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는 자녀의 일상을 선물하는 것
효도는 자녀의 일상을 선물하는 것
  • 승인 2020.05.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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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 심리연구소 소장


이팝나무에 하얀 쌀밥 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팝나무의 하얀 꽃은 하얀 쌀밥도 닮았지만 부모님의 하얀 머리색과도 닮았다. 5월 8일 어버이날이 돌아왔다. 오늘은 효(孝)에 대해 생각을 나눠보려 한다.

우리는 흔히 부모님께 효도를 한다고 하면 거창한 걸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대학원에서 노인심리를 전공하고, 92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내가 생각하는‘효도’는 거창하고 대단한 일이 아니다. 본인은 효도를 일상의 소소한 일상을 부모에게 선물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명절에 한 번씩 찾아뵙고 용돈을 담은 두꺼운 돈 봉투를 부모에게 드리고, 멋진 옷을 사서 입혀드리고,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것만이 꼭 효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저 평범한, 특별하지도 않은 자녀들의 일상을 함께 나누는 것도 효도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효도를 나름 나의 방식으로 정의 내려 보면 효도는 자녀의 얼굴을 자주 보여주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자녀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구경시켜 드리고 부모들에게 잔소리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효도라고 말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자녀의 일상을 선물 받는다는 것은 부모가 우리 자녀들에게 진정으로 바라고 계시는, 차마 자식들에게 말할 수없는 부모의 속에 묻어둔 작은 욕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은 결혼하기 전부터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난 뒤 22년 동안 내가 나고 자란 고향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다. 모시고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얹혀사는 것도 아닌 그냥 같이 살고 있다. 같이 산다는 것은, 같이 아침을 맞이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하루를 마감하며 같은 울타리 안에서 잠을 청하는 것을 말한다. 누가 누구 때문에 득을 보고, 누가 누구 때문에 손해 본다 라고 말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때로는 서로가 서로를 불편하게 생각할 때도 있고, 때로는 서로가 서로를 든든하게 여기며 그렇게 같이 살아가고 있다.

같이 살던 어머니는 2002년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그리고 7년이란 긴 시간 동안 그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셨다. 그러다가 2008년 찬바람 불던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던 3월에 울 엄마는 당신이 오셨던 어머니의 원래 고향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자식을 먼저 떠난 부모는 자식을 산에 묻지 않고 부모의 가슴에 묻는 다고 했던가. 나는 어머니를 나의 명치끝에 묻었나 보다. 어머니란 글자만 떠올려도 명치 부분이 아려오는 걸 보니 말이다. 마치 묵직한 돌덩어리 하나 올려놓은 듯이 그리운 마음이 온 마음 그득하다. 어머니가 유난히 그리운 이유는 내가 어머니의 성격과 외모를 많이 닮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릴 적 우리 마을에는 배고픈 거지들이 동네에 들어와 동냥을 하러 많이 다녔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어려운 살림에도 집에 들어온 사람 그냥 보내시는 법이 없었다. 거지를 평상에 앉게 하고 밥을 작은 상에 차려오셨다. 머슴밥을 그릇에 수북하게 담아 찾아온 거지에게 식사를 대접하셨다. 그리고 밥을 먹는 동안 방안에 들어가서 아버지, 형제들이 입지 않는 옷가지를 조금 챙겨와 손에 들려주던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런 영향인지 나도 사회복지와 심리학을 전공하며 세상에 보탬이 되고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92세 되신 아버지의 잔소리는 여전하시다. 부모님이 보시기에는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철부지 어린 아이다. 하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사회에서도 나의 역할을 잘해나가고 있는 사람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신문에 칼럼도 쓰고, 책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고, 1년에 평균 6만㎞를 운전해가며 강의 다니는 나름 바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 눈에 나는 아직도 천둥벌거숭이 어린아이와 같은가 보다.

오늘도 나는 아버지께 ‘일상(日常)’을 선물로 드린다. 태어나 자란 고향집에서 살며 같은 일을 하는 아내와, 군대를 전역한 하고 자기 꿈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22살의 아들과, 공부에는 관심 없지만 자기 사업을 위해 얼마 전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은 고3 딸, 우리 넷이 함께 하는 일상을 아버지께 매일 선물해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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