전설과 신비주의에 매료
작품 구절구절 민족정신 스며들어
노벨상-민족문학
그림 이대영

◇ 민족정신과 민족혼을 불타오르도록 노래했던 문학도

“고상한 이상에서 영감을 얻었고, 변화와 풍요로운 시에 대한 공로”로 덴마크 시인이고 소설가였던 카를 아돌프 기엘레루프(Karl Adolph Gjellerup, 1857~1919), “덴마크의 오늘날 삶을 진솔하게 그린 작품”에 대한 공로로 덴마크 소설가 헨리크 폰토피단(Henrik Pontoppidan, 1857~1943), 2인이 공동수상자로 191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먼저 카를 아돌프 기엘레루프는 1857년 덴마크 로홀테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처음엔 신학을 공부했으나 1870년 유물론과 게오르그 브란데스의 자연주의 신봉자가 되었다. 그러나 독일, 그리스, 러시아,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고 1878년 ‘이상주의자(En Idealist)’를 출판했고, 1882년 친독일 무신론자와 지적존재로 자서전적인 ‘독일인의 견습생(Germanernes Lærling)’출간, 윤리적인 염세관을 자각했다. 1888년부터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독일과 덴마크 두 나라말로 창작했으며, 1889년 사랑이야기 ‘민나(Minna)’, 1896년 자매간의 사랑이야기 ‘밀의 자매(Møllen)’등을 집필했다.

후기작품으로 동양문화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1906년 출간한 ‘순례자 카마니타(Der Pilger Kamanita)’는 불교나라 태국에서 프라야 아누만 라자돈(Phraya Anuman Rajadhon, 1888~1969)과 공동번역한 것으로 학교교과서에 게재될 정도로 유명했다.

1907년 ‘깨달은 자의 아내’와 ‘완벽주의자의 아내’는 석가모니(Siddharta)의 초기 삶을 단테의 신곡에 영감을 받아서 소화한 작품이었다.

1913년 ‘루돌프 스톤의 국가관행(Rudolph Stens Landpraksis)’에선 뉴질랜드의 자유와 피상적인 삶의 전망을 작품화했다. 1919년 ‘가장 성스러운 동물’이 최후작품으로 남아있다.

다음으로 헨리크 폰토피단은 1957년 덴마크 프레데리시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초창기는 공학도였으나 작가로 전환했다. 1881년 작가로 데뷔하여 자유기고가 혹은 전문작가로 살았으나 한땐 인생고마저 해결할 길이 없어서 초등학교 교사도 했다. 농민의 딸과 결혼했으나 이혼을 하고 재혼했다.

이런 질곡의 삶에서 1883년 ‘마을 풍경’, 1887년 ‘오두막집에서’, 1890년 정치적인 단편소설집 ‘구름’을 출판했다. ‘약속된 땅((Det forjættede Land)’, 1898년부터 1904년까지의 ‘운 좋은 페어(Lykke-Per)’, 1912년부터 1916년까지의 ‘죽은 왕국((De dødes Rige)’ 등이 시대적 대표작품이었다.

◇ 민족정신, 예술성 그리고 영감의 섞어찌개 민족시

인도의 시인 친구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노벨문학상을 타도록 1912년 시집 ‘기탄잘리’출판에 원고교정과 재정지원을 했던 아일랜드 민족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는 1923년에 비로소 단독수상자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온통 민족적인 정신을 고도의 예술성으로 표현하는 영감을 주는 시를 창작한 공로”다.

그는 1865년 6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샌디마운트에서 태어나 슬라이고(Sligo)에서 성장했으며, 어릴 때부터 시(詩) 공부에 몰두했다. 특히 아일랜드 전설과 신비주의에 매료되어, 1900년 무렵 작품에 민족정신을 녹여 구절구절 스며들게 했다. 1889년 17세에 런던시인인 어니스트 리스(Ernest Rhys)와 시인의 커뮤니티 라이머클럽(Rhymers’ Club)을 창설했다.

첫 번째 시는 ‘동상의 섬’이었고 ‘오이진의 방랑기’처녀시집을 창작했다. “튼실한 사냥개 3마리, 브랜, 스서랜과 로마이어를 데리고, 우리는 슬픔을 타고 길을 걸었다.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도 온화해 평온하기만 했다. 안개는 향기롭게도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걸려있다. 그래서 꽃 속에는 꿀벌들이 매달려 있다. 우리는 러프린 호수보다도 슬픔에 빠져있었다.”라는 아일랜드의 민족정서를 노래했다. 시인·소설가·극작가였던 오스카 와일드(Oscar Fingal O’Flahertie Wills, 1854~1900) 등의 유명한 시인들로부터 절찬을 받기도 했다.

그의 창작에 영향을 끼친 것은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서정시,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cer, 1552~1599)와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였다. 사실 대대로 화가집안이어서 런던 헤더리 미술학교에서 미술공부를 하다가 중단했으며, 1877년 1월 26일 12살때 고돌핀스쿨(The GoDolphin School)에 입학해서 4년간 다니다가 중단했고, 1881년 10월 에라스무스 스미스 고등학교에 등록해서 학업을 재개했으나 성적이 부진했다. 1884년부터 1886년까지 메트로폴리탄예술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1887년 런던으로 가족 따라 이사했다.

1890년 플릿 스트릿이란 술집에서 시낭송을 하면서‘비극적인 세대(Tragic Generation)’이란 연작물을 줄이어 출판했다. 1891년 아일랜드 문예협회(Irish National Theatre Society)를 창립했고,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에 참여했다. 1899년 국민극장을 더블린에 세워 ‘캐서린 백작부인’을 최초로 상연했고,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원로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초등학교 졸업만 해도 원이 없었는데!

“농민이라는 위대한 폴란드 민족서사시”를 창작했다는 공로로 폴란드 소설가 브와디스와프 스타니스와프 레이몬트(Wladyslaw Stanislaw Reymont, 1867~1925)에게 1924년 노벨문학상이 수여되었다.

그는 1867년 5월 7일 폴란드 라돔스코 인근 작은 마을 코비엘레 비엘키에서 오르간 연주가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스토리텔링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평생 학교란 시골초등학교에서 2년간 기초만을 배웠을 뿐, 아버지를 따라 바르샤바로 이사했고, 큰 누나의 남편으로부터 방학 때 배웠다. 밥벌이를 위해 직능재단사 직업교육을 받아 1885년 18세 ‘잘 만든 연미복(a tail-coat, well-made)’이란 작품으로 재단교육증명서를 받았다. 그러나 재단사로 일하지 않고, 가출하여 ‘전원극장’ 활동을 하고자 지방극장을 유람한 뒤에 땡전 한 푼 없이 바르샤바로 되돌아왔다. 아버지 인맥으로 월 16루블을 받는 경비원으로 채용되었다.

또 가출이란 고질병이 도지고 말았다. 1888년 파리와 런던의 극장을 방황하다가 빈손으로 고향에 또다시 돌아왔다. 1892년 ‘목소리(Głos)’라는 수필을 발표했다.

1893년 바르샤바에 살면서 작가로 활동을 서서히 시작했다. 1894년엔 11일간의 순례여행을 마치고, 1895년 ‘자스나꼬레로 가는 순례’ 수필을 집필했다. 1896년 최초소설 ‘사기꾼’을 발표했고, 청년폴란드 회원으로 활동했다. 1898년 ‘약속의 땅(Ziemia obiecana)’과 1904년과 1909년 4권의 대하소설 ‘농민(Chłopi)’이란 필생대작으로 노벨수상자의 반열에 섰다. 그의 명성은 오늘날 ‘브와디스와프 레인몬트 공항(Wladyslaw Reymont Airport)’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적 존경을 받고 있는 농민민족문학가다.

한편 우리나라의 박경리(朴景利, 1926~2008) 소설가는 ‘토지(土地)’를 1969년부터 1994년까지 5부 16권의 대작을 저술했다. 이에 비해 ‘농민(農民)’은 1897년 집필해서 철도사고와 건강문제로 7년 만에 완성한 4부작 4권의 작품이다. 토지는 일제강점기 한말의 몰락상을 지주계층 최씨 일가를 통해 한민족 질곡의 삶을 역사적 흐름으로 그렸다.

‘농민(農民)’은 i) 인간의 삶과 자연과의 관계를 가을, 봄, 겨울, 여름인 4부작 4권에 통시적이고 동시적으로 구성, ii) 물질적 현실, 관습, 행동 및 영적문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고자, iii) 지역방언(Wowicz)으로 작성되어 대화와 내레이션에서도 농민의 보편적 언어창작으로 음성문화의 다채로움을 가미했다. iv) 구성에서 엄격한 단순성과 기능성이 강조, v) 인생경험의 레퍼토리와 풍부한 영적 삶을 묘사하기 위한 농민의 삶, 지식 및 스케치에 충실했다.

글=정경은<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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