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왜 신뢰경영인가
[박명호 경영칼럼] 왜 신뢰경영인가
  • 승인 2020.05.1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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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In God We Trust(우리가 믿는 하나님 안에서)” 미국 돈 달러화에 있는 글귀다. 최소 화폐단위인 1센트 동전에서 최고액권인 100달러 지폐까지 공통으로 새겨져 있다. 이 글귀는 1864년 처음으로 동전에 등장했고, 1956년 미 연방의회가 마련한 법안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미국의 공식적인 국가표어로 지정되었다. 신뢰(trust)가 미국 사회의 근본 가치임을 공식화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국가가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리라는 강력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자. 특공대가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에 고립되어 있는 단 한명의 병사를 구출해 내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 믿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실례로 미국은 70년 전 6.25전쟁에서 전사한 용사들의 유해 발굴 작업을 지금도 계속해 이러한 믿음을 지켜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고신뢰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스탠퍼드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명저 『트러스트(TRUST)』에서 선진국의 기준을 한 나라의 경제규모(GDP)가 아니라, 기저에 있는 문화적 요소 즉 사회적 자본으로 보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본은 바로 신뢰라고 주장했다.

신뢰는 기업 경영에서도 으뜸가는 덕목이다. 기업 구성원들 상호간의 믿음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기업이 경쟁력을 발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훌륭한 기업의 구성원들 간에는 강한 결속력을 지탱해주는 신뢰가 있다. 이처럼 신뢰가 있을 때 기업은 팀워크를 통한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종업원들은 경영진과 상사, 동료, 부하를 신뢰하며, 적극적으로 회사의 방침을 믿고 따르기에, 최선을 다해 직무를 수행하여 최상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한다. 이것이 신뢰경영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신뢰경영의 사례는 아마도 인도의 타타그룹일 것이다. 150년 전 설립 당시부터 이 회사는 신뢰를 근간으로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 회사의 목적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고객, 직원, 주주, 공동체 안에서의 신뢰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타타그룹은 타타 일가의 소유가 아니다. 모회사 타타선즈가 지닌 지분 가운데 3분의 2는 공익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작은 섬유기업으로 출발한 이 회사가 인도 국민의 존경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신뢰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결과다.

또 다른 신뢰경영의 표본은 세계적인 IT회사 휴렛팩커드(HP)다. 적절한 환경과 지원이 주어진다면 모든 개인은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직원들을 신뢰하고 종업원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기업 문화가 이 회사를 강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직원들은 심리적 안전감을 느끼며,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잠재력을 발휘한다. 창업자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직원을 신뢰하는 문화, ‘HP Way’를 구축해 그들의 기(氣)를 살려 놓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훌륭한 기업들의 뚜렷한 특징은 회사 전체에 퍼져 있는 신뢰수준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제임스 오트리는 『무위경영』에서 “경영은 사랑을 다룬다”고 쓰고, “경영은 신뢰며, 직원들은 그 신뢰 아래 놓여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경영자가 받아야 할 직원의 신뢰”라고 말했다. 경영자가 신뢰를 얻으려면 먼저 신뢰를 실천해야한다. 조엘 피터슨과 데이비드 캐플런은 『신뢰의 힘』에서 리더가 신뢰를 쌓기 위한 10가지 법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리더의 정직성, 상호 존중, 자율성, 명확성, 공동의 꿈, 투명성, 갈등의 포용, 겸손, 윈윈 협상, 진실성, 신중함 등이다.

신뢰는 그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조직의 생존과 성장을 결정하는 필수요소다. 신뢰가 구성원들을 결속해서 목표를 향해 전진하게 하며, 혁신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최고의 촉매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신뢰는 누군가가 나의 안녕을 책임지고 있다고 믿을 때 나타나는 생물학적 반응이다. 직원들을 활용해야할 자원이 아니라 보호해야할 사람으로 대우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신뢰감이 높다. 그 회사의 직원들은 의무감이 아니라 자부심으로 일한다. 또, 그들은 고객과 높은 신뢰를 쌓아 헌신적인 고객을 낳는 선순환을 만든다.

칠성시장 근처 신천대로를 지나다보면 신천 건너편 한 건물의 외벽에 걸린 커다란 캐치프레이즈가 눈에 띈다. 언제 보아도 정겨운 “같이의 가치”란 구호다. NH농협이 발음이 비슷한 ‘같이’와 ‘가치’를 조합해 ‘함께함’의 소중함을 강조한 이 카피는 매우 감동적이다. 그런데 ‘같이’가 ‘가치’ 있으려면 반드시 신뢰가 있어야한다. 과연, ‘우리 사회는 안전하고 서로 이어져 있다’라는 믿음을 ‘같이’ 공유하고 있을까?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는 “건강한 나라는 ‘기억을 함께하는 공동체’여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경영은 물론이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신뢰가 실현되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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