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숭고한 노동의 효과 조명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숭고한 노동의 효과 조명
  • 황인옥
  • 승인 2020.05.0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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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까지 갤러리 오모크 김결수展
나무도마·배·가마솥·방아기계 등
이윤 창출 도구로 쓰다 버린 오브제
작가의 예술적 행위 더해 가치 창출
김결수 작
김결수 作

작가 김결수는 노동의 도구로 사용하다 효용성을 상실한 후 버려진 잔해를 매개로 설치작업을 구현한다. 수집한 잔해들은 작가의 손길을 거쳐 ‘노동(labor)-효과(성) (effectiveness)’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이때 그가 집중하는 주제는 노동 중에서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애잔하면서도 숭고한 노동과 그 효과에 대한 것으로 집중된다.

김 작가가 ‘노동-효과’에 주목한 때는 2006년. 당시 그가 경험했던 하나의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는 이 시기에 미술학원을 운영했고, 학원이 파하면 붉은색 비닐이 쳐진 포장마차에서 지친 하루의 피로를 씻고는 했다. 포장마차를 방문하는 횟수가 늘면서 포장마차 주인장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되었고, 어느 날 그녀가 사용하던 도마에도 눈길이 머물게 됐다. 얼마나 오래 사용 했는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표면이 움푹 패인 도마였다. 앞면도 모자라 도마의 뒷면까지 패인 도마에서 삶의 무게와 노동의 존엄을 발견하고는 특별한 감성에 사로잡혔다.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세드엔드로 종결되었다. 어느 날 음주 운전자에 의해 포장마차는 풍비박산이 낳고, 그녀가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작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삶이 노동일 수밖에 없었던 포장마차 주인장의 삶과 도마에 서려있는 그녀의 노동 효과에 대한 생각에 빠졌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사용하다 버린 나무도마를 찾아다녔고, 수집한 나무도마는 ‘노동- 효과’라는 제목의 설치작업으로 재탄생 했다. 작가의 작품은 “가족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누군가의 노동에 대한 위무이자 경외”이며 “제의적인 진혼”이었다.

나무도마로 시작한 오브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노동의 도구들로 확대되었다. 어부와 함께 평생 바다를 누볐을 버려진 배, 어느 가정의 따스한 밥을 선사했을 깨어진 가마솥, 수십년간 방아를 찧었을 방앗간의 기계 등이 소재로 등장했다. 하지만 주제는 한결같이 ‘노동-효과’에 맞춰졌다. “제게 버려진 노동의 잔해들은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한 노동의 결정체로 다가왔어요.”

작업은 두 가지의 과정을 거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한 이윤 창출의 도구로 사용하다 버려진 오브제를 수집해 ‘노동의 기억’을 환원해내고, 작가의 예술적 노동을 더해 ‘노동의 효과’를 강화하는 방식 등이다. 그가 “생활 속에서 발견된 낡은 오브제는 노동효과에 대한 흔적 찾기인 동시에 긴 시간 반복되었을 노동 가치에 대한 질문”이라며 작품 속에 닮아내고자 한 노동의 숭고함을 언급했다. “노동의 효과가 화려한 도시의 외관이라면, 그 가치에 대한 질문은 외관에 가려진 노동의 그림자가 아닐까 싶어요.”

작업에는 과거와 현재라는 두 시점이 공존한다. 과거 누군가의 노동이 가해졌던 도구에 작가의 노동이 더해지며 과거와 현재가 중첩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효과’라는 주제는 강화된다. “과거 누군가의 삶 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에 현재 김결수의 삶이 예술적인 행위를 통해 더해지면서 인간 삶의 이야기에 깊이를 더해졌어요.”

세상에는 수많은 노동이 존재한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노동, 국가의 발전을 위한 노동, 타인의 생명과 관련된 노동 등 다양하다. 그 다양한 노동들 중에서 작가는 가족과 관계된 노동에 존경을 표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한 노동의 가치야말로 그 어떤 이타적인 노동보다 숭고하다는 인식에 기반 한 평가였다.

설치 작업과 함께 평면 작업도 병행한다. 평면에는 가족의 보금자리인 집들이 운집한 형태로 표현된다. 가족을 위한 노동이 ‘집’이라는 보다 직접적인 대상에 표현된다. 그는 “과거에는 집에서 태어나고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집은 우주와 같은 공간”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집에서 장례까지 치룰 만큼 집은 단순히 잠만 자는 장소 이상의 의미가 있었어요. 평생의 삶이 꾸려지는 공간이자 노동이 집약된 공간이었죠.”

최근 개막한 갤러리 오모크(경북 칠곡군 가산면 호국로 1366) 개인전에는 낯선 방식의 작업을 설치했다. 누군가의 노동의 흔적이 배어있는 오브제 대신 순수하게 작가의 노동으로만 제작한 작업이다. 흙으로 제작한 직사각형 대형 덩어리다. 수집한 오브제는 배제되었지만 이 작품에도 여전히 과거와 현재는 공존한다. 대신 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작품을 제작한 작가의 노동이 과거가 되고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관람자의 움직임이나 바람 등의 외부환경이 현재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세한 환경의 변화에 의해 흙무더기가 조금씩 허물어지게 되고, 그 상황이 대형 모니터로 실시간으로 기록됩니다. 삼차원의 입체를 이차원의 모니터 기록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순간에서 영원까지의 삶의 순환을 보게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자연의 물성을 가지고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보여주면서 노동의 효과성도 함께 드리내려 했습니다.”

과거를 품고 있는 의미없이 버려진 사물을 새로운 하나의 주체로 격상하며 거친 삶을 위무를 주제로 하는 작가의 갤러리 오모크 전시는 27일까지. 054-971-885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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