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하고 또 오묘하다(玄之又玄)
오묘하고 또 오묘하다(玄之又玄)
  • 승인 2020.05.2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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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경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서쪽 높은 산위에 사간(射干)이 있었다. 키가 15cm 정도로 키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 사간(射干)은 항상 높은 곳에 위치한 관계로 세상의 어디든지 볼 수 있었다. 아침마다 이슬을 머금고 동해의 하늘을 쳐다보기 때문에 천문지리의 일을 훤히 알고 있었다. 낮이면 고개를 숙여 땅을 내려다보기 때문에 지상의 일들을 모두 꿰뚫어보는 혜안을 갖고 있었다. 즉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그 사간(射干)을 신통한 나무라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그 사간(射干)을 보기를 간구했다.

이 이야기는 필자가 1970년대 영덕의 시골학교에서 근무할 때 들었다. 풍문을 확인하고 싶었다. 당시 필자와 무위자연을 논하던 또래 교사가 두 사람 있었다. 어느 날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신통한 나무 사간(射干)을 찾기 위하여 영덕 지품의 황장재를 넘어 영양군의 석보면 화매동으로 헤맸었다.

화매동 주민에게 ‘흘뭇골 용소’를 묻고 절골을 찾았다. 어그랫골을 지나 조금 걸어 올라가니 현무암의 바위로 이루어진 절벽에 폭포가 세차게 떨어지고 있었다. ‘흘뭇골 용소’였다. 그 위쪽에 옛날에 울령사라는 큰 절이 있었다고 한다. 울령사지에 가기 위해선 폭포의 바위를 기어올라야만 했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용소에 빠져 익사할 정도의 급경사였다. 옛날엔 소등에 길마를 해서 그 길로 짐을 절에 날랐다고 한다. 보기에도 아찔하였다. 가슴이 ‘쿵쿵’뛰었다. 신심(信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듯하다. 우거진 숲을 헤쳐서 반나절을 올라 드디어 울령사지를 찾았다.

울령사지의 폐허된 구석에 거적때기로 덮여진 오래된 석불이 있었다. 세 사람이 힘을 뭉쳐 미륵불을 밀치니 바닥 항아리에 엽전이 쌓여 있었다. 아마 옛날에 단청을 칠하기 위하여 엽전으로 안료를 만들었던 사찰인 듯하다.

울령사지의 절 앞에는 200평 남짓의 못이 있었다. 동네 사람이 말하던 천지(天池)였다. 그 천지 가운데에선 물이 퐁퐁 솟아오르고 있었다. 자연의 신비로운 모습에 경외감을 느꼈다. ‘아아, 정말 굉장한 절이었겠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절이 위치했던 뒷산을 오르니 반대쪽에 동해가 보였다. 풍문에 들었던 사간(射干)이 있어야 하는 장소였다. 나침반을 땅위에 놓고 남북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어디에도 사간(射干)은 보이지 않았다. 일행은 늦은 밤에 별자리를 쳐다보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밤하늘은 검은 암흑이었었다.

노자의 도덕경에 ‘현지우현(玄之又玄)’이란 말이 있다. ‘오묘하고 또 오묘하다.’는 뜻이다. ‘현(玄)’은 그윽하고 신비한 것, 아득하고 심오한 것을 말한다. 천자문도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한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뜻이다. 우주인들도 ‘하늘은 오묘하게 검고, 지구는 황금처럼 누렇다. 아름답고 신비롭다.’고 했다.

노자는 ‘이름 없음은 하늘과 땅의 시작이다. 이름 있음은 만물을 기르는 어머니와 같다. 그러므로 늘 욕망에서 벗어난 사람만이 감추어진 본질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바깥 테두리밖에 볼 수 없다. 이름 없음과 이름 있음은 모두 한 근원에서 나온다.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이다. 이 근원을 우리는 현(玄)이라 부른다. 현지우현(玄之又玄)은 모든 기묘한 것이 나오는 문이다.’라고 하였다. 오묘하고 또 오묘하다.

요즘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민낯을 드러내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1990년에 37개 여성단체가 연합한 일본군 ‘위안부’문제 관련 단체이다. 그리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 기억재단’은 2016년에 설립되었다. 두 단체는 2018년에 ‘정의기억연대(정의연)’로 통합하였다.

‘정대협’과 ‘정의연’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하늘과 땅의 시작과 같았다. 그러다가 이름이 알려지면서 만물을 기르는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헌신과 봉사로 많은 일들을 하였다. 그런 단체가 본질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늘 욕망에서 벗어난 사람만이 감추어진 본질을 볼 수 있다. 그냥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노자는 ‘세상사람 모두가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여기는데서 추함이라는 생각이 나온다. 또 착함을 착하다고 여기는데서 착하지 못하다는 관념이 나온다.’고 했다. 키가 작은 사간(射干)이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높은데 위치하기 때문이리라. 참으로 ‘오묘하고 또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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