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찌르듯 자라는 나무, 세상으로 뻗어가는 인간
하늘 찌르듯 자라는 나무, 세상으로 뻗어가는 인간
  • 황인옥
  • 승인 2020.04.30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각가 임영규
코로나 탓 3월→7월 전시 연기
대표 연작 ‘빛을 쫓는 자’ 공개
나무 생장 패턴대로 인간 조각
자연이 선사하는 생명력 꿈틀
원본-나무조각상
임영규 작 ‘빛을 쫓는 자’
 
작가 임영규
작가 임영규가 자신의 작업실에 설치된 작품 '빛을 쫓는 자' 연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북 경산 남산면에 있는 조각가 임영규(사진)의 작업실 ‘거인조각연구소’의 육중한 출입문을 밀자 어두웠던 공간에 따사로운 봄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반짝이는 햇살 속에서 작가가 빚어놓은 실존들도 덩달아 반짝였다. 작가가 작품 ‘빛을 쫓는 자’라고 소개했다. 한 발 또는 한 손으로 땅을 짚고 하늘을 향해 몸을 뻗은 형상들이다.

하늘 향해 끝없이 뻗을 것 같은 긴 형상에 목이 빠져라 올려다볼 때쯤에 작가가 “태양, 나무, 양성굴광성(陽性屈光性)” 등의 단어들을 나열했다. 그리고는 “굴성(屈性)은 식물의 줄기나 뿌리 등의 기관이 자극에 대해서 일정한 방향으로 굽는 성질을 말하며 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굴곡 성장하는 성질을 양성굴광성(陽性屈光性)이라 한다”며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생명은 빛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고, 이 오묘한 생명의 작동 원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원리에서 보면 우리는 너무나 작은 존재임을 느끼게 됩니다.”

작품 ‘빛을 쫓는 자’의 철학적 기반은 자연주의다. 특히 태양과 생명 등의 개념들이 토대가 된다. 작업의 재료는 나무, 조각의 형상도 태양을 향하는 나무의 본성을 따른다. 인간의 형상을 표현하되, 땅을 딛고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나무의 생장 패턴으로 표현했다. 각각의 형상들을 한 줄로 세워놓으면 인간군상보다 빽빽한 숲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다가오는 근원에 ‘나무’가 있다.

작품 ‘빛을 쫓는 자’는 이양하의 수필 ‘나무’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양하는 수필에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아 널리 가지를 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 예찬론을 펼쳤다. 작가도 이양하가 바라보는 나무의 덕성을 오롯이 수용하며, ‘빛을 쫓는 자’를 희망의 아이콘으로 시각화했다.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나아가는 것처럼 ‘빛을 쫓는 자’도 소임을 다하는 그날까지 하늘과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갈 것임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각가 임영규 네 번째 개인전이 7월 28일부터 8월 2일까지 수성아트피아 멀티아트홀에서 열린다. 코로나 19로 인해 3월에서 7월로 연기된 이번 전시에는 ‘빛을 쫓는 자’ 연작을 새롭게 선보인다.

작가의 조각은 세 번의 변천사를 거쳤다. 첫 작업은 대학원 시절에 열린 첫 개인전에 소개됐다. 당시 그는 철사를 녹인 물방울을 떨어 트려 인체를 제작했다. 바느질을 하듯 수많은 방울들이 모여 인체의 형태를 갖춰갔다. 하지만 인체라고 하기에 모호함이 없지 않았다. 잘려진 인체를 재배치 한 이유로 초현적인 느낌이 강했다. 작품 ‘꿈 속의 형상(몽상)’이었다.

두 번째 변화에는 철사를 녹여 만든 이전의 작업들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모색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철이 녹 쓸고 부식되어 주저앉아 버린 것. 많은 시간을 요하고 작업 방식도 힘들고, 작업 후 보관에도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일단은 첫 작업은 보류 상태로 두고 ‘오공의 외출’ 연작을 새롭게 시도했다. 초현실적인 형상 대신 “오브제와 함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원숭이”를 표현했다. “인간과 원숭이의 DNA가 99% 일치한다는 점에서 원숭이에 인간을 이입했고, 인간으로 진화해가는 원숭이를 표현했어요.”

작품 ‘오공의 외출’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손오공의 머리띠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행동을 제약하던 머리띠를 제거함으로써 오공에게 무한한 자유를 부여한 것. 그가 “오공은 제가 이루지 못한 욕망이 아이콘”이라고 했다. “오공이를 통해 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지난해부터 시도한 작품이 이번 수성아트피아 개인전에서 새롭게 소개되는 ‘빛을 쫓는 자’다. 결혼과 함께 아이가 태어났고, 그런 과정에서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게 되면서 변화된 작품이다. 무엇보다 “자녀에게 당당한 작가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살기 위해 시류에 편승하는 작업보다 작가적인 가치에 집중하는 진중한 작업을 하자”는 결론을 내면서 조각에 개념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세 번째 변화였다. 이 연작에서는 자연주의와 생명이라는 보다 거시적인 주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작가는 작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진화론을 거쳐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자연주의로 주제의 확장을 거듭했다. 그리고 청동이나 주물 등의 무생물에서 나무라는 자연으로 재료의 변화도 꾀했다. 이 모든 것이 향하는 꼭짓점에 “자연”이 있다. “작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나무처럼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싶어요.”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