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내가 대구 의사여서 감사합니다
2020년 내가 대구 의사여서 감사합니다
  • 승인 2020.04.1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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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수 소아청소년과 원장·대구시의사회 재무이사
‘우리의 영웅, 힘내세요, 고맙고 감사합니다, 힘내자 대구, 해낼 수 있다, 국민이 있습니다. 고생하시는 의사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약소합니다, 대구시민의 작은 의리, 취준생 1,004원.’

2월18일 대구에 첫 코로나 확진자가 생긴 후 하루하루 대구의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환자의 동선이 발표되고 내 주변의 병원에서, 도매시장에서 계속 확진자가 생겼고 정부에서는 중국의 입국을 제한하지도 않은 채 상황에 대해 낙관론만 펼치던 때라 우리 모두 “어, 어” 하는 사이에 불길처럼 번져버렸다. 그 와중에, 대구시 의사회로 2월21일 서울시의사회의 첫 성금을 시작으로 공식적으로 모금한 적도 없는데, 2월25일부터 일반인들의 성금이 답지하기 시작했다. 위의 문구는 성금을 보내주신 분들이 통장에 찍어주신 응원 문구이다. 재무이사라는 일을 하면서 성금 액을 취합하는 과정 중에 보게 된 행운의(?) 문구들. 그 많은 분들의 성금과 문구를 정리하면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 아직도 세상은 따뜻하구나. 그 후 2월25일 대구시 의사회 회장님의 호소문 “이 위기에 단 한 푼의 대가, 한마디 칭찬도 바라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시민들을 구하자. 내가 먼저 제일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겠다”이 발표되었다. 혹자는 제대로 된 일터도 마련해 놓지 않고 감정의 호소만 한 거라고 비아냥 거렸지만 마음이 비뚤어진 이의 비판일 뿐, 백 마디의 명령과 장황한 설명보다 저 밑바닥에 숨어있던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뜨거움을 이끌어내 준 한마디였다. 미미하지만 나도 대구의 의사로 뭔가를 해야겠구나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해준 마중물이 되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 호소문을 읽으며 또 한번의 뜨거움. 그리고 이 호소문의 힘을 빌려 전국에서 대구로 달려와 준 봉사인력이 1200명에 이르게 되었다.

서구청 직원 내 확진자로 인해 저녁 전화 상담에 문제가 생겨 돌아가며 상담 봉사를 가게 되었고, 정체를 알 수도 없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공포가 시민들에게 얼마나 큰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 환자 발생 후 서구보건소에 가서 신생아 BCG접종을 한 애기 아빠의 전화 상담 중, 코비드19 바이러스는 아직 잘 모르는 상태였지만 일반적인 감염 코스나 증상들을 얘기해주고 안심을 시켜드리는 과정 중에 바뀐 아빠의 안도의 목소리는 오히려 나에게 큰 위안과 자부심을 주었다. 아빠가 나에게 감사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의사로서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더 감사한 경우였다. 그 후 입원 대기자들과의 전화 상담 시에도 나의 힘찬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며 고마워하시는 분들과 처음에는 격리자의 답답함을 호소하며 짜증을 내시던 분들도 매일 전화 상담을 통해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될 때 내가 더 감사하고 행복했다.(사실 진짜로 열심히 하신 다른 의료진과 비교도 안 될 만큼이지만)

일부 종교집단 내의 대규모 확진자들이 하루하루 무섭게 발표가 되고 2월29일 하루 최대 확진자수 741명이 되면서 전국의 모든 시선이 대구를 향하게 되었고 서울에 계시는 노교수님과 선배들의 걱정 섞인 안부 전화를 받았다. 모든 이들이 “대구는 어떠냐”고, “물건 사재기나 공포로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 오셨다. “우리는 잘 견디고 있고, 어디를 가도 물건 사재기나 대구에 왜 먼저 마스크를 충분히 공급하지 않느냐”고, “나라는 뭐하는 거냐고 소리 지르거나 욕하는 이가 없다”고. “너무나 묵묵히 견디고 있다”고. 이렇게 점잖게 잘 견디고 참는 시민들이 어디 있을까싶을 정도로 우리 모두 잘 참아내고 견뎠다. 6·25때도 장이 섰던 대구 서문시장이 일주일간 문을 닫을 정도라면 그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꿋꿋이 배송을 잘 해주신 택배기사 분들에게도 너무 감사하다. 대구 시민이라서 내가 2020년 이 봄에 대구의 의사라서 감사한 일이 이 와중에도 이 어려움 속에서도 너무나 많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를 보면 지금의 상황과 너무나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그 속에 나오는 대목 중에 “ 이 모든 것은 영웅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건 성실의 문제예요. 비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맞다. 쉽게 끝날 거 같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우리 모두는 지쳐가고 나태해져간다. 하지만 끝나지 않은 싸움에서 섣부른 영웅주의가 아니라 끝까지 견디는 성실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소설 속 맘에 와닿는 한 대목.

-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양할 것이 더 많다 -- 페스트는 인간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위해 언제든 다시 찾아 올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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