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구토 반사
거짓말-구토 반사
  • 승인 2020.04.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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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아 대구시 의사회 부회장·계명대 동산병원 교수
새해가 시작되고서 ‘나이브스 아웃’이란 영화를 보았다. 이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 왠 영화 이야기냐고 찌푸릴 수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의 동화 피노키오를 떠 올리게 하며 거짓과 기만이 가득하고 책임지지 않는 우리 사회를 생각하게 한 영화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일단 접어두고 주인공 ‘마르타’가 보이는 신체반응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한다. 일종의 조건반사인데, 질병인지 습관인지 모르겠으나 그녀의 구토는 거짓말 탐지기 역할을 한다. 구토는 정신적, 심리적인 원인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처럼 거짓말 후 자동적이고 필수적인 반응으로서의 구토는 신경과 의사인 필자로서는 다소 흥미롭고 낯선 주제였기에 영화를 보고서 관련 문헌을 검색해 보기도 하였다.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란 용어가 있다. 긴박한 위협 혹은 극심한 불안, 스트레스 상황에서 신체의 자율신경계가 활성화돼 아드레날린이 과다분비되고, 이차적으로 심장박동, 땀 분비의 변화 등을 유발하는데, 뇌간의 구토 중추를 자극해 구토를 유발할 수도 있다. 불안장애의 대표적인 예인 공황장애에서도 구토는 드물지 않은 증상이다. 즉 인체는 중추에서 말초까지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너무 더러운 것을 보거나 상황이 너무 힘들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구역, 구토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처럼 거짓말을 한 후에 죄책감 등의 심리가 동반되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구토가 뒤따르는 반응은 뇌의 특정 부위, 특정 기전과 연결지어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과장 및 재미를 위한 영화적 요소라 생각하고 ‘거짓말-구토 반사’ 정도의 용어를 생각하며 잠을 청했었었다.

살면서 우리는 크든 작든, 선의의 거짓말이든 악으로 뒤덮힌 것이든, 거짓말을 하게 된다. 참으로 다행스럽지만 불행한 일은 영화의 마르타처럼 거짓말과 동시에 구토가 뒤따르는 반응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가급적 큰 거짓말을 않으며 살기 위해 노력하고 반성하는 것이 대다수 시민들의 삶일 터이다.

코로나19감염증과 사투 중에 친숙해진 많은 단어들 중, 감염 예방의 필수품으로서의 마스크의 효용 가치에 대해서 자주 ‘말이 바뀌는’ 상황을 목격하였다.

이미 사전투표를 마치고 이틀 뒤로 다가온 총선을 마주해서도 ‘말이 달라지는’ 상황들이 떠오른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비례정당을 창당하자 입당하고 안정권에 선정되는 예는, 위성정당 창당에 격하게 반대했다가 이해관계의 계산 후에 자신들도 위성정당을 창당하는 일에 비하면 오히려 순진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 ‘나이브스아웃’의 주인공이었다면 구토를 하고 또 하느라 화장실을 떠나지 못할 상황들로 가득한 2020년의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이런 신체구조를 갖지 못한 ‘대다수의 건강한 국민’들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잦은 거짓말을 하였다면 스스로 민망함, 죄책감 등을 느끼고 신체화반응으로 이어지며 구토하기 위해 수차례 화장실을 찾아야 했을 것이고 최소한 구역질 정도는 느꼈을 것이다. 피노키오의 코라면 몇백 킬로미터는 길어졌을 것이다.

이런 반응이 없는데는 원인이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자신의 말과 행동을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는, 신념에 찬 자기 확신일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탈감작, 쉽게 설명한다면 특정 자극에 반복 노출되면서 반응이 약해지는 현상인데, 즉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말들을 자주 하다보니 심리적, 신체적으로 무뎌졌을 가능성도 있겠다. 현재 내가 가진 지식이 절대적이지 않기에 이에 근거한 말들은 수정될 수도 있지만 며칠 사이에 내용이 달라지고 횟수가 잦다면, 일천한 지식이나 지식의 변화가 원인이라기 보다는 상황논리에 따른 거짓말을 원인으로 보는게 맞지 않을까.

어차피 수차례씩 바뀌는 말들을 쏟아내며 일하는 것보다 쉬는 시간이 많은 국회, 공직사회라면, 차라리 ‘거짓말-구토 반사’가 있다면 진실한 언행으로 국민을 마주하게 될 것이므로, 거짓말을 할 때마다 구토하느라 화장실을 들락거려 쉬어야 하더라도 오히려 국민은 환영할 것이다. 국민은 진실에 기초한 신중하고 정확한 정책을 듣고 싶고 그에 따라 개인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판단하고 싶고, 때로 판단오류로 인해 말이 바뀔 때에는 사과도 듣고 싶을 뿐이다.

‘거짓말-구토 반사’는 신이 줄 수 있는 선물이자 재앙일 수 있는 가상의 단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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