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날개를 말리는 시간
젖은 날개를 말리는 시간
  • 승인 2020.05.1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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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 선생은 평소에 빙수와 설탕을 많이 먹는 거로 유명했다고 한다. 빙수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여름에 빙수점에서 파는 빙수 같은 것을 보통 오십 그릇은 범 본 사람의 창(窓) 구멍 감추듯 하고 또 십 오 전짜리 냉면에도 십 전짜리 설탕을 한 봉 모두 털어 넣지 않고는 잘 못 드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문제는 건강이든 다른 이유에서든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며 좋아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마냥 그것만 먹으며 살 수 없고 오래도록 한길로만 가는 일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뒤흔드는 동안 미스터트롯과 신청곡을 불러 준 사랑의 콜센터가 우리들 가슴에 마중물을 부어 주었다. 하향곡선이던 입꼬리를 시청하는 내내 상향곡선으로 만들어 줬으니 그런 의미에서 음악과 문학은 참 대단하다 싶다. 이미 좋아하는 것들과 새로 좋아지는 것들 안에서 우리는 어떠한 탈도 없이 즐길 수 있었으니. 같은 쌀로 밥을 짓는 일처럼 밥을 안치는 사람에 따라 밥맛이 달라지는 신선함이 있고 더군다나 전기밥솥에선 밥이 타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글이 쓰이지 않아 애를 태우기는 했어도. 자동차의 사각지대는 차량에 탑승한 운전자가 장애요인으로 인해 인접 차량이나 차로 혹은 장애물을 식별할 수 없는 영역의 각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차량 후방의 측면 영역을 말하는데 자동차 한 대당 사각지대는 자동차 앞, 뒤와 내부의 앞쪽기둥으로 인해 생기는 전 측면 두 곳, 사이드미러가 차지 못하는 두 곳까지 총 여섯 군데로 나눠진다고 한다.

사각지대 사고를 예방하는 첫 번째 준비는 자동차 시트와 사이드미러, 룸미러를 내 몸에 잘 맞게 조절하는 일이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영역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인 사각지대 사고 같은 일들이 일상에서도 이따금 일어나곤 하는데 이것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원래의 내 자리를 잘 잡는 것 지금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을 잘 점검하는 것 예측할 수 없는 사고에 대처하는 방법이 지금 예측할 수 있는 기본을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내 일상을 이루는 평범한 풍경들을 돌아보면서 지금 보이는 것들에 최선을 다해보는 시간, 덧붙여 마음의 사각지대를 돌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펌프가 물을 끌어 올리려면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필요하다. 마중물을 부으면 펌프 아래쪽의 고무관이 막히면서 압력이 높아지고 물은 압력이 높은 아래쪽에서 압력이 낮아지는 위쪽으로 흐르게 된다. 마중물은 기꺼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생명과도 같은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마지막에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펌프 곁에 마침표처럼 두고 떠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보면 세상엔 늘 마중물 같은 존재들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코로나 19를 겪으며 자신을 던져 기꺼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 소중한 것들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 준 사람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삶의 몇몇 모퉁이마다 당시에는 겪기 싫은 일이었지만 그 단련 덕분에 훗날 마주치게 될 위기를 잘 헤쳐 나갈 수도 있겠다 싶었던 마중물 같은 순간들 또한 있었다. 올해 봄,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간이야말로 새로운 질서를 위한 마중물이 아닐까. 단단한 자가 약한 자를 이끌며 잠시 멈춰 서서 손해를 보더라도 함께 보듬고 가라는 사명을 깨닫는 의미의 마중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봄꽃들 위로 나비가 날아드는 장면을 가끔 보게 된다. 나비가 날려면 몸의 온도가 공기의 온도보다 높아야 하고 가벼워야 한다. 나비가 가끔 꽃잎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기도 하고 때론 젖은 날개를 말리기 위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도 한다. 젖은 날개를 말리는 시간, 다시 날기 위해 몸의 온도가 높아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처럼 지금 우린 보다 더 달콤한 내일을 위해 쓰고 지루한 현재를 견디고 있는 것인지도.

안도현 시인의 퇴근길이란 시의 전문을 읊어본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

우리가 삶을 버티는 데엔 그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아! 이것마저 없다면’ 하는 그것 하나만 가져도 의외로 버텨지는 게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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