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들의 소소한 행복
아재들의 소소한 행복
  • 승인 2020.05.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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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경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경제학 박사
EBS 다큐멘터리 <동과 서>는 한국,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권인 동양과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한 유럽문화권인 서양으로 구분한 후 심리적인 실험을 통해 인간행동의 차이를 규명한 것이다. 실험의 내용은 행복해 보이는 표정의 주인공 뒤에 여러 사람들이 서 있는데 첫 번째 그림에서는 배경의 사람들이 행복한 표정을 띠고 있고, 두 번째 그림에서는 배경의 사람들이 불행한 표정을 짓고 있다. 주인공이 행복한가? 라는 질문에 서양인들은 두 그림 속의 주인공은 모두 행복하다고 대답한 반면, 동양인들은 첫 번째 그림 속 주인공은 행복하지만 두 번째 그림 속 주인공은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아마 서양인들은 주변인들의 표정에 상관없이 주인공의 표정에만 주목한 반면, 동양인들은 주인공의 감정 상태를 판단하는데 주변인들의 표정을 참고하기 때문이 아닐까. 즉, 서양인들은 주변 인물들이 행복한 표정, 화난 표정, 슬픈 표정으로 다양하게 바뀌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중심인물의 웃는 표정에 대해서만 집중한다. 동양인들은 그 사람의 처한 환경이나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을 함께 관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행동의 차이는 문화 간의 차이일 수도 있고 개인 간의 차이일 수도 있는데, 상기 실험에서는 지역별, 개인별 특수성을 배제시키고 문화적 원형의 차이를 밝히는데 주목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따라서 인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공동체에 소속돼 살면서 분업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는 도움을 받고 또 도움을 준다. 그러다 보면 내가 속한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를 비교하게 되고 또한 내가 속한 공동체 내에서도 상호 비교하게 되면서 갈등이 일어나고, 이러한 갈등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게 되면서 극단적인 경우에는 공동체를 파괴하기도 한다. 갈등의 주요 원인은 가치관의 차이 또는 경제적 차이일 수도 있다. 소득의 증가가 행복에 미친 영향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소득증가가 처음에는 행복을 증가시키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영향은 미미하게 나타나므로 경제적 차이는 논외로 두겠다.

그래서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소소한 삶의 아름다움, 행복하게 살기 위한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말한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필집『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을 언급했다. 그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을 소확행이라고 했다.

이러한 소확행이 주변의 일상생활에서 찾을 수 있다. 친구들은 서로 ‘아재’라고 부르면서 자주 어울린다. 동시대에 비슷한 공간에서 살면서 정서적 유대감은 있지만 고향, 학교, 전공, 직업, 관심도는 다 다르다. 특별한 주제를 갖고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꼭 만나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조곤조곤하게 이야기 나눈다. 막상 이야기 내용을 살펴보면 열심히 들어주는 것 같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 화를 내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로한 부모님, 자녀 문제, 업무와 관련된 일 등이 있지만 다들 걱정을 공유는 하지만 딱히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자주 보고 싶은 이유가 무엇일까? 아재들에게서 유연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자신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하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긴장과 저항감을 유발시켜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아재들은 다른 사람에게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대해주고 대체로 ‘다른 사람과 화합은 하되 똑 같을 필요는 없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 정신을 실천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최근 서양식 교육에 영향을 받아 공동체 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노인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원자적인 개인보다는 소규모지만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며, 작은 공동체는 형식과 격식을 파괴해도 부담되지 않는다. 이처럼 열린 마음을 갖고 아재들과 하루를 살아도 참 좋았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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