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다
인생은 짧다
  • 승인 2020.05.1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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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청소년기에 접하고 짧은 인생살이만 살기보다는 긴 예술을 하고 싶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만인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자손들은 이름을 기억하겠지. 그래서 후손을 낳고 싶었던 것인지로 모르겠다. 적어도 후손이라도 내 이름을 기억해 주기를 바래서. 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어서, 나를 한 사람이라도 기억해 주기를 바래서.

오십을 갓 넘겼다. 아직 해야할 일들이 많다. 우선 아이들 대학교도 보내야 하고, 아파트 장만할 때 낸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새로 산 차 운전 연습도 해서 엄마에게 자주 가야하고, 직장에서 매달 실적을 올리고 등 자신에게 주어진 해야 할 일들로 하루하루 가득 찬다. 언제쯤 해야 할 일들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정년 60세가 지나면 여러 면에서 여유로울까? 물론 이 일들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맞다. 가정을 이루고 싶었고, 자식을 낳아 키우고 싶었기에 선택했다. 그 선택으로 비롯된 일들이다.

회갑, 진갑, 팔순 순서대로 맞이하고 세상 인연 끝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다수가 살다간다. 근데 자꾸만 그 순서를 밟지 못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생긴다. 인생 참 짧다.

결혼 후 본 그 분은 얼굴에 주름이 깊었고 눈매가 매서웠다. 우연히 본 젊은 시절 사진은 70년대 영화배우 같았다. 갸르스름하고 약간은 우수가 깃든 듯한 얼굴이 호감형 미남이었다. 사람이 나이들수록 멋있게 변하는 사람도 있고 나이가 들수록 좋지 않게 변하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그 분은 젊었을 때가 훨씬 더 멋진 경우에 속한 것 같았다.

젊은 시절 결혼하고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대구로 나갔다. 대구에서 돈벌이가 신통치 않아 방 한 칸짜리 집을 전전했다. 아이들은 공부에 크게 흥미가 없어서인지 학교생활을 원만하게 하지 못했다. 학교에도 집에도 없는 아이를 찾으러 다니기도 하였다. 좀 더 시간이 지나 아이가 철이 들고 나서야 아이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놓지 않았다. 군인으로 군대 있을 때 위가 좋지 않아서 수술을 했다고 한다. 위 절제 수술인 것 같았다. 위가 작아 많은 음식을 먹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마른 체격이었다. 육식을 좋아하는 부모 형제들에 비해 체식을 좋아하고, 양도 적었다. 식탐도 없었다. 술을 밥보다 더 좋아한다는 말을 누군가 했다. 군인 때 했던 위 수술로 국가에서 지원받는 대상자가 되었다. 한 달에 월 얼마가 나왔다. 평생토록 나온다고 했다.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이 되었다.

그 후 고향에 땅을 샀다. 50세가 넘어 다시 농사꾼이 되었다. 몸은 힘들 수 있겠지만 표정에 독기는 사라졌다. 술 대신 밥을 먹고 농사일을 한다고 했다. 얼굴에 살도 올랐다. 시집에 가면 아는 체도 하고, 이런 저런 얘기도 주고 받았다. 아이들에게 농담도 하고, 용돈도 주었다. 그의 변화가 보기 좋았다. 항상 땅을 사서 농사짓기를 소망하던 남편은 형의 농사일을 도와주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고, 홍희도 일을 거들어주고, 점심 밥을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형제끼리 도울 수 있으면 도와 주는 것이 좋았다. 그의 변화가 남편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의 변화는 외로웠다. 다른 형제들은 그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무관심을 가장한 방관으로 그를 외롭게 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곳간이 비어 있어 인심을 쓰기에는 무리인 그의 상황을 배려치 않고, 그의 곳간을 채울 수 있게 도와주지는 않으면서 뒷담화를 했다. 그는 한 번 제대로 살아보고자 몸부림쳤으나 몸이 허락지 않았다. 결국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한 번 제대로 살았다고 생각했을까.

우리네 인생은 짧다. 원하는 대로 맘껏 살아볼 수 있는 생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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