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연설로 수상한 처칠…이를 비난했던 헤밍웨이
의회연설로 수상한 처칠…이를 비난했던 헤밍웨이
  • 정경은
  • 승인 2020.04.15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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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자 - (10)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삶과 업적 - 6
영국 44대 총리 ‘윈스턴 스펜서 처칠’
“인간 가치 수호” 1953년 수상
헤밍웨이 “처칠은 구어의 대가
문학상 취지와 맞지 않아” 비판
러 소설가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당대 유명 문인들과 문학적 교류
자연에 대한 경외 작품에 담아
프랑스 소설가 ‘로제 마르탱뒤가르’
인간 갈등의 근본적 측면 묘사
신택리지-노벨문학상-다시
인류에게 이상적인 글을 쓰는 모두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다. 그림 이대영

◇ 최초로 과감하게 글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아 수상의 영광을

“산문을 쓰는데 있어 고전러시아의 전통을 이어받은 엄격한 예술성”이라는 공적으로 1933년 러시아 소설가, 번역인, 시인, 평론가였던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Ivan Alekseyevich Bunin, 1870~1953)에게 수상의 영광이 돌아갔다.

그는 1870년 10월 22일 러시아제국 보로네시에서 남부럽지 않는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사람들에 싸여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1881년 11살에 예일 공립학교에 입학했으나 가세가 갑자기 기울어져 마치지 못하고, 1886년 3월에는 퇴학처분을 받았다. 젊은 나날을 술꾼으로 보냈으며, 성격이 다급하고 충동적이며 도발적이었다. 그러나 농촌에서 생활함에 따라 자연경외를 작품에 담았다.

1887년 최초 시 ‘동네 빈자들’을 상트페테르부르크 문학잡지 ‘조국’에 게재했다. 1891년 최초단편 소설 ‘나라 스케치’가 ‘러시아의 국보’저널에 실렸다. 1889년 1월에 올레지역으로 옮겨 ‘올로프스키 신문’지국의 신문편집을 맡았고, 단편소설, 시 및 리뷰를 출판했다. 1894년 상반기 우크라이나 전역을 여행하면서 “나는 대초원과 사랑에 빠지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나라의 영혼인 우크라이나의 노래를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895년 러시아 수도를 방문해 안톤 체홉(Anton Chekhov, 1860~1904) 등 당대 유명한 문인들과 서신을 통해 문학적 교류를 쌓아 성장의 터전을 다졌고, 1894년 1월 모스크바에서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를 만나 ‘총농민화(total peasantification)’라는 유토피아 같은 철학을 얻었다. 1899년 맥심 고리키(Maxim Gorky, 1868~1936)와 교류했으며, 문학그룹 ‘지식(Znanie)’에도 가입해 활동을 했다.

1909년 학사원 명예회원, 1911년 중편소설 ‘마을((The Village)’을 발표했다. 몰락하는 지주계급을 소재로 퇴폐적인 색채와 심리묘사가 뛰어났다. ‘부닌 양단(Bunin brocade)’이라는 별명처럼 풍부한 언어구사를 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 후 파리로 망명해 살다가 1933년 노벨수상자로 수상의 영광을 얻었다.

◇ 고등학교 학창시대에 ‘전쟁과 평화’를 읽고 필생대작을 구상해

1937년 프랑스 소설가이며 극작가인 로제 마르탱뒤가르(Roger Martin du Gard, 1881~1958)에게 “소설 ‘티보’에서 인간의 갈등과 현대생활의 근본적인 측면을 묘사한 예술적 힘과 진실”을 창작했다는 공로로 단독수상자로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그는 1881년 3월 23일 프랑스 파리 인근 뇌이쉬르센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아버지가 소송대리인이었던 전형적인 서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마칠 17세에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독파하고 감격한 나머지 등장인물과 무수한 삽화를 갖고 수명이 긴 소설을 창작하겠다는 각오를 했다. 1899년 고전학교에 진학해 역사연구방법과 태도를 소설작업의 하나로 익혔다. 1906년 결혼을 계기로 창작에 전념했고, 1908년 소설 ‘생성((Devenir)’, 1913년 드레퓌스사건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을 묘사한 장편소설 ‘장 바로아(Jean Barois)’라는 문제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희곡으로는 농민들의 풍속을 웃음으로 풀어가는 1913년 ‘루류 신부의 유언’, 1920년에 착수해서 1940년에 완성한 필생대작 ‘티보가의 사람들’ 8부작 11권을 발표하고, 1933년 ‘비에유 프랑스(Vieille France)를 출판했다. 193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난 뒤에도 1951년 ‘안드레 지드의 노트’를 출판했다. 1953년‘모모르 대령의 회상’을 집필하고자 했으나 미완으로 남기고 1958년 세상을 떠났다.

◇ 세계여행에서 얻은 경험으로 인류의 진화과정을 시로 풀어냄

1944년 덴마크의 소설가 요하네스 빌헬름 옌센(Johannes Vilhelm Jensen, 1873~1955)에게 “광활한 호연지기, 비옥함, 광범위하고도 대담함 그리고 신선하면서도 창의적 스타일, 지적호기심이 결합된 시적 상상력”이란 공로로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그는 1873년 1월 20일 덴마크 북부 유틀란트의 페소에서 수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코펜하겐대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하다가 3학년 때 포기하고 작가를 지망해 문학을 배웠다. 1910년에 출간한 ‘힘머란트 이야기’는 자신의 주변이야기를, 1906년에 ‘시집’을 발표했다.

오랫동안 미국, 에스파냐, 프랑스 파리 등지에 통신기자로 일했고, 나중에 세계일주 여행길을 올라 일본에 기착해 1906년 일본의 신화소설 ‘부소산 Fuji Mountain)’을 발표했다. 노벨문학상 대상작품이었던 ‘긴 여행(Den lange rejse)’은 1909년부터 1921년까지 6부작으로 구성, 내용은 빙하기 이전부터 빙하기까지, 바이킹 시대를 거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까지 인류의 진화과정을 문화와 역사에다가 다윈의 진화론을 독자적으로 해석해 시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문학적으로는 구약성서, 스칸디나비아 신화(神話), 아이슬란드의 사가(詞歌) 등을 인용하고, 지질학, 인류학, 고고학, 민족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하며, 동시에 소년시설의 회상과 여행과정의 인상으로 채색을 한 대작이었다.

◇ 의회연설로 수상자가 되었던 처칠과 이를 비난했던 헤밍웨이

“전기와 역사서에서 보여 준 탁월함과 고양된 인간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행한 훌륭한 연설”이란 공로로 1953년 노벨문학상은 영국 제44대 총리 윈스턴 스펜서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 1874~1965)에게 돌아갔다.

이에 대해 최종수상자 쟁탈전을 벌였던 미국 신문자유기고자이며 소설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는 문학성과 정치성을 구분도 못한다면서 “처칠은 구어의 대가이기 때문에 노벨문학상의 취지와는 맞지 않다.”고 비판을 했다.

처칠은 1874년 11월 30일 영국 옥스퍼드셔 블레넘 궁전에서 국왕과 같은 존귀한 귀족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아일랜드 총독, 아버지는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1881년 7살 때 세인트조지스쿨에 입학했으나 말썽꾸러기로 낙제했으며, 1884년 브런즈윅스쿨로 전학, 1888년 해로우스쿨로 또다시 옮겼다. 그러나 문학엔 취미가 있어 학교잡지 ‘할로비언(Harrovian)’에 시(詩)가 게재되었다. 2번이나 낙방하고 3번째에 1893년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이 허락되었다. 기병소위로 임관되어 쿠바, 인도 및 수단에 1895년부터 1899년까지 병영생활, 1899년 12월 남아프리카 보어전쟁(Boer War)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수용되었고, 로마가톨릭교회 신부로 가장해 탈출에 성공했다. 대영제국의 식민지통치에 저항하는 수단과 인도의 주민 진압에도 참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장관을 역임했다.

해군장관 당시 i) 군함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대체방안은 독일의 잠수함 발명으로 실패, ii) 갈리폴리전투에서 작전 실패와 임명피해에 대한 문책으로 장관직을 내놓았다. 퇴임이후 시골에서 수채화 그리기에 몰두해 우울증 치유를 했다. 다시금 중령으로 복귀해 참전했고, 재무부장관을 역임한 아버지의 고집불통으로 인한 정치적 실패를 거울삼아 타협, 유머 및 기지를 발휘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로 인해 병영의 군인들에게 사기를 제고, 장병들에 목욕을 권장해 피부병을 치유하고, “겁먹지 말게, 전쟁은 웃으면서 하는 거야.”라고 진정시켰다.

정치적 업적은 제쳐놓고, 문학예술에 대해 언급하면, 그림그리기는 아마추어 수준을 뛰어넘었고, 글쓰기는 종군기자 뿐만 아니라 수필, 평론, 소설, 전기, 회고록, 역사서를 집필했던 작가였다. 1940년부터 필생대작 꿈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개인적 메모, 업무상 공문서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 자신의 집에 보관했다가 주변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6권이나 되는 대작을 집필했다. 1) 폭풍이 몰려온다(Gathering Storm, 1948), 2) 가장 훌륭한 시간(Their Finest Hour, 1949), 3) 위대한 연합(The Grand Alliance, 1950), 4) 운명의 힌지(The Hinge of Fate, 1950), 5) 링의 폐막(Closing the Ring, 1951), 6) 승리와 비극(Triumph and Tragedy, 1953)으로 구성된 ‘제2차 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을 저술했다.

사실 그는 이미 1930년 대영제국의 역사를 관망하는 역사서 1) 대영제국의 탄생(The Birth of Britain), 2) 새로운 세계(The New World), 3) 혁명의 시대(The Age of Revolution) 및 4) 위대한 민주주의(The Great Democracies)라는 4권의 ‘영어 사용민의 역사(History of the English-Speaking Peoples)’라는 대작을 저술했다. 이렇게 글쟁이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기에 정치인이라는 사실에도 노벨문학상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글=정경은<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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