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얼굴에 비친 자화상 ‘목탄 드로잉’
타자의 얼굴에 비친 자화상 ‘목탄 드로잉’
  • 황인옥
  • 승인 2020.05.1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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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류승희 참여 ‘암암리에’전
사람 얼굴서 완벽한 조형미 발견
목탄으로 자유자재로 강약 조절
의식·무의식 속 잠재된 감정들
모노톤 표현주의적 화풍에 담아
류승희 작가
류승희 작가가 전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야수가 먹이를 낚아채듯 검정 목탄이 하얀 바탕을 집어 삼켰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별이 쉽지 않은 중성적인 모노톤의 인물 드로잉이 화폭을 잠식했다. 얼굴에 비해 눈과 코 등이 과장되고, 가까이 다가가 “괜찮다”고 토닥이고 싶은 연민도 묻어있다. 인체 위에 보일 듯 말 듯한 또 다른 인물이나 꽃에서는 최고조의 감정상태가 드러난다. 작가 류승희의 표현주의에 가까운 드로잉 작품이다.

거슬러 오르면 대학 때였다. 사람의 얼굴에 막연하게 관심이 갔다. ‘이거’라고 또렷하게 잡히는 개념으로 접근하지는 않았지만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마냥 좋았다. 프랑스 유학 시기에 사람에 대한 관찰에 깊이가 더해졌고, 그때 자신이 유난히 얼굴에 주목하는 이유도 찾았다. 작가가 “사람 얼굴에서 조형적으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발견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5~6년 전만 해도 인물을 회화적으로 그렸다. 하지만 2015년부터 모노톤의 드로잉으로 변화했다. 간혹 색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조연 일뿐 주연은 모노톤이다. 작업은 목탄이 전체의 기운을 잡고, 아크릴 물감이 세밀한 감정을 수습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드로잉이지만 드로잉의 차원을 넘어서는 아우라를 화폭 전체에 담아내는데 포커스를 맞춘다.

처음 목탄을 만났을 때부터 가슴이 떨렸다. 목탄의 물성이 손끝에 닿자 몸의 에너지가 상승하는 기분이었다. 목탄을 잡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면 천생연분인 것이다. 무엇보다 목탄이 품고있는 자유로운 성질에 매료됐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 강약이 동시에 공존하는 목탄의 성질에서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 특히 류 작가의 즉흥적인 작업방식과 목탄이 잘 맞았다. 빠르게 흘러가는 작업 방식에서 목탄이 강약조절의 속도를 제대로 따라갔다. “순간적인 농담 표현을 하기에 목탄만큼 좋은 재료도 없는 것 같아요.”

가수에게 무대 공포증이 있듯 작가에게도 백색 공포가 있다. 류 작가는 유난히 ‘백색 공포’에 시달린다. 설계도를 가지고 작업하기보다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작업 방식이 백색 공포를 낳았을 터. 그런데 감정을 기반으로 할 경우 하나의 감정선만 잡으면 봇물터지듯 수많은 감정들이 이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는 류 작가가 백색 공포의 포로가 되지 않는 이유다. 지금까지 공포에 휩싸여 중심을 놓치지는 일은 없었다. “차분하게 의식과 무의식으로 따라가다 보면 잠재된 감정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됩니다. 처음 느꼈던 공포는 눈 녹듯 사라지죠.”

최근에 작품 제목이 ‘인물에 부쳐’에서 ‘얼굴-너가 만약 무엇이 될 수 있다면(The face-If it could be something)’으로 변화했다. 형상도 인체에서 얼굴로 변했다. 1년 전, 얼굴과 손에 상처를 입고 그림을 잠시 쉬는 과정에서 찾아온 변화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누구라고 단정짓지 않았던 얼굴에서 작가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녀가 “결국 지금까지 내가 그렸던 인물들이 타자의 얼굴에 비친 자화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저의 감정이 묻어있는 제목으로 바꾸었다”고 했다.

호의적인 시선이라면 관심 받는 것에 불편해 할 이유는 없다. 특히 여성은 관심 받는 것에 대한 욕망이 강하다. 류 작가도 그랬다. 대신 자신의 분신인 작품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그들의 감정을 건드리기를 기대한다. 작가가 “고통이나 공포, 정적 등의 내면 속 흘러가는 감정을 목탄 드로잉에 담아낸 내 분신들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면 그것보다 기쁜 일은 없다”며 “단순한 관심을 넘어 작은 떨림 하나라도 얻고 가는 작품이 되기를 희망한다”며 작업 철학을 밝혔다. 김재경,김현희, 노창환, 류승희, 조정숙, 류지헌,정익현,박경옥,정태경,정희윤가 함께하는 ‘암암리에’전은 보나 갤러리에서 21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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