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빨간 열매 - 나의 열매 너에게 줄게
겨울에 빨간 열매 - 나의 열매 너에게 줄게
  • 승인 2020.04.1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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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나무들 중에는 한겨울에도 열매를 매어달고 있는 나무가 있습니다. 참빗살나무, 낙상홍, 먼나무, 의나무 등이 그 대표적인 나무입니다. 이들 나무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 빨갛고 동그란 열매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멀리서 보아도 금방 알아볼 수 있고, 새의 목구멍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구조입니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새들의 먹이가 되는 풀씨들이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새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더욱 애쓰게 됩니다. 이 때 빨간색 열매는 새들에게 금방 발견될 수 있습니다.

몇 해 전 한국교원대학교에 갔을 때에 눈이 하얗게 내린 꽃밭에 참빗살나무가 빨간 열매를 조롱조롱 매어달고 서있는 것을 본 적 있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 그늘진 곳에 관상용으로 심어진 이 나무는 그 빨간 열매로 겨울을 밝히고 있으니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들은 마른 줄기나 흙색과 비슷한 색깔을 지닌 풀씨를 찾느라 모이를 먹을 때마다 흙을 긁어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흰 눈 위의 빨간 열매는 그 색깔의 파장이 길어 새들이 쉽게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모두 나무유전자의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나무는 자신의 열매가 새들에게 먹혀야만 멀리 퍼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열매에 빨간 색을 많이 합성시켰습니다. 그리고 열매의 자루에도 섬유질을 많이 집어넣어서 웬만한 바람에는 결코 떨어지지 않도록 질기게 만들었습니다. 나무들의 전략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많은 나무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자신의 열매를 어떻게 퍼뜨릴까를 생각하며 여러 가지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바로 아래에 씨앗을 떨어뜨리면 자신의 짙은 그늘 때문에 어린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까닭입니다.

그리하여 색깔과 향기에 단맛까지 담아놓고 있습니다. 물론 겉에는 달고 부드러운 과육으로 감싸놓고 있지만 정작 생명이 전해지는 씨앗은 단단한 목질부로 포장하여 새들의 뱃속에서도 결코 소화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설계해 두고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나무라 할지라도 자신의 씨앗을 이처럼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들이 먹고 다른 곳에 가서 똥을 싸면 그것을 거름으로 하여 마침내 새로운 생명으로 싹틔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운반 수단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위의 나무들 중에서 먼나무와 의나무는 비교적 큰키나무이지만 참빗살나무와 낙상홍 등은 작은 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찾아오는 새들의 종류도 달라집니다.

낮은 키 나무일수록 열매도 대개는 작습니다. 열매가 작으면 모여드는 새도 참새나 박새, 굴뚝새 등 비교적 아이들 주먹만 한 작은 새가 주로 모여들고, 큰 키 나무들에게는 어치를 비롯하여 직박구리, 까치 등 다소 큰 새들이 주로 찾아옵니다.

새의 몸집 크기는 곧 입의 크기와 연결됩니다. 곧 나무들은 자신을 많이 찾아오는 새들의 입 크기에 맞추어 열매의 크기를 달리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종족 보존과 번창을 위해 새들에게 서슴없이 자신의 씨앗을 내어주는 나무들의 생존전략이자 동시에 이에 적응하는 새들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새들도 자신을 조절하기 때문입니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핀치 새 관찰 연구에 따르면 먹이의 종류에 따라 입의 모양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즉 새들도 먹이에 따라 입의 모양과 크기를 알맞게 발전시켜 왔던 것입니다.

새와 나무는 이처럼 도와가면서 상생을 추구합니다. 결국 새들은 나무들과 한 몸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어느 곳에서 살아가거나 간에 전 세계인이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기본을 지켜 본분을 다해야만 비로소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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