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의 조언
봄바람의 조언
  • 승인 2020.05.05 20: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지나해에서 시작한 훈풍이
지리산을 넘어 경주 남산으로 와서
아지랑이 아득히 피어오르게 한다
만물은 새 단장하곤 그 앞에서 아양을 떠나
나는 모진 가시로 침울한 마음을 찌른다

남들은 꽃다운 청춘이라고들 하는데
언제나 버거운 뒤틀림이었고
샛노란 현기증으로 가득한 것이었다

머지않아
거룩한 빛의 존재 앞에 설 텐데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고 싶으나
얽힌 인연의 줄이 칭칭 발목을 감는다

업장의 소멸은 형이상(形而上),
형이하(形而下)로 무난히 걸어가기를 소망할 뿐
바다 넘고 산 건너오는 사이
연두색 지혜를 가득 머금은 봄바람
가시를 슬며시 치운 뒤 속삭인다
청춘을 용서하고
비루한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것

◇신평= 1956년 대구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법학박사. 판사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거쳐 현재 공익로펌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한국헌법학회 회장, 한국교육법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철우언론법상을 수상(2013)했고, 저서로는 ‘산방에서(책 만드는 집 12년刊)’, ‘일본 땅 일본 바람’,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등이 있다.

<해설> 나무들이 눈 뜨는 계절, 꽃과 잎은 봄의 눈이다. 버드나무는 수채화 붓자국처럼 바람을 흔든다.물방울은 힘이 아니라 꾸준함으로 바위를 뚫는다. 꽃이 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존재의 모순을 망각하게 하는 관성 법칙으로 잠시 무언가와 하나가 된 느낌이거나,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마지막 키워드로 채워진 미혹이거나,어쩌면 가장 손쉽게 도달하는 피안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가슴 속 미망의 불을 끄기 위해 누가 공중 빈 밭에서 서글픈 추억을 일군단 말인가. 최고 기쁨과 최악 슬픔은 서로 통한다. 이것은 갈구가 내뱉는 두려움을 착각한 것.결국 외로움과 고통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이 둘 다 생의 순환적 고리에서 보면 모두 다 하찮고 측은하기까지 한 일들이다. 거짓은 스스로가 치욕을 느끼는 일이다. 어쩌면 죽음이란 삶의 의미처럼 지극히 관념적이다. 마치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들의 과장된 공포인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물처럼 그 형체를 달리할 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내 나무는 속이 얼마나 달구어졌기에 저토록 환하게 불을 밝히는 것일까.마른 몸에서 밀어 올리는 햇꿈들이 꽃으로 오는 건,슬픈 내력을 헤아리던 우리가 다시 눈을 뜨는 일이다. 동토 앙상한 빛깔이 잎새로 돋으면 나무들은 새로운 언어로 꿈을 꾼다. 아름다운 것들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연둣빛 파문을 몰고 오는 햇살의 입맞춤으로 영혼과 영혼이 닿는 봄의 향연이 펼쳐진다. 동경으로 부푼 나무들의 고요한 함성으로 마침내 아무런 의미도 필요하지 않은 세계가 열릴 것이다.봄은 그대로 왔다가 그대로 간다. -성군경(시인)-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