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 대한 편견 부수고 문학계 세계적 거장으로
여성에 대한 편견 부수고 문학계 세계적 거장으로
  • 이대영
  • 승인 2020.04.08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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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다 - (9)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삶과 업적 - 5
이탈리아 ‘그라치아 델레다’
정규교육 못받았지만 책에 큰 관심
인간문제 깊이있는 동정심으로 그려
노르웨이 ‘시그리드 운세트’
중세시대 북유럽 삶 사실적 묘사
대작 ‘크리스틴 라브란스다더’ 창작
미국 여류소설가 ‘펄 벅’
중국 농민의 삶 진지하게 다뤄
한국명 ‘박진주’라 불리기도
 
‘쭉정이 콩’에서 세계적인 여성작가로 성장하다. 그림 이대영
‘쭉정이 콩’에서 세계적인 여성작가로 성장하다. 그림 이대영

 

◇ 남에게 줘야하는 ‘쭉정이 콩’에서 세계적인 여성작가로

“이상주의적 영감을 담은 작품은 소박하고, 가소성의 선명도로 인간문제를 깊이 있는 동정심으로 그림”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1926년 노벨문학상의 영광은 이탈리아 여성 소설가 그라치아 델레다(Grazia Deledda, 1871~1936)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1871년 9월 27일 이탈리아 서쪽 지중해 고도(孤島) 사르테냐(Sardinia) 섬의 조용한 작은 도시 누오로(Nuoro, Sardinia, Italy)에서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남에게 줘야 하는 여식아이’ 혹은 ‘쭉정이 콩’으로 여겨져 정규교육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친척집에 출입하는 손님으로부터 글을 깨우쳤고, 어릴 때부터 남다르게 책을 읽었고, 가사를 돌보면서도 틈틈이 창작을 해 50여권의 자작을 남겼다. 1890년 잡지 ‘류티마 모드(L‘ultima moda)’를 통해서 첫 소설은 1892년 ‘소르디냐의 꽃(Fiori di Sardegna)’을 필두로, ‘동방의 별(Stella d’Oriente)’과 ‘어둠 속에서’를 발표했다. 그녀는 마치 옛 시골 농촌에서 쭉정이 콩이라고 두엄 속에 버렸는데 콩마다 싹이 트고 “쭉정이 콩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하듯이 옹골차게도 풍요한 결실을 맺는다.

배우지 못함을 복수라도 하듯이 마치 누에고치가 명주실을 풀듯이 술술 명작들을 만들어내었다. 대표작으로는 1896년 ‘악의 길(La via del male)’과 성경에서 나오는 구절로 1917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Canne al vento)’, 1904년 ‘빈스를 증오한다(Odio Vince)’, 1905년‘향수(Nostalgie)’와 1910년 ‘국경까지’, 1914년 ‘타인의 과오’등이 있다. 작품은 하나같이 소박한 삶에다가 원시적 사랑, 충동적인 정열, 절망적인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 세상살이의 절박함이 삶과 창작에 끈끈한 접착제가 되어

“중세시대의 북구유럽 삶에 대해 원칙적으로 강력한 작품을 묘사”한 평가를 받아 1928년 노벨문학상 단독수상자로 노르웨이 여류소설가 시그리드 운세트(Sigrid Undset, 1882~1949)가 행운을 잡았다.

그녀는 1882년 5월 20일 덴마크의 작은 항구도시 칼룬보르(Kalundborg)에서 태어나 2살 때 부모를 따라 노르웨이(Norway)로 이사를 갔고, 1925년까지 오슬로에서 성장했으나, 아버지가 10년간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가정빈곤은 극심했다. 결국 아버지는 40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맏딸이었지만 대학교육은 언감생심, 아예 16세에 기술회사에 비서로 들어가 10년간 근무했다. 사무실에서 자투리시간을 활용해서 창작공부를 했다. 16세 때 이미 북유럽 중세시대의 소설을 쓰기로 작심했다. 중세 덴마크의 역사소설 원고는 22세가 되어서 마쳤으나 출간은 출판사마다 거절일색이었다.

1907년 25세 나이에 작가로 데뷔를 했고, 노르웨이작가조합에 가입했다. 처음부터 책은 잘 팔렸고, 세 번째 책이 출판되고 전문작가로 전직을 각오했다. 노르웨이 국가장학금을 받아 덴마크, 독일 여행을 하고, 1909년 12월 로마에 도착해 9개월간 체류했으며, 세계적인 작가로 개안의 기회를 잡았다. 중세기 시대적 배경에 북유럽 노르웨이의 사회와 여성문제를 기반으로 연애와 결혼을 초점으로 소설 창작에 매달렸다. 중세기 스칸디나비아의 삶을 배경으로 ‘화환(The Wreath)’,‘주부(The Wife)’ 및 ‘십자가(The Cross)’3부, 필생대작 ‘크리스틴 라브란스다더(Kristin Lavransdatter)’였다. 여성으로 출생과 사망까지 경험을 통한 시대적 정서를 쏟아내었으며, 출간과 동시에 영어로 발 빠르게 번역했고, 지구촌에 보급했다. 계획과 실행은 적중했고 결국은 192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영광을 얻었고, 1933년부터 1935년까지 문학자문회의(Literary Advisory Council)를 운영했으며, 1940년 나치독일을 피해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1945년 전쟁이 끝나자 노르웨이로 귀국했다.

◇ 한국명 박진주(朴珍珠)라는 미국최초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국 농민들의 삶에 대한 풍부하고도 진지하게 묘사로 자서적인 작품을 창작”한 공로로 1938년 단독수상자로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았던 미국 여류소설가는 펄 벅(Pearl Sydenstricker Buck, 賽珍珠, 1892~1973)이었다.

그녀는 미국 웨스트 버지지나 힐즈버러(Hillsboro, West Virginia)에서 태어나 생후 수개월 만에 장로회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와 10년간 어머니와 국왕의 하녀들의 돌봄 속에서 공주처럼 성장했다. 1910년 대학교육을 위해 도미, 1914년 버지니아 랜돌프 매콘 여자대학에서 우수한 성적(Phi Beta Kappa)으로 졸업을 하였고, 1917년 5월 30일 존 로싱 벅(John Lossing Buck, 1890~1975) 박사와 결혼했다.

두 딸을 낳았는데 장녀가 정신지체 아동이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자라지 않는 아이(The Child Who Never Grew)’라는 소설을 창작했다. 교회에서 운영했던 난징대학, 진릉대학과 국립중앙대학에서 영어와 영문학을 강의했다. 이런 경험을 소재로 소설가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27년 장개석 국민정부군의 난징진압으로 온가족이 몰살위기를 체험한 게 문학작품을 쓰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1930년 ‘동풍:서풍’은 예상을 뒤집고 3판을 유인했고, 1931년 ‘대지(The Good Earth)’의 작중인물인 왕릉의 딸은 자신의 큰 딸을 모델로, 1933년 ‘아들들(Sons)’, 1935년 ‘분열된 일가(A House Divided)’로 3부작 필생대작인 ‘대지의 집(The House of Earth)’을 완료했다.

한국명으로 ‘박진주(朴眞珠)’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6·25전쟁의 수난사를 그린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The Living Reed)’를 1963년에, 1968년에 한국의 혼혈아를 소재로 ‘새해(New Year)’를 저술했다. 1960년 최초 경주를 방문했을 때에 첫인상으로 소달구지를 끌고 가면서도 지게에 한 짐을 진 농부를 보고 ‘동물인 소까지도 이렇게 아끼는 순박함’에 눈물을 흘렸다. 겨울철 까치를 위한 까치밥 홍시, 하늘의 새와 땅 속 벌레까지 생각해서 콩알 3개씩 심는 한국인의 순박한 정서에 감동했다.

◇ 여성차별과 기득권의 진부함에 저항하는 폭로문학

“비범한 언어적 열정으로 기득권과 사회적 진부함을 폭로하는 연극과 소설에서 찬반의 목소리를 특유의 음악적 흐름으로 창작”한 공로로 2004년 오스트리아 여류소설가, 극작가 및 시인이었던 엘프리데 옐리네크(Elfriede Jelinek, 1946년생)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1946년 10월 20일 오스트리아 뮈르츠추슐라크에서 체코계 유대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 부유한 집안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비엔나 음악원에서 음악을 배웠고, 비엔나대학에서 연극학, 미술사, 음악 등을 공부하고, 1964년 졸업했다. 배운 것과는 다른 분야인 전업 작가로의 길을 선택해서 1967년 첫 시집 ‘리자의 그림자’로 데뷔했다. 1970년 첫 소설은 ‘우리는 미끼 새다’인데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투쟁하는 안티러브스토리(anti-lovestory)다. 1972년‘미하엘(Michael)’, 1975년 ‘연인들’, 1980년 ‘내쫓긴 사람들’, 1989년 ‘욕망(Lust)’, 1995년 ‘죽은 자의 아이들(Die Kinder der Toten)’, 2000년 ‘열정(Gier)’의 작품이 남아있다.

페미니즘, 자본주의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 소시민의 근성 등 다양한 주제를 녹이고, 아주 까다롭고 어려운 표현을 하는 독자를 고문하는 작가라는 별명을 받았다. 1974년부터 1991년까지 오스트리아 공산당 당원에 몸담아 나치전범 청산운동에도 참여했으며,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작품도 있다. 해외 번역된 작품으로는 1976년 ‘포물선의 끝(Die Enden der Parabel)’, 1983년 ‘남자 사냥연극(Herrenjagd drama)’, 1986년 ‘벼룩귀의 드라마(Floh im Ohr drama)’, 1990년 ‘맥심 드라마의 여인(Die Dame vom Maxim drama)’, 2001년 ‘말타 드라마의 유대인(Der Jude von Malta drama)’ 및 2004년 ‘진지한 모든 드라마’ 등이 있다.

글=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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