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으로 가득 채운 백색 꽃송이
꽃잎 들여다 보면 여체 드러나
다양한 배경색은 테라피 효과
온몸 채운 점으로 ‘생명’ 강조
“누드 드로잉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으며 드로잉을 예술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린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가 에곤 쉴레(Egon Schiele)가 되지 못한다면 우회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소재의 변용과 작업 방식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작가의 대표작인 ‘꽃’ 연작은 누드 드로잉의 변주이자 진화의 결실이었다.
꽃은 여체와 동의어로 선택한 소재다. 여인의 은유에 해당된다. “통념상 꽃과 여인은 아름다움이라는 지점에서 비유되는 대상이다. 가장 쉬우면서도 당위성도 확보한 소재다. 그래서 선택”됐다. 작품은 화폭 전반에 꽃 한송이를 형상화하고, 꽃잎 속에 여체 드로잉을 숨은그림처럼 툭 던져놓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여체에 대한 작가의 신념은 은유도 모자라 강조법까지 더해진다. 누드 드로잉을 꽃 속에 그려 넣는 것. 대신 집중해 찾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을 만큼 보일듯 말듯 처리한다. 발견하는 것은 관람자의 몫으로 넘긴다.
작가의 손끝에서 여체와 꽃의 변주는 끝을 모르고 진행된다. 이번에는 꽃의 형상을 불꽃처럼 표현하고, 꽃잎은 백지 상태로 둔다. 구상의 대표적인 소재가 추상의 꽃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뻔한 꽃의 뻔하지 않은 변신이다. 은유하고, 뒤집고, 비틀자 꽃에서 상상과 이야기가 자박거린다.
작가가 ‘동양의 정신’과 ‘비움의 철학’을 언급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쫓아가야 하는 현대인은 스트레스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죠. 저는 현대인의 복잡한 마음을 하얀 백지로 비워주려 했어요.” 이른바 아트테라피(art therapy)다. 특히 작가는 예술의 치유효과를 믿는다. 그래서 꽃잎의 색을 뺀다. 대신 꽃 아래 여백에 모노톤의 다양한 색을 표현하며 색의 치유력을 높인다.
작품 ‘꽃’에서 강조하는 개념은 ‘생명’이다. 작가는 여체를 아름다움에 한정짓지 않고, ‘생명의 출발선’으로 개념적으로 확장한다. “생명이 잉태되는 여인의 몸은 생명의 시작이자 존재의 시작점”이라는 논리에 따른 확장이다. 이때 점(點)이 활용된다. ‘점’은 ‘생명’과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 투명 물감으로 백색 꽃 면 위에 찍어 채우는 방식으로 구현되는데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점으로부터 시작해 선이 되고 면으로 확장되듯이 점과 여인은 존재의 출발선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다고 보았어요.”
대구에서 김미숙이라는 이름은 익숙하지 않다. 대구를 떠난 적이 없는 순도 백퍼센트 대구 작가지만 전시는 주로 해외와 서울에 집중한 때문이다. 계명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명지대학교 표현심리과정을 수료한 작가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싱가포르 프리미엄 에이전시 소속 작가로 활동했다. 중국, 일본, 뉴욕, 서울 등에서 개인전 및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국내와 국제 아트페어에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올해 들면서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총천연 무지개색을 꽃잎이나 배경에 표현하는가 하면, 텅 비웠던 여백에 꽃을 드로잉하거나 점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꽃잎 속을 유영하는 선의 흐름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모든 창작은 학습과 경험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철학과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꽃을 통해 다양한 철학과 인간의 이야기를 표현해 갈 것입니다.” 김미숙 초대전 ‘Cliff-hanger’전은 갤러리카페 다인(천안시 서북구 늘푸른 6길 5-15)에서 31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