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내림
꽃내림
  • 승인 2020.04.0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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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밤

지방도 옆 벚나무

하이얀 꽃눈이 나린다

바람이

스치고 간

꽃잎마다

숨이 멎는 절정들

가슴이 아려온다

임이 그 날 처음

내 안에 온 것처럼

바르르

강림하신

꽃, 신이시여

◇김연창= 1964년 경북 상주 출생. 시인 및 생태운동가, 초암논술아카데미 대표역임. 경남 함양 녹색대학 교수역임. 낙동강문학 심사위원.

<해설> 봄은 ‘드디어!’ 시작해 ‘벌써?’ 사라진다. 매화로 슬며시 다가 온 봄은 벚꽃을 흩날리며 이별의 속내를 드러낸다. 세월 앞에서 모든 것은 낡고 늙고, 결국에는 소멸된다. 익숙함을 허물고 낯선 것을 마주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가만히 있어도 모든 존재는 주름지고 퇴색되고 마모되기에, 새‘것을 받아 안는 순간의 설렘과 달뜸이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필연이다. 그래도 나날이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 늘어만 간다. 내 것을 염려하느라 가장 좋은 때인지도 모를 지금을 누리지 못하는 모순으로,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낸 허무한 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마음을 비우는 일은 무언가를 덜어내는 일과 같다. 덜어내는 일은 놓아주는 일과 닮았고, 놓아주는 일은 이별하는 일과 비슷하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정물화 속 책상처럼 제법 두꺼워진 무심의 더께가 어느 날 낯선 풍경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것이다. 꽃은 신의 얼굴이다. 사랑은 일부러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물이다. 오늘은 뜻대로 활짝 피운 꽃의 영혼을 가슴으로 불러들여 신을 만날 것이다. 꽃내림처럼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을 내 안에서 잘 놓아 주고 싶다. 태양을 좋아하지만 달을 닮은 너와 함께 홀로 꽃진 자리자리 찾아다니며 그 영혼을 쓰다듬어 줄 것이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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