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서글픈 노동시장, 임계장과 흙수저
대한민국의 서글픈 노동시장, 임계장과 흙수저
  • 승인 2020.05.1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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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아
전 대구시의원·이학박사
얼마 전 아파트 경비원의 자살 기사를 보았다. 입주민의 육체적 폭행과 반복적인 언어 폭행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경비원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 제대로 된 교육의 부재로 서툰 한글이지만 자신의 억울함과 남겨진 자식과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난 짧은 유서에 해당 아파트 주민은 물론 전 국민 사이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어났고 가해자에 대한 조사 및 엄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언론과 인터넷에 일파만파로 커졌다. 동시에 경비원으로 대표되는 노인노동에 대한 재조명도 이루어지고 있다.

흙수저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인데 제목에 써진 임계장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임'씨 성을 가진 이의 '계장'직급을 뜻하나 하는 생각이 가장 상식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로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노인 노동층을 일컫는 말이다. '고다자'도 마찬가지인데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를 뜻한다. 퇴직 후 여러 노인 일자리를 경험한 저자 조정진씨의 책 '임계장 이야기'는 많은 이의 가슴을 적셨고 우려와 공감, 나아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최저 임금이 올라가는 것과 비례하여 비정규직을 줄이고 사람이 줄어들면 노동시간이 다소 늘어나고 또 노동시간의 규정에 발목이 잡히면 시간 조정 대신 노동강도를 높이는 것이 기업이다. 강철같은 정신은 있어도 강철같은 몸은 없다는 저자의 말은 얼마나 노동 사각지대에서 노인들이 고통받는지를 단편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

퇴직한 고령층이 용역시장을 전전하다가 안락한(?) 일자리라 여기며 시작하게 되는 일이 경비원이다. 그러나 경비원을 고용한 업체와 관리자의 갑질부터 입주민의 갑질까지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좁디 좁은 경비실 안에서 잠시 앉아있는 것과 맞바꾸기엔 너무 가혹하다. 간혹 입주민의 비동의로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가 무산되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것은 역시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여름의 낮은 길고도 뜨겁고 그 더위를 부채질로만 버텨야 하는 것이 60을 훌쩍 넘긴 경비원의 현실이다. 가슴 아프지 않은가? 그들이 젊었을 때 피땀 흘려 만든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고 그 위에서 우리는 시작을 한 세대이다. 울퉁불퉁한 돌바닥과 굽이 친 산길이 아닌 편편한 시멘트 바닥과 부드러운 아스팔트 길에서 우리를 시작하게 한 세대가 지금은 아파트 지하에서 폐기물과 석면가루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것이 그 일을 택한 노인노동자들의 잘못인가?

몸을 쓰는 일이 많은 용역시장에서 나름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는 청년 노동자들의 애환도 있다. 학교에서 일할 때, 개강 후 첫 수업에서 낯익은 얼굴들에게는 안부 인사처럼 방학 동안 뭐했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물론 해외여행도 많고 스펙업도 많다. 그러나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일용직으로 건설공사 현장과 택배 물류 창고에서 방학 내내 일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다는 친구들도 있다. 착한 그들은 부모를 원망하기보다 시대와 사회를 잘못 타고났다고 생각하며 너무 쉽게 부조리한 노동시장에 순응하여 그들의 재능과 싱싱한 활력을 헐값에 그렇게 팔고 있었다. 그런 학생들 앞에 당당한 선생으로 서기 위해 교육자로서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자 늦은 밤까지 연구하고 준비했던 시간이 기억난다.

며칠 전 저녁 뉴스에는 입주민 갑질로 자살한 경비원 故최희석씨가 남긴 음성유서가 공개되었다. 가해자의 악랄한 만행에 대해서 울부짖음과 떨리는 음성으로 남긴 마지막 말과 그 끝엔 자신에게 따듯하게 대해 준 이웃과 입주민들,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남기고 그렇게 가 버렸다. 특히 해당 경비원이 가진 교육의 부재를 교묘하게 이용한 가해자의 악행은 더욱 보는 이를 분노하게 하였다. 일방적인 폭행을 가한 당사자가 피해자의 친형이 가한 폭행인 것처럼 말 바꾸기를 시도하는 것에서 많은 이들은 경악했다. 서비스직을 포함한 많은 감정 노동자들의 폭언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직접적인 폭행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대해 수년간 호소하고 있고 자살로 이어지는 사례도 끝없이 나오고 있다. 늘 자극적인 결론이 나야만 재조명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번 일은 가해자에게 반드시 엄벌이 내려져야 한다. 제3자의 시선에서는 가해자가 직접적인 살인자나 다름없고 죽으라고 등 떠다민 사람이 맞다. 강력범죄에 대한 국민의 시각이 #대한민국범죄양성소사법부 #판사도공범이다 라는 해시태그로 대변되고 있는 요즘 이 사건만큼은 제대로 된 사법부의 처벌이 따라야 한다. 남겨진 유가족을 위로하고 수천 명의 노인 경비원들이 노동자답게 일할 수 있는 발판을 사법부가 만들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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