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
부모와 자식
  • 승인 2020.05.0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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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꿈을 꾸었다. 고향 집이다. 엄마가 있었고 아버지가 있었고 집에 온 마을 손님이 있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홍희가 중학생 때의 나이인, 40대였다. 젊었고 웃고 있었다. 엄마는 마을 손님에게 물이라도 대접하려고 부엌으로 갔다. 아버지는 늘 쓰던 아랫방으로 들어갔다. 홍희도 아버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홍희는 너무 생생한 아버지 앞에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기 위해 아버지 손을 잡아보았다. 꿈이라면 느낌이 없을 것이고 생시라면 느낌이 있을 것이다. 손을 잡자 입체감을 느꼈다. 그러나 분명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생시일 리가 없다. 이 꿈이 빨리 깰 까봐 홍희는 아버지를 안았다. 얇은 와이셔츠를 입은 아버지의 품은 야위었으나 따뜻했다. 계속 껴 안고 싶었으나 좀 있으면 아버지의 형체가 스르르 사라질까 두려워 꿈을 깼다.

왜 자꾸 꿈에 부모님이 나타나는 걸까? 홍희가 중학생이던 그 때의 모습으로 말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느낌으로 나타난다. 뭔가 해소되지 않은 감정 또는 정신적인 문제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홍희는 아버지를 엄마보다 더 좋아했다. 아버지의 부드럽고 따스한 목소리가 홍희에게 행복감을 주었다. 엄마를 대신하는 할머니가 있어서 엄마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의 존재가 눈에 들어왔고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엄마는 홍희를 밀어냈다. 아버지는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고 점점 불완전한 아버지 또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아버지도 엄마도 존경하고 사랑할 수 없었다. 그것이 홍희의 마음을 과거에 얽매이게 하고 자주 생각나고 꿈에까지 보이게 하는 것인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최초의 인간관계다. 부모로 인해 생겨나고 태어나는 끊기 힘든 관계다. 어떤 이유로 인연을 끊고 산다고 해도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대체로 좋다. 부모는 자식에게 내리사랑을 준다. 아직 어리고 부모의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이들도 부모에게 의지한다. 자기들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많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청소년이 되면서 부모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세고 자아도 생기면서 부모에게서 자립하고자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 그런 의지가 생기는 것은 좋다.

부모로서 모범적인 모델이 되어 주었으면 부모를 어른으로서 존경하고 모델링하려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부모와 자식은 ‘원수’ 같은 사이가 된다. 부모는 여전히 지금까지처럼 자식을 대하고 자식이 부모를 따라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식은 ‘머리가 굵어서’ 부모의 잘잘못을 가리고 ‘반항’한다. 부모는 기가 찬다. 갑자기 변한 자식의 태도에 당황한다. 사실 자식은 서서히 조금씩 자기의 변화를 부모에게 알려주었다. 자신의 변화를 알아주길 바라면서 부모가 어릴 때와 다르게 대해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 변화를 알아채고 부모가 변한다면 부모와 자식은 예전처럼 누구보다도 친하고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해서 부모와 자식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부모는 자식이 부모말을 듣지 않고 무시해서, 자식은 부모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부모가 원하는 것을 강요해서 화를 낸다. 부모는 황당하고 슬프다.

서로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어긋나기 시작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대등한 관계’에서 대화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자녀도 부모에게 존중받고 싶고, 부모도 자녀에게서 존경받고 싶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나면 한 인간으로 느끼는 감정은 비슷할 것이다. 남에게서 존중받고 싶고, 배려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말이다. 부모와 자식은 가장 오래되고 가까운 사이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타자’이다. 나의 일부였으나 분리된 ‘타자’라는 것을 인정할 때 서로의 관계가 원만해지지 않을까.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어버이날 작은 공연을 해주었던 것이 생각난다. 용돈을 모아 결혼기념일날 은반지를 선물해주었던 기억도 난다. 아이들은 그 때의 ‘어린이’는 아니다. 나 먼저 아이의 성장을 인정하고 분리되어야겠다. 어릴 때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애썼던 아이들의 그 마음을 간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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