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줘서 고마워
태어나줘서 고마워
  • 승인 2020.04.0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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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 심리연구소 소장
4월 7일, 필자의 생일이었다. 따뜻한 봄, 개나리 피고, 들과 산에 피어난 꽃들이 서로 자기가 예쁘다고 자랑할 때쯤 매년 생일이 찾아온다. 사실 난 이날이 되면 기분이 좋아 들뜨기보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편이다.
그 감정이 무언가 살펴보니 부끄러움 같기도 하고, 멋쩍기도 하고, 아무튼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혹여나 누군가 생일인걸 알고 케이크를 준비해 촛불을 끄게 되더라도 항상 그 자리가 낯설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 이유는 자신 있게 세상이 나로 인해 아름다워졌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 외의 사람들에게 내 생일을 잘 알리지 않았고, 어울려 파티를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물론 부모님은 아들 생일을 기억하고 아침이면 밥상에 늘 미역국을 끓여 올려 주셨지만 친구들은 "내 생일이네"하고 광고하지 않는 한 모르고 지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세월이 참 좋아져서 생일날이 되면 자동적으로 SNS에 나와 연(緣)이 닿아있는 사람들에게 생일이라는 걸 알려준다. '생일이다'라고 광고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축하를 해준다. 참 좋은 세상이다. 이번 생일에도 아침부터 많은 사람의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생일이면 나는 늘 하게 되는 물음이 있다. 그것은 "과연 나로 인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졌는가?"라는 물음이다. 혹여나 세상에 해(害)를 끼치진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나의 생각이 괜한 생각일 수도 있고, 너무 진지한 모드 일수도 있다. 하지만 생일이면 늘 그 생각이 드는데 어찌하랴. 마치 잘 익은 곶감만을 쏙쏙 빼먹는 사람처럼 나의 이익만을 위해 좋은 것만 취하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돌아보니 살짝 부끄러워지는 순간들도 있던 것 같다.

이번 생일 많은 사람들의 축하 글 속에 특히 나에게 힘을 주는 단어 하나가 보였다. 바로 '선한 영향력'이란 단어였다. 이 단어는 나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또한 도전이 되기도 했다. 선한 영향력이란 단어를 보며 그래도 내가 잘 못 살고 있지는 않았구나.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구나 하는 위안이 먼저 되었다. 또한 잘 살아왔다고 지친 나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 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야겠다는 생각도 가지게 되는 도전의 마음도 들었다.

선한 영향력! 곱씹어 보니 참 좋은 말이다. 그 말은 까만 밤, 등대와 같은 말이다.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배에게 등대만큼 반가운 것이 어디 있으랴. 선한 영향력도 마찬가지, 갈 곳 잃어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대 역할을 한다. 등대 같은 사람이고 싶다.

나는 안다. 나 자신이 아직은 부족하고 많이 미흡하다는 것을. 하지만 큰 등대는 아닐지라도 작은 불빛 정도는 아닐까 착각 아닌 착각도 해볼 수 있는 정도는 된듯하여 감사하다.

힘들 때면 나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의 요청에 계산 없이 응하는 편이다. 며칠 전에도 누군가 나에게 SOS를 보내왔다. 그래서 잠시 그를 만나고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리고 이야기를 듣고 내가 느끼는 것을 나누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그가 내게 말했다.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나라고. 참 고마운 말이다. 기쁠 때 생각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힘들 때 생각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그의 말이 고마웠다. 자주 만나지 않고 몇 년에 한 번 만나는 사이지만 그에게 힘이 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두어 시간 동안 자연 속에서 그와 대화를 했다. 대화의 끝에 그는 웃고 있었다. 용기를 내고 다시 힘을 내는 그의 모습에 나도 힘이 났다.

이 땅에 얼마를 살다가 갈지 나는 모른다. 욕심내지 않고 그저 사람들에게 기쁜 존재가 되고 싶다.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세상, 잘 살다 가고 싶다. 그래서 생일날이면 듣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그 말은 깜짝 파티보다, 어떤 선물보다 더 나를 기분 좋게 한다. 생일날 내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바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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