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한달 전 타지역 ‘코로나 비상 대응’ 모르고 있었다
대구는 한달 전 타지역 ‘코로나 비상 대응’ 모르고 있었다
  • 김종현
  • 승인 2020.05.0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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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대구에 주는 교훈-1)역사를 잊은 대구
1946년 콜레라 전국 첫 발생
적십자 대체할 공공병원 없어
시민보건보다 의료관광 치중
약품 개발에 “다할 수 없다”
바이러스 분양 보름 늦게 신청
한산한대구도심
1946년 콜레라, 1998년 수성구 초등학교 이질 등 전염병을 겪었던 대구는 이번 코로나에서 도시봉쇄에 가까운 시련을 또다시 겪었다. 코로나가 한창일때 대구 약령시는 인적이 드물고 문을 닫은 가게들로 적막감이 감돌았다. 전영호 기자 riki17@idaegu.co.kr

6일부터 정부의 코로나 19 대응이 생활방역으로 전환됐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던 대구도 확진환자가 나오지 않는 날이 늘어나면서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대구시민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린 코로나 사태가 가까스로 반환점을 돈 것으로 보이는 지금 코로나가 대구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3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1946년 미군정하 5월 26일부터 청도, 경산을 거쳐 대구 지역에 콜레라가 발생했다. 광복을 맞아 귀국한 동포를 따라온 콜레라균이 그해 5월 경북 청도군에서 첫 환자를 낸 것이다. 대구에서만 환자 2천 500명이 생겨 1천 700명 넘게 숨졌다. 전국 최고 사망률이었다. 화장터가 부족하자 공동묘지에 장작을 쌓고 그대로 태우는 참상도 벌어졌다.

전국 콜레라 환자의 절반이 대구였다. 미군정은 계엄령을 내리고 대구를 봉쇄했다. 당시 쌀값은 6배 올라 시민들은 삼일에 한끼를 먹었다고 한다. 이때 생긴말이 ‘삼순구식’이다. 삼순구식은 30일만에 겨우 9번 밥을 먹는다는 말이다. 그때 콜레라는 10월에 발생한 민란 ‘대구폭동’의 도화선이 됐다

10년전인 2010년 대구 적십자병원이 없어진 뒤 대구에는 공공의료기관이 부족하게 됐다. 당시 150여 병상이 있던 대구 적십자병원은 수익을 내지 못하는 공공병원 폐쇄 정책에 의해 문을 닫았다. 적십자병원은 10년 동안 비어있다가 지난 1월 모 건설회사에 매각됐다.

이번 코로나사태를 겪으면서 가장 필요했던 것이 병실이다. 대구는 적십자 병원이 문을 닫은 뒤 시립병원을 증설하고 음압병상을 확보하는 등 공공의료시설 확충에 나섰어야 하지만 이를 소흘히 한 점이 아쉽다. 대구시는 이 기간동안 의료관광특구 설치 등 의료관광에 치중했다. 시민보건보다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 같은 의료관관산업에 더 공을 들였다.

코로나가 막 시작하던 1월 27일 질병관리본부는 서울역에서 전국 의료기기관련 벤처기업들을 소집했다. 대전에 있는 솔젠트와 씨젠 등 진단키트 회사들이 질본과 협업하기위해 모였다. 취재결과 이 회의에 대구기업은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청주시 오송읍에 소재한 질병관리본부는 서울역 비상회의를 거쳐 벤처기업이 1주일만에 시약을 개발하도록 만들었고 씨젠 등 4개회사가 승인을 받았다.

대구시는 “약품개발은 민간회사가 하는 일이라 대구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하고 메디시티 협의회 관계자는 “알아보니 대구에는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중합효소연쇄반응; 환자의 침이나 가래 등 가검물에서 리보핵산(RNA)을 채취해 진짜 환자의 그것과 비교해 일정비율 이상 일치하면 양성으로 판정하는 검사방법) 진단키트를 만드는 회사가 없다. 시약개발까지는 손이 안 미쳤을 것이고 대구가 다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질본은 2월 17일 보도자료를 내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분양하고 있다고 밝혔고 2월 말까지 20여개 기관이 바이러스를 받아 갔는데 대구는 경북대병원이 3월 초에 분양을 받았다. 지역 병원 관계자는 분양 공문이 잠시 보였다가 사라져 제때 신청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질본 관계자는 지난해 4월부터 홈페이지에 분양사이트를 만들어 사스·코로나 바이러스를 분양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바이러스를 분양하는 목적은 백신치료제 연구개발, 바이러스 확인진단 등이다.

지역민들은 이번 사태에서 대구의 심각한 정보 비대칭 상태를 다시한번 보았다. 대구시도 의료 관계자도 코로나가 대구를 덮칠때 까지 서울역과 대전 등 타지역에서 열린 코로나19 비상대응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은 뼈아프다.

김종현기자 oplm@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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