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 후에 지인들과 함께 경북대학교 꽃길을 걷다가 빨갛게 혹은 노랗게 꽃을 피우고 있는 장미를 발견했다. 걸음을 멈추고 보니 군데군데 하얀 꽃도 보인다. 어쩌면 저렇게도 고울 수 있을까? 함께 걷는 분들이 ‘꽃이 예뻐 보이면 나이든 증거’라며 놀린다. 그러나 ‘이렇게 예쁜 꽃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고 응대하며, 눈을 꽃 가까이 대 본다. 그리고 코를 들이대어 향기를 맡아 본다. 순간, 정호승의 시(詩)가 기억난다.
‘장미 같이 아름다운 꽃에/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토록 가시 많은 나무에/장미 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
정호승은 그의 시에서 장미의 ‘꽃’이 아닌 ‘가시’에 방점을 찍는다. 방점이 찍힌 ‘가시’는 향기를 분출하는 근원이 된다. ‘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가시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며,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서/가장 멀리 가는 향기가 난다’는 대목에서는 마음조차 아프다.
‘평생토록 내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를 힘껏 뽑아내려고 하다가/슬며시 그만 두었다.’
정호승에 의하면 가시가 없는 장미는 향기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평생토록 자기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를 차마 뽑아내지 못한다. 나는 정호승의 마법에 걸려 꽃이 아닌 가시에서 장미 향기가 난다고 믿는다. 돌아오는 길, 꽃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데 장미 향기가 나는 것 같다. 옆 사람에게 ‘여기에서도 장미 향기가 나는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 그 분도 ‘정말 그런 것 같네요’하며 내 마음을 안 듯이 공감해 준다. 아마 가장 날카로운 가시가 뿜어내는 향기일 것이다.
사무실에 왔더니 내 책상위의 장미꽃이 유달리 눈에 띈다. 5월, 이런저런 날을 기념하여 선물로 받은 꽃다발을 손질하여 시들지 않게 꽃병에 꽂아 둔 것이다. 말끔히 손질한 꽃병의 장미에게는 가시가 없다. 정호승의 마법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나는 ‘가시가 없는 장미에게는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6·25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현대사의 가장 큰 사건은 아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일 것이다. 40년이 지났지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많은 국민들에게 ‘평생토록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였다. 대학교 정문에 군인들이 총을 들고 출입을 통제했고, 신문은 활자가 검게 칠해 진 채로 배달되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가늠할 수 없었다. 광주에 대한 온갖 소문은 무엇이 소문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비록 대학의 정문을 총을 든 군인들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대구의 대학은 차라리 평화스러웠다. 5·18 이전에 학교 내에서 이십 여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던 우리는 5·18 이후에도 쫓겨나지 않았고, 심지어 찾아 온 군인들과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우리를 둘러보던 한 장교는 내 방에 꽂힌 책을 보고 그 책에 대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간에 광주의 대학은 피를 흘리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군인의 총에 우리 국민이 죽어간 이 엄청난 사건이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공부를 한답시고 책을 붙잡고 있었고 예배를 드렸으며 때로는 시국을 걱정한답시고 모여서 정보를 교환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자리를 잡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았다.
그리고 부모가 되고 스승이 되어 매월 오월이면 꽃을 받았다. 오월의 장미는 아름답다. 그러나 오늘은 5월 18일이다. 정호승의 말이 맞았다. 가시 많은 나무라야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가장 날카로운 가시가 가장 멀리 향기를 뿜어낸다. 오월의 장미가 아름다운 것은 가시가 있기 때문이다.
‘장미 같이 아름다운 꽃에/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토록 가시 많은 나무에/장미 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
정호승은 그의 시에서 장미의 ‘꽃’이 아닌 ‘가시’에 방점을 찍는다. 방점이 찍힌 ‘가시’는 향기를 분출하는 근원이 된다. ‘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가시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며,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서/가장 멀리 가는 향기가 난다’는 대목에서는 마음조차 아프다.
‘평생토록 내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를 힘껏 뽑아내려고 하다가/슬며시 그만 두었다.’
정호승에 의하면 가시가 없는 장미는 향기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평생토록 자기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를 차마 뽑아내지 못한다. 나는 정호승의 마법에 걸려 꽃이 아닌 가시에서 장미 향기가 난다고 믿는다. 돌아오는 길, 꽃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데 장미 향기가 나는 것 같다. 옆 사람에게 ‘여기에서도 장미 향기가 나는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 그 분도 ‘정말 그런 것 같네요’하며 내 마음을 안 듯이 공감해 준다. 아마 가장 날카로운 가시가 뿜어내는 향기일 것이다.
사무실에 왔더니 내 책상위의 장미꽃이 유달리 눈에 띈다. 5월, 이런저런 날을 기념하여 선물로 받은 꽃다발을 손질하여 시들지 않게 꽃병에 꽂아 둔 것이다. 말끔히 손질한 꽃병의 장미에게는 가시가 없다. 정호승의 마법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나는 ‘가시가 없는 장미에게는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6·25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현대사의 가장 큰 사건은 아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일 것이다. 40년이 지났지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많은 국민들에게 ‘평생토록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였다. 대학교 정문에 군인들이 총을 들고 출입을 통제했고, 신문은 활자가 검게 칠해 진 채로 배달되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가늠할 수 없었다. 광주에 대한 온갖 소문은 무엇이 소문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비록 대학의 정문을 총을 든 군인들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대구의 대학은 차라리 평화스러웠다. 5·18 이전에 학교 내에서 이십 여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던 우리는 5·18 이후에도 쫓겨나지 않았고, 심지어 찾아 온 군인들과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우리를 둘러보던 한 장교는 내 방에 꽂힌 책을 보고 그 책에 대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간에 광주의 대학은 피를 흘리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군인의 총에 우리 국민이 죽어간 이 엄청난 사건이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공부를 한답시고 책을 붙잡고 있었고 예배를 드렸으며 때로는 시국을 걱정한답시고 모여서 정보를 교환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자리를 잡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았다.
그리고 부모가 되고 스승이 되어 매월 오월이면 꽃을 받았다. 오월의 장미는 아름답다. 그러나 오늘은 5월 18일이다. 정호승의 말이 맞았다. 가시 많은 나무라야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가장 날카로운 가시가 가장 멀리 향기를 뿜어낸다. 오월의 장미가 아름다운 것은 가시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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