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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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1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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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긴급재난지원금을 득달같이 신청했다. 세대주 카드로 충전을 신청하니 간단한 과정을 거쳐 3인 가족 80만원의 재난 지원금이 충전된다. 대구에서, 경북에서 엄청나게 퍼져 돌아다닌 전염병 탓에 대구와 경북 지역민들은 정말로, 정말로 생고생을 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개인 위생수칙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넘어 스스로 자가 격리에 가까운 예방의 삶에 지난 몇 달 간 올인 했다. 조그마한 가게를 가진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또 그 현실 속에서, 학생은 학생대로, 주부는 주부대로... 모두가 고통을 받아들였다. 아니, 스스로 고통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으며 자신이 그은 한계치만큼 모진 격리 생활을 감내했다. 그리고 이제야, 이제야 조금 숨통이 트였다. 재난지원금을 받을 만하지 않은가?

스스로를 위안하며 나라에서 준 이 돈을 어떻게 쓸까를 궁리한다. 쓸 곳은 많지만, 꼭 써야 할 곳은 많지만 정부의 방침대로 소비가 일어나 경제가 돌아가는 쪽에 쓰이는 게 맞지 않겠나 싶어 앞으로 8월이 오기 전 장을 보고, 생활을 하는데 긴요하게 쓰라고 아내에게 카드를 내민다.

그런데 이 찝찝함은 뭘까. 내가 왜 나라에서 나눠 주는 공돈을 받아야 하지? 왜 국민 모두가 재난지원금을 받는 거지? 내 인생을 통틀어 이보다 어려운 때도 많았다. 이보다 더 발을 동동 굴러가며 단 돈 80만원이 필요할 때도 많았다. 그런데 이 돈이 왜 내게 주어졌지? 나라에 닥쳐왔던 전염병을 피하며, 때로는 겪으며 고생했다고? 고생은 했다. 하지만 이 돈을 받으면 앞으로 내가 내야 할 세금의 크기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도 든다. 그래도 온 국민이 다 지원금을 받는데, 나만 안 받으면 손해일 것 같은 이 마음. 지금 안 받고 기부하면 다음번엔 더 망설여질 것 같은 이 기분. 그렇다. 분명 다음엔 더 받을 것이다. 왜냐면 온 국민이 이번에 한 번 재난지원금을 긴급으로 받았기 때문에 다음에 더 긴급한 상황이 닥친다면 정부가 지원금을 주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조금 더 있으면 모습을 바꾼 각종 지원금들이 복지의 명목으로 속속 지원되겠지. 그렇다고 나라가 거덜 날 만큼 주기야 하겠어?

생각이 꼬인다. 수십조 원을 이렇게 퍼붓고 또 다른 명목으로 역시 수십조 원을 퍼붓는다면 나라 곳간이 버틸 수 있을까. 내가 돈을 받아 좋긴 한데, 이 돈을 또 받는다면 나라살림은 정말 괜찮은 걸까. 나라가 손해를 감수하고 퍼주는 돈이면 그 나라에 속한 나도 손해가 아닌가? 괜찮을까? 우리나라가 뭐 산유국이라서 돈이 철철 넘쳐나는 것도 아니고, 미국이나 더 선진국 처럼 돈을 막 찍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원이 많아서 좀 써도 괜찮을 만치 버틸 힘이 강한 나라도 아닐 텐데... ‘아무리 퍼줘도 경제가 안 망한다’며 나라의 곳간을 다 퍼 국민들에게 안겨주다 결국 너덜너덜해 져 처음으로 결코 돌아가지 못한 아르헨티나의 페론 대통령이 현재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자꾸만 견주어지는 지금의 이 기분은 뭘까... 페론이즘의 대표적 특징이 성장과 소득 재분배를 강조하되 그 부작용인 인플레이션이나 재정 적자, 대외 압박은 외면하는 것이라는데, 왜 이리 우리나라의 요즘 현실과 닮았나... 모르겠다.

정치적 힘을 얻기 위해서 ‘퍼주기’를 실행한 이 나라의 한복판에 내가 있다니...

이해찬도 황교안도 심지어 대통령도... 모두가 퍼주기에 올인 했다. 그래서 내가 엊그제 재난지원금을 받은 거고. 그래서 내 아내는 지금 조금 기분이 좋다. 그 덕분에 나도 조금은 흥얼거린다. 이게 소시민의 반응이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정권을 잡기 위해 고무신이든 현금이든 뭐라도 뿌려야 했던 그 옛날의 선거 전략이 지금은 이런 형태로 교묘하게 돌아왔고, 순진한 우리는 또 그 고무신과 막걸리, 봉투에 든 돈을 받고선 보답의 지지를 내민다. 내민다. 아... 포퓰리즘... 거기에 엮여 버린것만 같은 이 기분. 온 국민과 함께, 온 유권자의 웃음과 보답과, 나의 씁쓸함까지 이 지원금 앞에서 풀어져 버렸다. 고생은 대구와 경북이 맹렬히 했는데, 열매는 정부와 대통령이 멋지게 따먹는 그 우연에 우연이 겹친 정치 시나리오에 내 발도 함께 담궈지고 말았다.

어떤 시민단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앵벌이 삼아 사욕을 취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지만 국회의원이 된 그 단체 대표를 일부 여당 인사들은 오히려 격려 하는데, 전 법무부장관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법을 비켜났는데 대통령은 그를 이만 놓아주라 하고... 그걸 나무래야 할 이기적인 야당은 제 살아남기에만 바쁜데...

국민들도 보고 듣는 것은 있지만, 이미 지급 중인 재난지원금 수령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 숙고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정부와 여당의 선심이 어느덧 고맙다. 내 자식이 나중에 얼마나 세금을 더 낼지는 모르겠지만 세계 제 일의 방역국가(사실은 대구와 경북인들의 인내라고 해야겠지만)를 내세우는 정부가 거꾸로 고맙다. 위안부를 앞세워 돈벌이를 하다 그걸 지적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친일파라고, 매국노라고 매도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됐든 말았든 우선 내 앞이 중요하다. 정부와 여당이 위선으로 스스로의 얼굴에 금칠을 하든말든 내 손에 지원금이 쥐어졌으니... 지난 선거에서 여당의 압승이 모든 것을 웅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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