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코로나와 저녁이 있는 삶
애프터 코로나와 저녁이 있는 삶
  • 승인 2020.04.1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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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한국애드 대표
이제는 하나의 의미로 굳어진 ‘저녁이 있는 삶’은 지난 2012년 대선의 어느 경선 후보의 공약에서 시작했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가정에 충실하거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개인의 시간을 존중하자는 의미였는데. 당시 야근이 일상이었던 직장인에게 이 저녁이 있는 삶이란 한 줄기 희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주 52시간 근무’제도나, ‘워라밸’ 등의 단어가 등장은 했지만, 여전히 ‘저녁이 있는 삶’은 특정 세대의 성향으로 분류되고 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녁이 있는 삶’은 코로나19가 가져다주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분위기가 아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된 ‘저녁이 있는 삶’은 지난 50여 일 동안 여러 형태로 자리 잡았고, 많은 이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나름의 방법으로 누리고 있다. 실제로 주변인들과 대화에서 코로나가 끝난 후에도 ‘저녁이 있는 삶’을 이어가고 싶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오고 있으니 이제 ‘저녁이 있는 삶’은 어느 특정 세대의 문화나 그저 힘든 직장생활의 희망으로 남겨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는 문화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가장 큰 부작용은 가정에서 시작됐다. 평소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 가족 사이에서 갈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실제로 부부 갈등이 늘어 이혼에 이르는 경우도 생겨났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코로나19(Covid)와 이혼(Divorce)을 합쳐 ‘코로나 이혼(Dovidivorce)’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중국 일부 도시에서도 이혼 신청이 급증했다고 한다. 또 지난 8일 대구에서는 이혼을 진행하던 부부가 코로나19로 재판 날짜가 미뤄지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었고 마찰이 커져 폭력으로 이어진 사건도 있었다.

또 하나의 부작용은 SNS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SNS에 대한 의존도는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지속해서 높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하고 외출 자제 등 자발적 격리 체제에 들어가면서 스트레스 해소의 방법으로 SNS 채널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비대면의 자유로움과 자기 의사 표현의 자유로움이 선을 넘나들고 있고, 총선과 맞물려 과격한 지지와 비방이 넘쳐난다. 다양성에 대한 포용보다는 같은 생각의 그룹끼리 더 뭉쳐지면서 각각의 시야를 좁혀가고 있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한 지난 50여 일은 모두가 경험해 보지 않았던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환영한다. 부정적인 면은 서서히 개선되리라 생각한다. 함께하는 시간에서 서로의 갈등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이를 잘 풀어내는 것 또한 가족이 함께 극복해야 할 일이다. 비교될지 모르겠지만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해체된 가정이 있었던 반면 관계가 더 끈끈해지는 가족도 있었다. 문제는 ‘갈등의 해소를 위해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SNS의 의존도 또한 더욱 높아질 것이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언택트(Untact) 라이프’는 2020년 트렌트 키워드 중 하나다. 접촉한다는 의미의 콘택트(Contact)에 부정의 의미 언(Un)을 합성한 것이 언택트(Untact)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 없이도 디지털 기술을 통해 상품의 구매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인데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하는 바람이 트렌드가 되었다. 물론 SNS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이 부정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고 또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자정 작용과 제도적 지원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므로 SNS를 기반으로 하는 ‘언택트(Untact) 라이프’는 다양한 부분에서 나타날 것이다.

애프터 코로나까지 전망하지 않아도 이제 ‘저녁이 있는 삶’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저녁 8시면 문을 닫는 스타벅스가 낯설지 않고, 9시면 거리의 상점 대부분이 영업을 종료하는 풍경이 당연해졌다. 많은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고, 공원을 걷는다. 개인은 취미생활을 하거나, 또 다른 커리어를 쌓으면서 여유롭게 새로운 내일을 준비할 것이다. 물론 다시 시계를 코로나 이전으로 들러 문을 연 음식점에서 친목을 도모할 것인지,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이의 ‘저녁이 있는 삶’을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코로나19로 보낸 50여 일 동안의 ‘저녁이 있는 삶’ 덕분에 우리는 적어도 누군가의 ‘저녁이 있는 삶’을 존중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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