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산이
초록 물 천지다
바다의 초록물이 밤새 산으로 올라오더니
두레박질에 고단하다 산은 누웠다
굽은 등을 따라
물 긷느라 지친 등허리
꼭 꼭 밟으며 오른다
신경통이 안개처럼 내려앉는 날
아버지도 그랬다
엎드려 있으마
꼭꼭 밟아 보아라
색연필 낙서가 벽지를 더욱 낡아 보이게 하는
그 벽을 짚고
아버지 잔등에 올라서서
잠시 균형이 흔들리다가 몇 발자국 떼면
시원하다고
아프겠는데 자꾸 시원하다고
노동에 눌린 허리를 펴는 것이었는데
끌을 두드리는 망치질 같은
딱따구리 소리
아버지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산은
또 밤새 두레박질을 할 요량
넘칠거리는 초록 물때 맞추려
물시계를 만드나
딱따구리, 나무에 눈금을 새기고
◇유영희= 통영 출생. 월간 <수필과 비평> 신인상 등단. 한국문협, 통영문협, 수필과비평작가회의회원, (현)수향수필문학회 회장. 수필집 <옹기의 휴식>
<해설> 봄이 점차 등선 위로 올라간다는 시사적 묘사가 한편의 장엄한 등고선에 꽃처럼 피어난다는 화자의 봄 예찬이 싱그럽다.
아버지 등허리는 높낮이 다른 등고선이었다. 온갖 세사풍파에 시달려온 잔등은 딱따구리 망치질에 구멍 숭숭한 아픈 나무처럼 되어간다는 화자의 자괴감이 독자의 심금을 울릴 만 하다.
다음 해 다시 초록 물질하려 아픈 등허리 봄볕에 말리며 밤새 두레박질하는 모습이 시골 어스름한 정적의 풍만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봄을 아버지로 의인화한 시인의 역량이 돋보이게 한 아름다운 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참 고뇌스러운 작업이다. 오직 절차탁마의 길만이 환희의 꽃길을 걸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앞으로 무궁한 향필을 기대해 본다. -제왕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