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빛 대구
분홍빛 대구
  • 승인 2020.04.2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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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SQ힉스아카데미 대표, 경영학 박사
대구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봄이 와서 그런 것이 아니라 21대 총선의 결과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 아흔을 바라보는 노모가 “이번 선거, 누구에게 찍어야 하느냐?”고 물어 오셨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문재인이 좋으면 1번, 황교안이 좋으면 2번을 찍으시라”고 했다. 그랬더니 “누가 더 좋은 사람인가?”고 물으셔서 “두 분 다 훌륭한 분이시니 텔레비전을 잘 보고 판단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이 다되어 가는 지금도 나는 모친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그리고 아내와 딸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에 몸을 담고 있는 친척과 지인들이 적지 않아서 서로 연락하고 도움을 주고받곤 한다. 그 분들은 대부분 미래통합당과 관계되어 있지만 내게 정치적 선택을 강요하거나 정치적인 일에 관여하도록 요청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아마도 목사인 나의 입장을 배려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정치적 성향을 떠나 그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려고 나름대로 노력한다.

그런 내게 끊임없이 정치적 선택을 강요하는 분들은 오히려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교계의 목사들과 장로들이다. 그 분들은 신앙과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도 갑자기 현 정권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분들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든다. 그분들은 심심치 않게 SNS를 통하여 보수 야당의 정치적 주장을 담은 내용을 하나님의 뜻이라며 부지런히 보내온다. 그런 글을 올리거나 보내지 말라는 나의 간청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소리를 높이는 그 분들의 무례함에 내 얼굴도 살짝 분홍빛으로 물들고 만다.

분홍빛 대구가 걱정스럽다. 가장 다급한 것은 코로나19 이후에 회복해야 할 대구의 경제이다. 코로나19 이후에 대구시는 이동 인구의 감소로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대구 경제의 회복에 정부의 지원과 협력은 필수적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선거가 끝난 뒤 지역의 국회의원들에게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여당 의원 한 명도 없는 분홍빛 대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정부의 협조를 이끌어 낼 것인가? 분홍빛으로 물든 대구는 그래서 더욱 불안하다.

더 심각한 것은 2년 후에 다가오는 대선이다. 여당에서는 이미 대통령 후보들이 가시적으로 등장하고 있고 이번 선거에서 보여 준 여당의 전투력은 대선에서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야당의 대통령 후보들은 아직 그 모습이 보이지 않고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야당의 전투력도 여당과 비교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무질서하고 나약했다. 4번의 선거에 연패를 거듭하고서도 대구에 기대어 위로를 받고 있는 야당의 분홍빛은 퇴기의 입술처럼 초라하고 안쓰럽다.

그 대구의 분홍빛에 교회마저 물들어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교회가 아닌 일반 시민들은 특정 정당의 정치적 주장에 공감할 수 있고 또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가 특정 정당의 정치적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대구 교계의 지도자들이나 교인들은 분홍빛에 물든 그들의 신앙을 씻어 내어야 할 때가 되었다.

이번 총선에서 투표에 참여한 대구 유권자 137만 명 중 63%가 지역구 선거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를 선택했고, 29%가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이것은 분홍빛 대구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을 선택한 유권자가 29% 정도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전국적으로는 투표한 전체 유권자 중 42%가 미래통합당을, 50%가 더불어민주당을 선택했다. 미래통합당을 지지하든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든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대구의 시민이며, 우리나라의 국민이다. 교회는 이제 분홍빛을 거두고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정치적 편견에 매이지 않아야 한다. 교회는 정치적 이유로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지 말고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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