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지 못한 사람은 쑥 같고 풀 같다(不學者如蒿如草)
배우지 못한 사람은 쑥 같고 풀 같다(不學者如蒿如草)
  • 승인 2020.04.2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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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경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지인이 청도의 산기슭에 밭을 사서 배롱나무를 심었다. 며칠 전에 그곳에 쑥을 캐러 갔다. 삼년 전 겨울, 그 산기슭 밭은 그냥 묵혀놓아서 마른 쑥과 마른 풀이 서로 뒤엉켜서 사람이 전혀 들어갈 수 없는 엉망진창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봉두난발(蓬頭亂髮)을 한 모습이었다. ‘봉(蓬)’은 쑥을 말한다. 즉 봉두난발은 ‘쑥대머리’이다. 옛날 어른들은 머리를 길게 길렀다. 그 긴 머리를 매일 곱게 빗고 틀어 감아올려서 상투를 하였다. 그 상투가 헝클어지고 엉망으로 풀어헤쳐진 모습을 쑥대머리라 하였다. 쑥대머리 같은 그 밭은 오랫동안 경작하지 않고 내버려 둔 묵정밭이었다. 지인은 그 묵정밭을 부지런히 일구어서 배롱나무를 심었다. 2년생 배롱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리 잡은 사이에서 쑥과 잡풀이 왕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함께 간 사람들은 “야! 쑥도 많고 머위도 있다. 달래도…”하고 떠들면서 뜯고 캐고 하면서 즐거워했다. 지인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쑥대밭이지요”하였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저 많은 쑥과 풀은 언제 다 없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옆에서 바라만보는 것만 해도 지인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할지 상상이 되었다. 쑥과 풀에 대한 이야기는 명심보감 근학편에 나온다.

중국 북송의 8대 황제 휘종은 ‘학자여화여도(學者如禾如稻)하고 불학자여호여초(不學者如蒿如草)니라’하였다. ‘배운 사람은 쌀알 같고 곡식 낟알 같다. 배우지 못한 사람은 쑥 같고 풀 같다’는 뜻이다. 쌀알 같고 곡식 낟알 같은 사람은 나라의 튼튼한 기둥이 되고 세상 어느 곳에서나 귀중한 보배로 대우받는다. 쑥과 풀은 농사꾼이 제일 싫어하고 김매는 사람도 무척 싫어한다. 쑥 같고 풀 같이 배우지 못한 사람은 ‘타일면장(他日面墻)’한다. 타일면장은 ‘먼 후일에 무식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 때는 후회해도 이미 늦었지만 말이다.

면장(面墻)이라는 말은 서경에 ‘불학면장(不學面墻)’으로 나온다. ‘배우지 아니하면 담장을 향해 선 것 같다’는 뜻이다. ‘알아야 면장(面墻)을 하지’라는 속담의 어원이기도하다. 알아야 무식함을 면한다는 뜻이다. 자기 얼굴 앞에 담장이 가려지면 앞을 못 보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배우지 않으면 일반적인 규칙이나 규범을 알지 못하여 일처리가 미숙해진다. 일처리가 거칠어지면 번거롭게 되어 귀찮아져서 직무도 태만하게 된다. 배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자도 아들 백어에게 ‘시경에 나오는 주남, 소남의 시를 알지 못하면 담장 앞(墻面)에 서서 더 나아가지 못함과 같으니라’하였다. 이때의 장면(墻面)은 면장(面墻)의 도치된 말이다. 알아야 무식함을 면한다는 의미이다. 주나라 땅인 주남, 소남 지방의 시들은 일반 민요풍이다. 소남에는 산흰쑥을 뜯어서 군주의 제사에 썼다는 내용의 시도 있다. 쑥의 쓰임이 대단하였던듯하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도 환웅이 같은 굴속에 사는 호랑이와 곰에게 신령스러운 ‘애일주(艾一炷)’와 마늘 20개를 주면서 이것을 먹고 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라 하였다. 애일주는 ‘쑥 한줌’이란 뜻이다.

소학에 ‘봉생마중(蓬生麻中)’이라는 말이 있다. ‘쑥이 삼밭 가운데서 자라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는 의미이다. 환경의 중요성을 비유적으로 일컬은 말이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면 곧고 바르게 된다. 반대로 흰모래는 개흙(갯바닥이나 늪 바닥에 있는 거무스름하고 미끈미끈한 흙)과 함께 있으면 물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오염이 되어 검게 된다.

쑥은 종류가 매우 많다. 한자로 쑥은 봉(蓬), 호(蒿), 애(艾), 번, 인진(茵蔯) 등으로 읽힌다. 우리는 산쑥, 덤불쑥, 참쑥, 산흰쑥, 사철쑥 따위를 쑥이라고 한다. 이로움을 주는 쑥도 있고, 수고로움을 주는 쑥도 있다. 쑥은 용도와 쓰임에 따라서 우리에겐 친근하고 친숙한 풀이기도 하다. 쑥떡, 쑥국, 쑥버무리, 도다리쑥국은 즐겨먹는 음식이다. 해녀들의 귀마개도 쑥으로 하였다.

아무튼 지인은 쑥대밭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일미칠근(一米七斤)’하리라. ‘쌀 한 톨을 만들려면 농부는 논밭에서 일곱 근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속담이다. 배운 사람은 쌀알 같고 곡식 낟알 같다. 반면 배우지 않으면 쑥처럼, 풀처럼 된다. 땀 흘려 배워야 한다. 뒷날 후회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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