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아이들을 맞다
학교, 아이들을 맞다
  • 승인 2020.05.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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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견숙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교사
하루 종일 니트릴장갑을 끼고 수업을 한 건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세 명. 이렇게 적은 숫자의 아이들과의 수업은 텔레비전 속의 벽지 학교에서나 본 장면이다. 띄엄띄엄 책상에 자리 잡고 앉은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아이들 역시 매주 한 번씩 모니터 화면 너머에서만 보았던 나를 실제로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다. 방호복을 착용한 선생님, 열화상 카메라, 복도 곳곳의 안내벽보를 지나 앉게 된 교실은 생경할 것이다.

세 달이 훌쩍 넘은 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학교는 아이들을 맞게 되었다. 가정에서의 온라인 학습을 병행한 형태의 안심 등교 기간이다. 초등학교의 경우 1, 2학년이 2주 간, 3, 4학년이 1주간의 안심 등교 기간을 가진다. 학생 수를 분산하여 등교하되 학교 마다 놓인 상황에 따라 어떠한 방식으로 운영할지는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교육청에서는 방법적인 선택지를 열어두었다. 실제로 소규모 학교의 경우 굳이 부제 식으로 나눌 필요조차 없을 것이며, 과밀학급의 경우 학생들을 더 잘게 나누어 불러야 하는 등 학교마다 사정이 판이하다.

우리 학교의 경우 저학년은 학생을 넷으로 나누어 한 번씩 돌아가며 등교하고, 나머지 등교하지 않는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수업하는 4부제 중심으로, 중학년은 3부제로 운영하기로 결정하였다. 1학년은 처음 학교에 오기 때문에 학부모와 함께 올 수 있도록 계획했다가, 결국 학부모는 교문 앞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되었다. 입학을 맞아 내 아이의 교실도 확인할 수 없게 되어 참으로 안타깝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 학교는 안심 등교 일정을 각 학년별로 다르게 하되, 학부모 설문 등 수요자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대부분 학부모들이 마스크를 벗는 단체 급식을 아직은 걱정하고 있기에 안심 등교 기간에는 급식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반마다 시간을 달리하여 들어온 아이들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오늘 하루 동안 나누어줄 수업 관련 유인물, 수업 자료들은 전날 각자의 책상 위에 미리 얹어두었다. 필요 이상으로 나와 접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쉬는 시간은 딱 한 번, 나머지 시간은 쭉 학습으로 이어진다. 어차피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할 수도 없고, 화장실도 몰리지 않게끔 가고 싶을 때 나누어 가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쉬는 시간의 의미가 사라졌다. 실제로 두 시간 수업 후 주어지는 쉬는 시간에 체온 측정과 손 씻기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마스크를 오전 내도록 끼고 있는 것을 답답해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전체적으로 잘 끼고 있었다. 두 시간마다 한 번씩 손을 씻고 열을 측정하는 것도, 집에 가기 전 소독티슈로 자기 책걸상을 닦는 것도 어색하지 않는 일이 되었다. 몇 시간의 수업만 지났을 뿐인데 아이들은 금세 나보다 더 이 상황에 적응된 모양이었다. 예전처럼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함께 풀지도 못하고, 몸으로 노는 신나는 놀이도 할 수 없는데도 수업을 즐거워했다. 규칙적인 생활이 어그러진 통에 학교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공부하는 게 힘들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집중해서 열심히 활동하는 아이들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작된 안심 등교 이후로의 여러 가지 문제도 고민해 볼 때라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의 경우 곧 홀짝제가 시작되면 아침 시간에 체온을 재어야 하는 아이들만 해도 몇 배로 많아진다. 급식 문제도 정말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다. 지금 당장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무증상 확진자가 몇몇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무겁게 받아들여 그 추이를 주시해야 한다. 1학기에 열렸어야 했던 운동회 따위의 학교 여러 가지 일정도 천천히 검토해나가야 한다. 무작정 2학기로 순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내실 있는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서는 실시하지 못한 행사들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검토하되, 의미를 살려서 축소 운영하거나 과감히 폐지해야 할 때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참 막막하지만 다가올 2학기도 분명 예전처럼 안전한 것만은 아니라는 가정도 해 봐야 한다.

8시 40분부터 쉼 없이 5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한 친구가 복도에 서서는 “선생님, 다음 주에도 꼭, 꼭 만나요” 하고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손을 흔든다. 12시가 넘은 시간에 밥도 먹지 못해 배도 고플 텐데도,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이렇게 오고 싶은 곳이었나 보다. 오늘 오지 못했던 아이들, 가정에서 내가 따로 내어준 온라인 학습을 할 차례였던 빈자리의 아이들 모두 이런 생각일 지도 몰랐다. 꼭 다시 만나자는 그 친구에게 확답을 해 줄 수 없는 어른의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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