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플랫폼’ 수직감옥에 투영된 계급구조의 민낯
‘더 플랫폼’ 수직감옥에 투영된 계급구조의 민낯
  • 배수경
  • 승인 2020.05.1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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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층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하루에 한 번 접할 수 있는 식탁
한 달마다 바뀌는 수감층 따라
섭취할 수 있는 음식량 달라져
식욕이라는 욕망을 도구 삼아
인간 생존 본능·보상심리 표현
자발적 연대의식 결핍 엿보여
더플랫폼
‘수직 자기관리센터’에서는 하루에 한번 위에서 아래로 거대한 식탁(플랫폼)이 내려온다.

눈을 뜨니 중간에 구멍이 뚫린 회색빛 콘크리트 방이다. 그 방에는 이곳에 온지 일년쯤 되었다는 트리마가시라는 노인이 있다. 아래 위로 얼마나 많은 층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그곳에서는 하루에 한 번 위에서 아래로 커다란 식탁(플랫폼)이 내려온다. 주어진 몇 분 동안 식탁 위에 놓은 음식 혹은 음식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것으로 배를 채워야만 한다. 담배도 끊고 책도 읽고 심지어 6개월을 견디면 학위도 하나 준다는 이야기에 자발적으로 ‘수직 자기관리 센터’에 들어온 고렝(이반 마사구에)이 맞닥뜨린 현실이다. 과연 그는 6개월을 무사히 채우고 나갈 수 있을까?

13일 개봉한 ‘더 플랫폼’은 일명 ‘수직 자기관리센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곳의 규칙은 간단하다. 각 층마다 2명의 정원(별다른 일이 없다면 룸메이트는 바뀌지 않는다), 1일 1회 자율배식 형태의 식사제공 그리고 30일마다 한번씩 자신이 머물게 될 층이 무작위로 바뀐다는 것.

영화는 이 간단한 규칙의 시스템 속에 갇힌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기 위해 ‘음식’이라는 도구를 이용하고 있다. 식욕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욕구다. 그것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숨겨두었던 자신의 본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더 플랫폼’에서 음식이 처음 만들어지는 곳은 ‘0’레벨에 있는 주방이다. 그곳에서는 매일 최고의 재료로 정성들여 만든 최상의 음식들로 테이블을 가득 채운다. 모두가 욕심내지 않고 먹는다면 가장 아래층에 있는 사람까지 충분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다. 그러나 이 음식들은 50층 아래의 사람들은 거의 구경도 할 수 없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한달에 한 번 무작위로 층수가 배정되는 시스템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렝 역시 48층, 171층, 6층을 거치며 각각의 층에서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를 서서히 배워간다.

오늘 꼭대기 층에 있더라도 한달 뒤에는 다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니 그들에게는 ‘지금’ 만이 있을 뿐이다. 그동안 못 먹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 그리고 다시 또 못 먹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할 여유는 없어 보인다. 심지어 음식에 훼손을 가하는 행동들도 서슴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누가 이런 시스템을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얼핏 지옥처럼 보이는 이곳에도 시스템을 개선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자발적 연대의식’은 쉽지 않은 이야기다. 다같이 배부르게 먹기 위해서 욕심내지 않고 2명분의 음식만 먹고 다음 층으로 내려보내라는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만다.

변화는 자발적으로 생길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고렝은 결국 룸메이트인 바하랏트와 함께 플랫폼에 오른다.

영화 ‘더 플랫폼’은 90분이라는 길지 않은 상영시간이 묘하게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끔찍한 이야기다. 그만큼 보기 힘든 장면도 많다.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인 이유이기도 하다.

피 비린내나는 잔인한 장면이 주는 공포와는 별개로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메시지는 더욱 두렵고 무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고 믿고 싶다.

특히 이들이 생각하는 ‘자발적 연대의식’은 코로나 19로 위기에 빠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얼핏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나 ‘기생충’도 떠오르게 한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꼭대기에 있는 자, 바닥에 있는 자, 그리고 추락하는 자.” 영화 속 대사를 빌어 과연 나는 어떤 종류에 해당되는가 하는 질문도 던져봄직하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스페인 영화 ‘더 플랫폼’은 판타스틱 영화제의 칸이라 불리는 제 52회 시체스영화제에서 오피셜판타스틱 최우수관객상을 비롯해 최우수작품상, 최우수특수효과상, 시민 케인상(주목받는 감독) 등 4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우리나라와 홍콩, 대만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이미 3월 20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배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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