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결혼식
코로나 결혼식
  • 승인 2020.04.0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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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리스토리 결혼 정보 대표, 교육학 박사
봄은 결혼의 계절이다. 신록이 푸르고, 눈꽃송이처럼 탐스런 목련이 뾰죽이 고개를 내밀고, 매화가 망울망울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한다. 자연은 코로나 바이러스 열풍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한결같다. 이맘때 쯤이면, 전망 좋기로 소문난 공원에서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 입은 신랑이 한껏 포즈를 취하며 야외 촬영을 하느라 분주하기 짝이 없다. 눈부신 봄날인데도 거리는 한산하고, 공원에서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들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바이러스가 결혼 시즌의 풍경을 앗아가 버렸다. 아쉬운 봄이다.

지인이 아들의 결혼식을 취소했다고 통보가 왔다. 청첩장을 받은 지가 한 달 남짓 된 것 같다. 다른 지방에 사는 사돈이 대구에 오는 것을 꺼려서 어쩔 수 없이 예식장도 취소하고 결혼식을 연기했다 한다. 결혼을 앞둔 노총각과 노처녀 자식을 둔 부모들의 마음은 다급하다.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코로나의 기세가 등등하니 마음이 안절부절이다. 줄줄이 결혼식이 취소되고, 신랑신부들이 생이별을 하는 피치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타 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신랑신부들은 대구에 못 가도록 당분간 금지령을 내렸다 한다.

안타깝게도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하는 커플도 있다. 이색적인 결혼식 풍경이 눈에 띄기도 한다.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에 체온 측정과 손 소독을 하고 마스크를 착용한다. 신랑 신부만 마스크를 쓰지 않고 하객들과 눈인사로 답례를 하고 악수를 건네지 않는 것이 예의다. 식장에 앉은 하객들의 모습은 가면무도회에 참석한 연출객의 모습으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표정들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만 참석하고 대부분의 축하객들은 축의금만 송금하고 참석하지 않는다. 결혼식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얼마나 갈등이 많았을까 미루어 짐작이 된다.

지인 중의 한 분은 청첩장도 다 돌리고 결혼식장도 예약이 다 된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결혼식을 취소했다. 하지만, 성당에서 양가 가족들만 모신 채 혼배성사를 한 후에 혼인신고를 했다 한다. 그리고 준비된 신혼집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한다.

오히려 더 경건하고 엄숙하고 진지한 결혼식 분위기였다. 결혼한 신랑 신부도 오히려 흔히 보던 결혼식보다 더 진짜 결혼식 같아서 좋았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지만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이 증인이 된 의미 있는 작은 결혼식이었다. 결혼식 때 많은 하객들이 참석해서 축제의 분위기로 흥을 돋우는 결혼식도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하객들은 혼주와 눈인사만 건네고 축의금만 접수하고 바쁜 걸음으로 식당으로 사라진다. 남은 가족들끼리 서둘러 사진 찍고, 다음 커플들을 위해 정해진 시간 내에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평생 단 한 번의 소중한 결혼식이 형식적이고 허례허식에 치우친 느낌이다. 경건한 느낌은 온데 간 데 없고 돗떼기 시장판처럼 소란스럽기까지 하다.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들이 코로나 때문에 결혼을 미루지 말고 가족들끼리 소박한 작은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참에 결혼식 문화를 바꿔보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는지. 호젓한 공원이나 집 앞마당에서 파티처럼 열리는 결혼식. 비싼 예식장을 빌릴 필요도 없고 뷔페식당에서 앉을자리가 없어 허겁지겁 음식을 먹을 필요도 없다. 경제적으로도 절약돼 전세자금에 보탤 수도 있고 태어 날 아기 보험도 미리 준비 할 수도 있다. 어떤 결혼식은 꽃 장식에만 수 천 만원이 든다는데 이왕이면 아카시아 꽃 향기 진동하고 벚꽃잎이 휘날리는 언덕에서 신랑신부와 하객이 함께 축가도 부르고 결혼 행진도 하면 그림같이 아름다운 결혼식이 되지 않을까. 작고 소박한 결혼식을 통해 가족과 친척에게 새로운 출발을 알리고, 진심으로 축복해주는 가운데 중요한 인생의 서막을 여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요란스럽다. 일생일대의 큰 발걸음을 내딛는 결혼 커플들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위기는 또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발상의 전환. 오랜 관습에 젖은 우리의 결혼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소박하지만 아름답고 의미있는 새로운 결혼문화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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