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비헤이비어' “우리는 화가 났을 뿐이다” 그녀들의 이유있는 한 방
'미스비헤이비어' “우리는 화가 났을 뿐이다” 그녀들의 이유있는 한 방
  • 배수경
  • 승인 2020.05.28 2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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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미스월드 생방송 실화
수영복 심사·신체 등급 평가…
성상품화 비난한 여성운동가들
밀가루 던지고 물총 쏘며 기습
흑인 첫 미스월드·참가자 조명
뿌리깊은 인종차별도 깨닫게 돼
미스비헤이비어-2
 

지난 27일 개봉한 영화 ‘미스비헤이비어’는 1970년 열린 미스월드대회 생방송 현장에 뛰어들어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비판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다.

당시 미스월드대회는 월드컵 결승전이나 달착륙 장면보다 더 많은 시청자들이 지켜볼 정도로 인기있는 ‘가족’오락 프로그램이었다.

온 가족이 모여 방송을 보면서 올해의 미스월드는 누가 될지 나름의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보기도 하고 많은 소녀들은 방송을 보며 미래의 미스월드를 꿈꾸기도 했다. 대회에 참가한 각국의 참가자들은 화려한 드레스와 몸이 드러나는 수영복을 입고 관객들과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는다.

역사학도인 샐리(키이라 나이틀리)와 행동하는 예술가 조(제시 버클리) 등 여성운동가들은 34-24-34 같은 ‘신체조건으로 등급을 매기는 것은 가축시장과 다를바 없다’며 미스월드대회에 반기를 든다.

대회 초대손님으로 나온 코메디언 밥 호프의 시답잖은 농담을 듣다 마음 속에서 거부감이 일어날 무렵 “우리는 예쁘지도 추하지도 않다. 화가 났을 뿐이다”라고 외치며 밀가루를 던지고 물총을 쏘는 여성들의 등장은 무모해 보이면서도 통쾌하다. 그들이 일으킨 소동은 다음날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할 정도로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킨다.

샐리를 비롯한 여성운동가들은 성상품화를 비난하며 시위를 하지만 대회 참가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는 않는다. “당신처럼 선택을 하며 살고 싶어요” 흑인으로서 최초의 미스월드 왕관을 쓴 미스 그레나다 제니퍼(구구 바샤-로)와 샐리가 화장실에서 만나 나누는 짧은 대화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또다른 차별을 깨닫게 한다.

‘미스 월드’가 누군가에게는 없어져야 할 대회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기회이며 희망을 전할 수 있는 대회라는 것도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영화 속에는 다루어지지 않지만 미스월드 반대파와 미스월드 우승자인 이들의 이야기는 40년이 지난 2010년 BBC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다시 만나 서로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참가한 흑인참가자의 이야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뿌리깊은 인종분리정책에 대한 공격을 피하기 위해 얼떨결에 합류하게 된 흑인참가자는 이후에도 24년간이나 인종차별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는 것을 영화가 끝난 뒤 알 수 있다.

샐리의 엄마, 샐리,그리고 그녀의 딸로 이어지는 여성 3대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샐리 역시 어릴 때는 미스월드가 꿈이라고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자신의 딸이 만날 세계는 좀 달라지기를 원한다. 방송을 보면서 화장을 하고 목걸이를 걸고 그녀들의 걸음걸이를 흉내내는 샐리의 어린 딸을 보면서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영화 타이틀인 ‘미스비헤이비어’(misbehaviour)는 ‘나쁜 행동’ 혹은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행동’이라는 원래 뜻 외에 ‘미스 월드’를 반대하는 미스 비헤이비어(Miss-Behaviour)라는 의미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여성이 만든 여성의 이야기라기보다 차별과 맞선 사람의 이야기다.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는 성별과 피부색, 국적와 직업에 따른 차별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계속되고 있다. 또한 그 차별을 깨기 위한 일련의 행동들 역시 진행중이다. 당장에 변화가 없더라도 개인의 작은 행동들이 모여 서서히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미스비헤이비어’는 ‘쿼드러플 F등급’의 영화다. 여성 제작자, 여성 감독의 연출, 여성 작가의 각본, 중요한 역할의 여성 캐릭터 등 4가지 조건을 충족한 까닭이다. 언젠가는 이런 구분조차 무의미한 때가 분명 올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과 함께 영화 속 중요인물들의 현재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샐리는 런던대 근대사 교수로, 조는 산파로, 방송인을 꿈꾸던 제니퍼는 캐나다 주재 그레나다 고등판무관으로, 미스공아남(미스남아공과 구별하기 위해 흑인참가자를 부르던 명칭)은 가수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감동을 준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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