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은 곧 사람…풍파 헤쳐나가는 과정 닮아있어”
“조약돌은 곧 사람…풍파 헤쳐나가는 과정 닮아있어”
  • 황인옥
  • 승인 2020.05.03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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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갤러리 藝, 남학호展
1200호 작업기간만 8개월
돌에 새긴 하트는 ‘생명’을
돌에 앉은 나비 ‘행복’ 상징
동서양 장르의 구분 무의미
작년부터 조약돌 직접 수집
자유자재로 빛·구도 등 연출
“화업 40년, 이제부터 진짜”
남학호 작가
남학호 작가
 
남학호 작
남학호 작 ‘석심-생명’

작가 남학호(61)는 드넓은 동해바다와 우뚝 솟은 칠보산, 그리고 태백산 준령이 토해낸 드넓은 들판이 어우러지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영덕에서 나고 자랐다. 명사십리 백사장이나 칠보산 계곡은 어린 남학호의 놀이터였고, 호연지기를 키우는데 더없이 좋은 스승이 되었다. 그곳에는 드넓은 바다나 깎아지른 계곡만큼이나 조약돌이 지천에 널려 있었는데, 조약돌은 등하굣길 아이들의 놀잇감이 되었다. 그에게 조약돌은 “성장하면서 온몸으로 호흡한 공기 같은 친숙한 존재”였다.

대구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10여년이 흐른 어느 날, 남 작가의 고민이 깊어갔다. 199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한국화를 넘어서는 현대미술 화풍에 대한 갈망이 커져만 갔다. 남학호만의 조형적인 철학을 담아내야 한다는 위기감에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날들이 늘어갔다. “남들이 쉽게 하지 않은 것을 함으로써 남학호라는 화가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던 시기였어요.”

변화를 위해 한지와 먹을 버리고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재료를 바꾸자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소재였다. 작가의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할 소재를 모색해야 했다. 그 때 어린 시절 친근했던 조약돌이 의식 속으로 “훅”하고 치고 들어왔다. “어린 시절 추억으로 남아있던 조약돌이 작업 속에서 미학적으로 새롭게 살아났어요. 모진 풍파에 온 몸을 내 맡겨 둥글게 깎이는 그 모습이 인간의 삶과 겹쳐졌죠.”

조약돌은 흔한 재료다. 공기처럼 발길에 채여도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하찮은 존재다. 만만한 소재인 만큼 자극성은 떨어지기 마련. 그런 까닭에 혹자는 30년이나 조약돌을 극사실로 표현하는 남 작가에게 “조약돌 재현에 왜 그토록 오래 매달리느냐”며 충고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좀 더 드라마틱하고 자극적인 소재로 난해한 어법을 구사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속내였다.

그때마다 작가는 “당신이 돌을 알면 얼마나 아느냐”며 질문을 되돌려 주곤 했다. 그리고는 사실주의의 대표 화가로 꼽히는 귀스타브 쿠르베가 남긴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어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라는 그 유명한 말을 언급했다. 쿠르베는 인간의 감정과 주관에 치중했던 낭만주의와 달리 현상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사실주의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야기 하고자 한 화가였다.

남 작가가 “한 번도 본적 없는 천사는 날개, 도깨비는 뿔만 그리면 충분히 상징이 드러나지만 돌을 돌답게 그리기는 정말 어렵다”고 했다. “일상적인 소재를 제대로 표현하기는 힘들어도 감동은 더 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의 화실 당호가 ‘돌을 가까이 한다’라는 근석당(近石堂)으로 지어졌을 만큼 오직 조약돌만 바라본 세월이었다. 30년을 조약돌을 그렸지만 다 같은 조약돌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세하게 변화한 감정의 덩어리들이 조약돌의 형태에 영향을 미쳤다. 때로는 계곡에 물기 머금은 조약돌이었다가, 때로는 따가운 해변가의 바스락거리는 조약돌로 표현되었다. 대개 회색톤 계열로 통일감을 두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붉은빛과 푸른빛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조약돌 이외에 나비나 하트, 한자 등의 요소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십장생의 하나인 돌은 장수를, 나비는 장수와 행복을 의미한다. 돌에 새겨진 하트는 돌의 심장이며, 생명을 의미한다.

작가가 “조약돌에 인간을 이입했다. 나비는 떠나간 님을, 하트는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 한자는 표현하고픈 메시지 등의 관념들을 담았다”고 말했다.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삶의 여정이 조약돌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었어요. 그런 변화는 자연스럽게 다가왔죠.”

바닷가 몽돌해변의 조약돌은 길게는 수 킬로에 걸쳐 이어져 있다. 파도에 쓸리고 쓸려 해안에 마지막 터를 잡은 돌들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모진 풍파를 비껴갈 수도 없지만 처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깎이고 또 깎인 돌들이다. 작가의 작품에서 조약돌은 몽돌해변에 무리지어 있는 모습 그대로 표현된다. 그에게 “조약돌은 곧 사람”이다. 작가는 삶이라는 서로에게 기대며 거친 파도를 항해하는 인간의 삶을 조약돌 무더기에 은유했다. “서로 의지하며 인생 역정을 헤쳐가는 인간과 조약돌의 여정이 닮아 보였어요.”

남 작가의 작품은 대작들이 유독 많다. 적게는 100호부터 크게는 1200호까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지난해 대구문화예술회관 ‘2019 올해의 중견작가전초대전’에 내놓은 작품은 자그마치 1200호. 작품 제작에 걸린 시간만 어림잡아 8개월에 이른다. 하루 온종일 그려도 조약돌 하나 완성하기 힘들 때도 있을 만큼 조약돌 하나 하나에 심혈을 기울였다. “작업에 대한 저의 무거운 책임감이 조약돌 하나 하나에 스며있어요.”

돌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기운과 대형작품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시너지 효과로 다가온다. 화폭에서 생명의 기운이 넘실대는 것.  30여년간 작품 제목이 ‘석심(石心)-생명(生命)’인 이유는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작가는 조약돌에서 계속해서 진화하는 생명체의 근원을 발견한다. 그가 “모난 돌이 풍화작용을 겪으면서 깎이고 깎여서 둥근 모습을 갖추었다. 앞으로도 생명체처럼 계속해서 둥글게 깎여갈 것”이라고 했다.

남 작가라고 새로운 소재나 화풍에 대한 열망이 왜 없었을까? 하지만 작가는 “지루하다거나 뻔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세상의 모든 조약돌을 다 모아놓아도 같은 모습을 한 조약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의 모습처럼 말이죠. 그릴 때마다 모양이나 표면이 다 제각각인데 지루할 틈이 있을까요?(웃음)”

그의 작품을 한국화나 현대미술 등의 장르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의미 없음’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그린 그림들인 까닭이다. 그렇더라도 한국화로부터 출발한 태생적인 뿌리는 작품 속에 DNA처럼 남아 여전히 빛을 발한다. 빛을 다루는 방식이나 원근법 등에서 서양화와 동양화의 방식이 뒤섞이고, 회오리치는 감정을 순화해 놓은 고요한 화폭에는 한국화의 서정이 짙게 드러난다.

불과 1년 전까지만 사진을 보고 작품을 구상했다. 시간만 나면 바다나 계곡의 조약돌을 찍었다. 햇살 좋은 날은 좋은 대로,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대로 좋았다. 그렇게 사진에 담긴 조약돌 무리들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새로운 구도로 화폭에 자리를 잡았다. 조약돌 표면의 섬세한 점 하나까지도 살아있는 극사실로 조약돌들이 새 생명을 얻었다.

지난해부터 작업방식에서 큰 변화가 감지된다. 사진을 기반으로 작업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조약돌을 수집해 온 후에 작업실에서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직접 구도를 잡아 작업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른바 정물화 기법의 차용이다. “산이나 바다를 옮길 수는 없지만 조약돌은 옮길 수 있다”는 불현 듯 스친 생각이 실행에 옮겨진 결과다.

조약돌을 수집하고 스스로 구도와 빛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작업이 보다 자유로워졌다. 조약돌을 탑처럼 쌓기도 하고, 돌과 돌 사이의 여백을 조절하는 등 자유자재로의 연출이 가능해졌다. “저의 의도를 가지고 갈 수 있게 되어 작업이 훨씬 자유로워졌어요.”

화업 40년, 조약돌 작업 30년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작가는 “지금부터가 진짜 작업을 보여줄 때”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과정은 준비과정이었다”는 것. 그러면서 “인생은 예순부터”라고 했다. “전업 작가로서 겪었던 고단했던 시간들, 작품을 하는 과정에서의 고뇌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상처들을 오랜 시간 곰삭여 왔습니다. 그 아픔들이 앞으로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승화되어 나올 것이라 믿습니다.” 전시는 경북 안동 예(藝)끼 마을 ‘갤러리 藝’(경북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신성2길 2)에서 8일부터 27일까지. 010-2991-7343

남학호는 1979년 경북도 미술대전에 입상해 작가로 등단했다. 13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 및 심사위원을 비롯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구시 미술대전, 대한민국 한국화대전 등에서 초대작가로 활동 중이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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