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안부를 묻는 저녁
슬픔의 안부를 묻는 저녁
  • 승인 2020.04.1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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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코로나19, 31번 확진자가 나온 이후 60여 일이 다 되어간다.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감옥에 갇혀 지내는 지금 뭔가 어긋나고만 있는 것 같은 불안이 끊이질 않는다. 봄은 왔지만, 봄빛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고 마음엔 온통 잡풀만 무성하다. 먹구름이 낀 듯 조바심과 두려움으로 그득해진 일상, 금방이라도 솟구쳐오를 것만 같은 슬픈 예감이 목젖까지 차오른다.

때 이른 모란이 흐드러진 정원을 지나 감나무에 잘 다녀오겠다는 눈인사를 한 후 골목을 나선다. 담벼락 위에 누워 낮잠을 즐기고 있던 고양이 모녀가 인기척을 듣고 화살처럼 날아온다. 허기가 져 잠이 오지 않는다고, 밥알이 그리워 목이 멘다며 골목 끝까지 나를 따라나선다. 그들의 허기가 발목을 잡는다. 발목만 남겨두고 달아나듯 나와 버렸다. 마스크를 낀 채.

실컷 울려고 갔다가 나보다 더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그녀를 만나고 돌아왔다. ‘그녀의 슬픔에 비하면 나의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슬픔이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듯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지금쯤 그녀의 울음은 그쳤을까. 전화를 걸어볼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내 맘을 알아차린 걸까. 그녀로부터 톡이 왔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 남쪽 베란다에서 바라본 서녘 하늘에 개밥바라기별이 떴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그 별을 바라보며 수혈받듯 위로받는 중이라며. 별 볼일이 없었던 시간, 그 사소하다 여기던 일상이 이참에 별을 올려다 볼 기회가 되었다며 감사하다고 한다.

다가오는 오월이면 첫아기가 태어난다며 행복해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시작될 즈음 유산이 되었다고 한다. 바깥에 나갈 수도 없고 집안에 갇혀 지내다 보니 마음을 추스를 방법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다녔다고 ‘누굴 탓하기라도 해야 살 것만 같아 남편 탓만 하게 되더라’며 울먹였다. 남편 탓도 그 누구의 탓이 아닌 줄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도 거실을 지날 때면 행여나 서로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눈을 감고 지나다녔다고 한다.

특별한 사연을 가진 두 사람이 5분 동안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는 것으로 마음을 전하는 ‘아이콘텍트(눈 맞춤)’라는 신개념의 ‘침묵’ 예능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눈만 바라보고 앉아 있음에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서로에게 쌓여있던 상처들이 치유되는 것을 보면서 덩달아 따라 우는 날이 많았다. 그러고 나면 왠지 위로되며 속이 후련해지곤 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장 친근하게 만들 수 있는 무기는 눈이라고 한다. 화가 난 사람의 눈을 ‘뒤집혔다’하고 화장품 중에서도 가장 종류가 다양하게 많은 것은 눈과 관련된 제품들이다. 그렇듯 우리가 말하는 아이콘텍트, 즉 시선 맞춤이란 정면을 주시하며 어긋나 있는 몸을 바로 돌려세워 가슴과 가슴을 맞대는 일이다. 얼마나 힘이 들고 원망이 컸으면 방과 방 사이 거실을 지나가며 눈을 감고 다녔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가 겪은 상처의 깊이를 나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켜 달라는 메시지를 보고 들으며 몸도 맘도 어느 것 하나 지치지 않는 게 없다. 그런데도 선거 유세차량은 내남없이 공원이며 동네 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지나간 날의 일에만 묶여 비방인지 비판인지 욕지거리들만 잔뜩 부려 놓고 간다. 봄꽃이 피는 시기를 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넉넉잡아도 봄은 채 한 달이 되지 않을 듯하다. 언제부터 봄이고 언제까지가 봄일까. 언제까지가 청춘이고 언제까지를 신혼이라 명명할 것인가. 저마다 자신의 마음에 정한 시기가 있을 것이라 여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보다 출근하지 못하고 있는 남편이 더 힘에 겨운 날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를 비롯한 누군가의 들썩이던 어깨가 좀 잔잔해졌을까 슬픔의 안부가 묻고 싶어지는 늦은 저녁이다. 책임감의 무게나 깊이는 무엇으로도 측량할 수 없을 것이다. 서로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함께 머리를 맞대고 사랑의 눈빛 마주하고 앉아 상대의 눈 속에 든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슬픔을 위로받는 날들이기를.

“울려고 갔다가/ 울지 못한 날 있었다. 앞서 온 슬픔에/ 내 슬픔은 밀려나고/ 그 여자/ 들썩이던 어깨에/ 내 문물까지 주고 온 날” 강현덕 시인의 시 ‘기도실’이 느낌표처럼 다가와 내 맘에 연둣빛 싹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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