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음악
*가구음악
  • 승인 2020.04.2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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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하지 않은 일은 하지 마셔요, 쐐기풀엄마
나는 더 이상 아기가 아니에요
이마가 볼록 튀어나온 장미가 손을 뿌리쳐요
장미의 혀에 찔린 쐐기풀밭
장미의 배경으로 흘러 다니는 쐐기풀의 노래
낮은음자리표 위에서, 장미가 옳아요
벼락 치는 밤, 번개를 품은 후
쐐기풀은 더 이상 쐐기풀일 수 없어
쐐기풀의 가늘고 야윈 몸은
더 이상 부풀 수 없을 때까지 부풀어
쐐기풀 안에 쐐기풀은 없어, 장미가 옳아요
넓은 세상으로 나갈 거예요, 쐐기풀엄마
이 옷장은 너무 갑갑해요
쐐기풀의 심장을 찢고 나오는 장미향기
꽃구름 이마, 분홍조개 귀, 달삭달삭 입술
말랑한 손톱 발톱, 장미가 옳아요
장미의 부탁을 기다리지 않았기에
장미의 뺨은 더 이상 분홍일 수 없는 분홍
장미의 부탁을 기다려야 한다면
레일과 손잡이가 망가진
쐐기풀서랍은 언제나 장미를 낳을 수 있을까요

*사람의 시선을 끌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가구처럼 배경으로 존재하는 편안한 음악, 에릭 사티에 의하면 가구음악은 공기의 진동으로 존재하며 빛과 열의 역할을 담당한다.

◇최정란 =경북상주 출생,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계명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여우장갑』 『입술거울』 『사슴목발애인』 『장미키스』,<요산창작기금> <부산문화재단창작기금> 2016년 제7회 <시산맥작품상> 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해설> 이따금 부탁하지 않은 일을 앞질러 할 때가 있다. 오지랖이라고 핀잔을 듣게 된다. 자식은 부탁하지 않은 일은 하지 말라고 한다. 이 말은 대부분 다 옳다. 그러나 본인의 부탁을 기다려야 한다면, 생명은 태어날 수가 없다. 공기, 물, 열처럼 생존을 결정하는 중요한 것들, 세상에 당연한 것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처음에 부탁하지 않은 것이다. 부탁하지 않은 일을 앞질러 하는 것이 사랑일지 모르겠다. 물론 부탁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것도 사랑이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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