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 대신 金으로 채색…평면회화의 무한 가능성 엿보다
물감 대신 金으로 채색…평면회화의 무한 가능성 엿보다
  • 황인옥
  • 승인 2020.05.2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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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신라 구자현 개인전
린넨 천에 아교 덧발라 두껍게 제작
금과 백금 성질 살려 ‘원 형태’ 연출
재료가 가진 상징 ‘고요·우주’ 구현
“나는 재료를 다루는 ‘조련사’일 뿐
작가·평면·물성이 만나 작품 완성”
형상 자체보다 재료 구현 과정 중시
‘황금 템페라’ 기법 작품 50점 공개
구자현 작 무제-0
구자현 작 ‘무제’
 
구자현 작 무제2
구자현 작 ‘무제’
 
작가 구자현
구자현 개인전이 갤러리신라에서 6얼 30일까지 열린다.

헤겔은 “예술이 정신의 절대적인 영역에 속한다”는 믿음으로 “예술을 종교나 철학과 동일한 기반 위에 선다”고 인식했다. 그는 “인간의 가장 심오한 관심, 정신의 가장 포괄적인 진리들을 의식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될 때에만 참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굳건하게 믿었다. 굳이 헤겔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예술은 정신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역사를 걸어왔다. 특히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예술과 정신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지고 있다.

그러나 예술이 항상 정신세계에만 발을 딛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대로 거슬러 가면 예술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고대인들의 예술적 성취는 정신 차원보다 물질 영역에 집중됐다. ‘예술’의 어원이 된 고대 로마의 라틴어에서 ‘예술’을 기술로 인식했고, 고대 중국에서도 예술은 ‘기술을 익힌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작가 구자현(사진)의 예술은 이런 점에서 과거회귀적이다. 그는 예술에서 관념보다 기술에 방점을 찍는다. 물성과 물성을 다루는 기술을 부각하고, 그 과정 에서 개념이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도록 유도한다. “기술은 예술이 지향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지만 기술이 목적이 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기술을 다루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이 드러날 때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작가 구자현 개인전이 갤러리신라에서 최근 개막했다. 판화작가로 국내에서 최고의 명성을 구가해 온 작가의 이번 개인전에는 판화 작품 대신 캔버스와 한지 작품으로만 구성했다. 황금배경템페라(gold ground tempera) 기법을 기본으로 한 대형캔버스 작업을 포함해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회화와 종이(한지)작업 50여점을 걸었다.

작가가 “당분간은 캔버스와 한지 작품에만 집중한다”고 밝혔다. “판화는 기자재나 기술, 제박비, 인력이 너무 많이 투입되는 장르다. 오랫동안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서의 판화예술을 개척해 왔다. 이제는 회화에 집중하려 한다.”

구자현표 회화는 흔히 회화를 감상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정작 달은 보지 못하는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의 회화는 캔버스라는 평면과 물감 그리고 물성들을 다루는 작가의 기술적 노동이 어우러져 만든 결과이기 때문. 일반적으로 환호하는 평면 위 형상이 구 작가에게는 회화라는 형식을 갖추기 위한 이미지 정도로 국한된다.

물성 탐구를 창작의 핵심으로 여겨온 작가에게 작업 과정은 누구보다 중요시된다. 그 모든 과정이 회화에 수렴되기 때문. 작가의 회화 작업은 린넨이나 면천으로 평면(캔버스)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캔버스 틀에 천을 올리고, 천 표면에 투명 접착제인 아교로 여러 번 칠한다. 허물거리는 천의 성질을 단단하게 고정하기 위한 행위다. 이때 천위에 자연스럽게 붓 자욱이 남는데, 몸과 물성으로 만들어진 이 붓의 흔적 속에 작가의 내면상태가 스며든다.

구 작가가 “회사후소(繪事後素)”를 언급했다. 이 사자성어는 공자가 제자인 자하의 질문에 대해 한 답이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마련한 다음에 해야 한다”는 뜻이며 “내적인 아름다움을 먼저 갖춘 다음에 외적인 아름다움을 가꿀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구 작가는 ‘회사후소’를 “정신세계가 물성을 다루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간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관념에 대한 비틀기로 천을 고정시켜 평면을 제작했다. 물감 역시 일반론을 비껴간다. 작가 스스로 물감을 만들거나 전혀 의외의 물성을 물감 대신 사용한다. 이 새로운 시도는 “왜 회화는 물감으로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했다. 통념에 대한 반발이었고, 새로운 창작에 대한 시작이었다. 작가는 세상에 하나 뿐인 흰색 물감을 만들거나 금이나 백금 등의 의외의 재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금이나 백금이 가지는 ‘고요’, ‘우주’, ‘깊이’ 등의 상징적인 의미들이 자연스럽게 평면에 올려진다. 구 작가는 물성이 가진 형질이나 상징성으로도 개념을 설명하는데 충분하다는 지론을 견지해왔다.

“‘왜 백금을 사용하느냐’와 ‘왜 물감으로 칠하느냐’는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물감이든 금이든 의미는 같다. ‘이것만’이라는 것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형상은 최소한의 원(圓) 한 두 점이나 원의 여운에 해당하는 흩뿌려진 흔적 몇 가닥이면 족하다. 평면을 제작하고 평면 위에 아교를 칠하면서 작가의 노동과 몸의 흔적들이 어우러지고, 금 또는 백금이라는 상징적인 물성을 표면에 바르는 기술적인 행위를 통해 작가의 메시지가 충분한 서사를 갖췄는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 강렬한 형상으로 드러내 놓고 서사를 강조할 이유가 없다.

“물성을 다루는 과정 속에서 내면세계가 온전하게 드러나는데 형상을 강조할 이유가 없다. 형상은 최소한 간결한 것이면 된다.”

통념상 회화는 평면상에 색채와 면, 공간 등으로 형상을 구현해 ‘느낀 바(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조형예술이다. 회화가 물성과 정신세계의 하모니인 것. 이때 방점이 찍히는 것은 정신세계이며, 평면과 색채는 내면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구 작가는 정신의 표상인 형상보다 캔버스와 물감 그리고 물성들을 다루는 기술적인 차원에서 회화의 본질을 발견하려는 태도를 취해왔다.

이 점에서 구 작가는 스스를 ‘조련사’에 비유했다. “작가인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 아니다. 사용되는 재료(물성)이 그림을 그려준다. 나는 물감을 다루는 조련사 역할이면 족하다. 결국 회화는 작가의 심성과 평면과 물질이 만나 화면에 남은 것이다.”

형상보다 물성에 집중하는 자신의 회화를 작가는 “회화의 해체”라고 명명했다. 물성을 이용해 최종 도달점인 형상을 구축하려고 노력하기 보다, 물성 자체를 탐구하는데 작가적인 열정을 할애하는 방식을 작가는 ‘회화의 해체’로 인식한다. 이는 결국 “화화란 무엇인가?”라는 회화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나는 화폭에 의미를 배제하고 물성만 강조한다. 회화의 최종 도달점인 관념보다 회화의 출발선인 물질을 보여주려 한다.”

구 작가가 던지는 ‘회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최종 질문과 만나게 된다. ‘작가의 역할’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그는 주어진 물감과 캔버스라는 안락한 환경을 버리고 평면과 물감을 만들고 그것들을 다루는 기술을 연마하는 힘겨운 과정을 스스로 택한다.

하지만 결과물인 형상은 의외로 단순명료하다. 물성에서 모든 것을 이루었기에 굳이 형상에 매달릴 이유가 없었던 결과다. 이 지점이 구 작가가 가지는 독창성이자 작업적 견고함이다. 그는 독창성이 작가가 견지해야 할 태도라는 메시지를 회화나 판화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던져왔다. 그가 “제 회화는 얼핏 보면 누구나 그릴 수 있다. 잔잔하고 쉽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숙련되지 않으면 절대 나오지 못하는 그림이다. 단순한 것 같지만 기술이 없으면 근접 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빤히 보이는 것은 재미없다. 예술을 일반상식론으로만 바라보면 재미있는 그림도, 발전도 나올 수가 없다. 예술가는 관념을 뛰어넘어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결국 형이상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매체의 확장이나 예술의 진화라는 구 작가의 예술적 지향점이 정점을 달리는 장르는 판화다. 구 작가는 고정화된 작업방식, 충분하지 못한 판화기법 등에 도전장을 내밀며 독자적인 판화예술을 구축해왔다. 판화지나 회화지, 물감을 직접 만들고 밑그림, 제판, 프린팅에 복잡한 과정에 독자적인 제작 기법을 도출하며 구자현표 판화를 제시했다.

특히 균일하고 전면적인 색면들의 겹침과 마치 의도적으로 판을 살짝 어긋나게 하여 생긴 듯한 가장자리의 색띠들을 통해 회화적 공간과 시간성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한 스크린판화는 구 작가 판화의 백미다. “불모지에 가까운 판화 기술을 내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회화적인 단계로까지 끌어올리고 싶었다.”

논리 중심의 서양철학과 수행 중심의 동양 철학 중 작가는 동양과 가깝다. 변화에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존의 관념에 도전장을 던져왔던 구 작가. 그의 예술적 태도에는 수행 중심의 동양정신이 배어있다. “기술은 부단한 연마와 닦음을 요구한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 수행적인 태도가 배어든다. 이는 곧 동양정신과 연결된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문의 053-422-1628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구자현은 홍익대 미대와 일본 오사카 대학 등에서 판화와 서양화를 전공했다. 서독프레헨국제판화비엔날레전 4등상 (1986년), 삿포로 국제현대판화비엔날레 스폰서상(1998), 공간 국제판화비엔날레 대상(2002) 등 국내외에서 20여회 수상했다. 2권의 저서와 2권의 번역서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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